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가을 하늘에 소주를 퍼
8월 말이 되면 아침, 저녁의 열기가 꽤 누그러진다.
몇 년 전에는 그랬다. 요즘에는 여름이 길다.
동양의 절기에 대해서 대체로 의심하지 않는 편이지만, 더위 탓인지 '입추'의 날짜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인다.
올해는 8월 7일이 입추였다. 태양에 살이 익을 것만 같은데 입추라니?
그럼에도 입추라고 지정된 달력의 날짜를 보며 마음은 미리 가을에 맞닿아 있다. 순간의 미풍만으로도 가을의 멀지 않은 도래를 느낀다. 조바심이 없는 기다림이다.
태양이 제아무리 뜨거워도 결국 가을은 온다. 자연은 그런 것이니까.
그러고 보면 사람은 자연이 아닌 것 같다. 사람에게 지당한 도래 따위는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니까.
사람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신라의 제상 박제상을 기다리는 그의 부인은 치술령의 망부석이 되어버렸고, 죽은 줄도 모르고 매일같이 역전에서 퇴근하는 주인을 기다리는 아키라견 '하치'는 시부야 역전의 동상이 되어버렸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후략)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시인은 자신의 시에 대한 착어를 첨부했다.
[기다림이 없는 사랑이 있으랴. 희망이 있는 한, 희망을 있게 한 절망이 있는 한, 내 가파른 삶이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 민주, 자유, 평화, 숨결 더운 사랑. 이 늙은 낱말들 앞에 기다리기만 하는 삶은 초조하다. 기다림은 삶을 녹슬게 한다.(후략)]
'기다림에 녹슨 삶'은 모든 기대를 포기하는 순간 원래의 광택을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글쎄다.
삶에는 WD-40이 없다.
'늙은 낱말들' 앞에서 그냥 삐거덕거리는 상태로 '그런가 보다' 하는 마음으로 지내면 되는 것이다.
나는 고도를 마냥 기다리는 블라디미르나 에스트라공이 아니다.
친구 K 군이 언젠가 이렇게 말했다.
"너, 고장 났어!"
"그런가?" 무심하게 대답한다.
"이게 다 그 여자 때문이야." 그가 말한다.
"아니, 그저 늙어서 그래."
누구 때문이라니, 수긍할 수 없다.
일말의 기다림-기대조차 거두어졌다는 것은 나이와 상관없이 노화의 퇴로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내 삶에 생채기를 남긴 특정 인물은 그저 오래전 일기장의 글자로만 남았다.
부러 소각하고자 하는 행위조차도 망각에의 적극적 의지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후에 누군가 엿보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 비롯된 것일 뿐.
인플루언서 '요조'가 한 인터뷰에서, 좋아하는 계절로 여름을 꼽는 것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름을 좋아한다고? 푹푹 찌는 여름을?
그러다가 생각을 돌린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걸 보면 요조도 아직은 젊구나.
여름.
태양의 계절.
어렸던 시절의 일기장 표지에 'Seasons in the sun'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 같다. 그 제목을 생각할 때마다 푸른 바다 위에 떠있는 작은 요트 생각이 난다.
물 위로 반짝이는 윤슬을 볼 때마다 어쩐지 그것은 여름만이 간직하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여름이라면, 얼마든지 좋아할 수도 있다. 빛나는 윤슬의, 아주 오래전 CF의 영상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여름은 어떤 소설 제목처럼 '빛의 영역'인 것이다.
여름에는 거의 술을 마시지 않는다.
자제가 아니다. 욕망의 인력이 희미한 것에 자제라는 말을 갖다 붙일 수는 없다.
단지 먹기 싫을 뿐이다. 여름에는 그 좋아하는 혼술조차 하지 않는다.
머잖아 흐린 가을 하늘을 보게 되면 후배 S 군에게 작년처럼 또 한마디를 던질 것이다.
"거, 술 먹기 딱 좋은 날씨다."
갈 때 가더라도 술 한 정 정도는 괜찮잖아?
괴로움을 빌미로 하는 음주가 이해 안 될 바는 아니지만, 나로서는 해당사항이 없는 행위다.
괴로워서 술을 먹은 적이 언제였는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왜 술을 마셔요?" 누군가 물었다.
"기분 좋으라고."
당연한 거 아닌가.
(...)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 잔은 너와 나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느님을 위하여
(...)
-조지훈, <사모> 중에서
이별의 슬픔으로 기울이는 술잔 속에는 망집의 그녀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아는 그 누군가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마셨다. 그는 언젠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꼭 여자를 다시 사귀어야 돼!."
내가 물었다. "어째서?"
"당신의 슬픈 곡 연주는, 여자한테 까였을 때가 훨씬 좋거든!"
(T 군.... '까였다'는 표현보다 '이별했다'라고 하는 것이 좀 더 '가오가 살고' 우아하지 않을까?)
