-똥을 싸도 박수를 받고 싶어
K 군이 일하는 농원의 사무실 앞에 다다랐을 때 그는 인사 대신 이렇게 물었다.
"머리 잘랐어?"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기요틴 생각이 난다. 사선의 육중한 칼날이.
그 투박한 쇳덩이의 중력을 버티고 있는 동아줄이 기요틴 상단에 설치된 도르래를 지나 기요틴의 머리 구멍 속에 머리를 처박은 나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다. 손아귀의 힘을 풀자 쇳덩어리는 중력에 의해 내 머리 위로 떨어진다.
이런 경우에만 '머리 잘랐어?'라는 질문이 타당할 것이다.
"머리... 아니, 머리카락이 잘렸어."
이렇게 대답했어야 마땅하리라.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를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일상 언어는 문법과 논리의 영역이 아니다.
"잘랐지." 내가 말했다.
"잘 잘랐네." 그가 물었다. "어디서 잘랐어?"
"(내가 일하는 곳의) 바로 옆 미용실에서."
"기왕 자를 거, 좋은 데서 자르지 그랬어?" 아마도 후배 S 군이 추천한 헤어샆을 말하는 것일 테다.
내가 대답했다.
"잘 보일 여자도 없는데 뭐 하러?"
귀찮아서 대충 내뱉은 말이었지만, 일말의 진실도 있다. 만약 무인도에서 홀로 산다면, 청바지의 찢어진 틈 사이로 붉은색 빤쓰가 보인다 한들 대체 무슨 상관인가? 아니, 빤쓰를 입을 필요나 있을까?
후배 S 군의 병원 외벽 청소를 마치고(똥꼬에 힘줘가며 장시간 그물을 친 거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다소 있다) 잠시 K 군의 농원 사무실에 들렀을 때, 그가 눈을 크게 뜨며 면박을 주었다.
"그 차림으로 일했단 말이야?"
"응."
"야, 이 인간아....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인데 찢어진 반바지는 좀 아니잖아?"
"반바지가 뭐 어때서?"
"난 밖에서 제초 작업을 할 때도 긴바지를 입어."
"난 그렇게 못해."
"왜?"
"졸라 덥거든."
아마도 K 군의 사회적 상식이 옳을 것이다.
다만 보는 사람만 없다면 능히 빤쓰 따위는 벗어던질(꽈추도 시원할 권리가 있다) 인간에게는 다소 과도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이런 내가, 좋아하는 여자라도 생기면 무인도 새비지에서 문명의 젠틀맨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일까? "잘 보일 여자도 없는데 뭐 하러?"라는 말에는 잘 보일 여자가 있을 경우에는 고가의 헤어샆도 마다하지 않을 결기(?)가 반증처럼 엿보인다.
롹 스피릿이라는 말이 있다. 음....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좋아하는 말은 아니다. 간혹 옛 시절의 롹커들이 장발에 가죽 바지 차림으로 방송에 출연해 검지와 약지를 펴고 나머지 손가락을 구부린 손 모양을 내보이면서 롹의 정신 운운할 때마다 못돼 처먹은 나는 냉소한다.
21세기에도 그러니까 아이브나 뉴진스에게 지는 거야...
롹의 정신이 반항이라고 했나? 뭐, 아주 가끔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롤링스톤즈의 노래 제목이 롹 스피릿에 제대로 빅엿을 먹인다고 본다. It's only rock n' roll.
어디 롹 음악만이 저항 정신을 전유하는 것인가. 60년대의 포크 음악에도 그런 정신이 있었다. 하지만 Blowin' in the wind를 부른 밥 딜런조차도 그런 틀에 거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저항의 뮤지션이라고? 아니. 나는 그냥 내 꼴리는 대로 하고픈 뮤지션일 뿐이니 통기타를 잡든 전기기타를 잡든 날 좀 그냥 내버려 두면 안 될까?'
영화 <컴플리트 언노운>은 강추다.
가끔은 롹 음악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이것은 똘끼로 무장한 뮤지션들의 음악이라는.
똘끼도 반항의 한 형식이라면.... 뭐, 반항의 음악이라는 말이 아주 틀려먹은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롹밴드 AC/DC의 기타리스트 앵거스 영은 한 콘서트에서, 청중을 향해 등을 돌린 채 반바지를 훌렁 깠다(물론 일타쌍피, 빤쓰도 덤으로 깠다). 그보다 훨씬 이전에, 데카당스의 최고봉 짐 모리슨('The Doors'의 보컬리스트)은 무대에서 스스로 위로하는 행위 예술을 하다가 철창행 신세가 되었다.
개쩌는 밴드 Red Hot Chili Peppers는 2000년의 시애틀 라이브에서 소중이에게 양말 한 켤레를 입히고는(Sox on cox) 사실상 알몸으로 연주를 했다.
(밥맛이냐고?
아니.
손가락과 입으로만 드러나는 롹 스피릿보다는 백 배 훌륭한걸.)
이런 행위가 가능한 이유에 대해서 앤디 워홀은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당신이 똥을 싸도 사람들은 박수를 쳐줄 것이다
소심하게도 무인도에서만 올 누드를 감행할 수 있는 나는 무명이어서 서글프다.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이라고는 그저 오가는 행인들 앞에서 걸레 같은 반바지 차림으로 열심히 건물 청소를 하는 것뿐.
물론 박수도 없다.
<컴플리트 언노운>에서 밥 딜런(티모시 살라메 분)은 이렇게 말한다. "아름답든 추하든, 평범한 건 안 돼."
제목이 <컴플리트 언노운>인 이유는 밥 딜런의 '완전히 안 알려진'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거다. 영화의 맥락상으로는 그렇다. 다만 이 제목을 단어 그대로 '완전한 무명의'로 해석하면, '완전한 무명'은 나 같은 범인을 지칭하는 말이지 노벨 문학상까지 받은 밥 딜런 같은 명사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아름답든 추하든, 평범한 건 안 돼.
동감한다.
다만 평범한 인간이 추한 짓을 할 경우 날아드는 것은 박수가 아니라 똥덩어리일 것이다.
'평범한 것'에 대해 생각한다.
타인의 이목에 신경을 아예 안 쓰는 인간을 평범하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평범한 인간이라면 어느 정도는 신경을 쓰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그런 인간을 비범하다고 할 수는 없다.
타인의 이목에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지만, 기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 머리를 자르는 남자는 평범 그 자체다.
이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예컨대 수지가,
"지얼 오빠.... 머리가 많이 기네요."
라고 말한다고 치자.
"응?" 내가 대답한다.
"기르시는 거예요?"
"아니. 안 자르는 거야."
"왜요?"
"(돈 없어...) 그냥. 귀찮아서."
"네.... 근데 오빠는 장발보다는 짧은 머리가 더 어울려요."
"그런가? 난 머리가 짧으면 불안하던데."
삼손처럼 말이지.
"아니에요. 훨씬 나아요." 그러고는 내게 요청한다.
"오빠, 머리 좀 자르면 안 돼요?"
데릴라냐?
확실히 여자들은 장발의 남자를 싫어한다(장발의 차은우는 예외다).
나는 3초간 수지를 바라보다가 말을 던진다.
"헤어질까?"
나는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여자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농원에서 K 군을 만난 후 점심시간이 되어 칼국수를 먹으러 가기 위해 그의 스파크 자동차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그의 것이 아니라 장모님의 차다. 내가 물었다.
"네 차는 어쩌고 왜 장모님의 차를....?"
그가 대답했다.
"내 차는 아들이 타고 다녀."
"헐, 너는 경차를 타고 다니고 아들 영석(가명)이가 중형차를 타고 다닌다고?"
"그렇지."
"영석이한테 스파크 타고 다니라고 하면 되잖아." 내가 물었다.
"쪽팔려서 안 된대." 그가 말했다.
"헐.... 그러는 너는? 안 쪽팔리냐?"
그가 말했다.
"나? 안 쪽팔린데?"
그는 진심으로 이런 쪽으로는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는다. 훌륭하다.
다만 나의 갈가리 찢어진 반바지에 대해서는 쪽팔려한다.
그가 내게 의혹의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
"너, 요즘 누구 좋아하냐?"
"없어. 하나도 없어(장원영과 이시하라 사토미 이외에는)." 내가 대답했다.
"에이.... 구라 치지 말고. 좋아하는 여자 있잖아. 그러니까 머리를 잘랐겠지."
K 군은 역시 곡해, 또는 중상 대마왕이다. 재미로 하는 마타도어랄까.
문득 생각나는 바가 있어서 알은척을 하며 말했다.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소설이 있지. 그거 쓴 작가가 나코스 카잔차키스인데, 그의 묘비명이 뭔지 아냐?" 답변을 무시하고 말을 잇는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이게 그의 묘비명이지."
"근데?" 그가 묻는다.
"나중에 내가 죽으면 이렇게 묘비명을 새겨주삼. '나는 그 어떤 여자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여자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그게 아니지." 피식거리는 K 군.
"'나는 세상 모든 여자를 바란다, 나는 여자에게 까일까 봐 두렵다, 나는 족쇄다.' 이거겠지."
그러더니 매를 번다.
"역시 나만큼 너의 실체를 꿰뚫어 보는 사람이 없지. 안 그래?"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너도 머리 자를래?"
기요틴으로.
킬러 칼새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