슬픈 연주를 위해 부러 여자를 사귀고 게다가 까이기까지 하라니, 너라면 서글픈 음주를 위해 부러 여자를 사귀고 까일 수 있겠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쓰나미처럼 괴로울 때 마시지 않는 술을, 가끔 흐린 가을 하늘의 미풍처럼 외로울 때는 마신다.
미풍에 잎새가 떨어질 일은 없지만, 그래도 흔들리지 않게 잎새 줄기의 강화를 위해 술이 필요하다.
내게 있어 술은 외로움에의 근력 강화제와 같다.
그렇다고 가을이 잔인한 계절은 아니다. 한 시인의 말마따나, 오히려 잔인한 계절은 봄일는지도 모른다. 4월이 잔인한 것은, 겨울에 대비되는 빛의 온기 때문이라는.
빛에 수반되는 그림자... 빛의 광영에 기뻐하는 사람들 뒤에서 그 누군가는 배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드리운 그림자를 뼈저리게 자각한다.
그렇게 봄날의 '술퍼맨'이 된다.
나는 아니다.
나는 가을의 술퍼맨이다.
<아는 여자>라는 영화의 초반 장면 :
남자 주인공은 헤어지자는 애인의 말에 흥분하다가, 낙엽을 한 움큼 집어 들더니 그녀의 면전에 뿌린다.
장면의 코믹함을 떠나, 이별의 시기로 가을을 설정한 것이 새삼 당연하게 느껴진다.
재즈의 스탠더드 넘버가 된 <고엽(Autumn leaves>라는 곡도 그러고 보니 이별의 정서를 가을에 맞추고 있다.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이라는 제목의 가요도 있고, '찬바람이 불면 제가 떠난 줄 아세요'라는 가사의 가요도 있다.
(그러나 운치 없게도 나의 이별은 대개 여름이었다. 그렇다고 그런 이유로 여름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습이 문제일 뿐이다.)
가을은 이별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아일랜드의 시인, W.B. 예이츠도 이렇게 썼다.
가을은 우리를 사랑하는 긴 잎새들 위에도,
보릿단 속 생쥐 위에도 와 있다 ;
머리 위 로웬나무 잎사귀도 노랗게 물들고
젖은 들딸기 잎도 노랗게 물들었다.
사랑이 시드는 시간이 닥쳐와
이제 우리들의 슬픈 영혼들도 지칠 대로 지쳤다.
자, 우리 헤어지자, 정열의 계절이 우리를 잊기 전에
그대 수그린 이마에 입 맞추고 한 방울 눈물을 남기고서.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낙엽> 전문
모드 곤은 자신을 사랑한 예이츠에게 이렇게 쐐기를 박았다.
"우리는 10년 동안 좋은 친구였어요. 하지만 당신의 아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예이츠는 쉰 살이 넘도록 30년간 청혼했지만 늘 거절당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예이츠는 노벨상보다는 모드 곤을 더 원했을 듯싶다.
아마도 모드 곤의 거절이 예이츠의 도파민 과도 분비를 부추겼으리라. 하지만 이런 욕망의 아이러니에 대해서보다 다음의 생각이 먼저 든다.
50살이 넘도록, 이라니. 기다릴 줄 알았던 예이츠는 늙지 않았었다.
가을을 노래할지언정, 그는 가을이 아니라 대개 태양의 계절을 살고 있었던 것이리라. 각자의 길을 가게 된 훗날 그는 이렇게 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는 당신을 내 영혼보다도 더 사랑했습니다....."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또 잔은 너와 영원한 사랑
언젠가 한 지인 분이 '아프길 원해'라는 제목으로 곡을 썼다. 내가 물었다.
"제목이 왜....?"
그가 대답했다. "그냥 생각 없이 지은 겁니다."
"실연의 아픔은 꽤 괴로운데...."
말하자면, 진짜로 아파보면 이런 제목은 쓰지 못할 거라는 오지랖을 떨고 싶었던 거다. '총 맞은 것처럼'이라고 작사한 이는 진짜 총에 맞아본 적이 없다는 데에 내 전 재산과 오른팔을 건다.
한때는 깨어지기 쉬운 마음에 자기 모멸감이 들었지만, 작금에는 그녀가 총을 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철벽의 마음으로 뭔 예술을 하겠냐는 마음마저 든다. 작가 정여울은 '우리는 슬픔 때문에 무언가를 끝없이 창조하는 꿈을 꾸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았나.
기다림의 정서가 없으면 슬픔이 없고, 슬픔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는 생각.
그러고 보니 아프길 원한다는 그의 말이 설핏 이해될 것도 같다.
알고 있나요 매일 이곳에 앉아
그리움에 묻혀 그대 닮은 저 바다
하염없이 그댈 기다려
듣고 있나요 매일 기도해
그리움에 묻혀 그대 닮은 저 바다
하염없이 그댈 기다려
숨 쉴 수 없이 보고 싶어도
그럴수록 웃어 그대가 오면
그댈 향해 한껏 웃을래
을 위하
그리고 또 한 잔은 이해진 나를 위하여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