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초상

-병든 조개의 진주

by 지얼


20250911_104430.jpg 고영범, <레이먼드 카버>

1. 레이먼드 카버


죽은 작가들의 평전을 읽는 일은 꽤 흥미롭다. '사실에 근거한 허구'인 소설보다 더욱 사실적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일생 대부분을 '배부르고 등 따시게' 지낸 작가들보다는 아웃사이더로서 산전수전 다 겪은 이들의 그것에 더 관심이 간다. 정여울 작가는 이렇게 썼다.


왜 작가가 힘든 경험을 이야기할수록 독자들은 좋아할까요. 작가라는 존재는 자신의 고통을 장작으로 삼아 그걸 이야기의 불꽃으로 태워서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존재이기 때문일 거예요. 상처 자체가 하나의 미디어입니다. 상처를 통해서 우리는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지요.

ㅡ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중에서


그래서 나는 다자이 오사무가 마냥 밉지만은 않다. 지구를 다른 별에서 본 지옥으로 보는 관점에 일면 수긍해 본 적이 있는 인간이라면, 그의 죽음에의 충동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바는 아닐 것이다. 외려 그의 절망에 대한 공감을 통해 위로받는다고나 할까.

사소설이든 평전이든, 예술가의 삶을 진솔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픽션보다 직접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관심이 간다. 사적인 생각이지만, 아마도 반 고흐의 평전이 가장 많이 팔렸을 것이다.


평전을 보는 또 다른 재미는 해당 위인의 사생활(주로 연애 행각)을 엿보는 일이다. 며칠 전에 <예이츠와 모드 곤>이라는 제목의 평전을 읽었는데, 20대부터 50대가 될 때까지 한 여자(모드 곤)에게 지속적으로 청혼을 하(다가 그때마다 까이)는 예이츠를 보면 문득 사랑과 집착의 모호한 경계를 느끼게 된다. 다자이 오사무를 향한, 야마자키 도미에의 순정과 동반 자살에의 결단에서도 느껴지는 감정이랄까.

무엇보다 사랑의 실패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일은, 당사자에겐 죄송하지만, 꽤나 흥미롭다. 시엔이 떠났던 날에, 반 고흐는 얼마나 많은 압생트를 마셔가며 자살을 예언한 그녀를 염려하고 또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비관했을까?


생활고를 겪은 예술가에 대해서도 마음이 간다. 동생 테오에게 "그래, 말해다오. 왜 내 그림이 팔리지 않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잘 팔리겠니? 나도 이따금씩은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하소연한 반 고흐의 삶에 호의호식한 피카소의 삶에보다는 더 많은 관심이 갈 수밖에 없고, 빈한한 처지를 초월해 버리는 디오게네스 같은 인물보다는 그 고통을 계속하여 피력하는 약자로서의 인간에게 더 끌린다(그런 의미에서 다자이 오사무도 합격). 더 인간적이랄까.


'더러운 리얼리즘의 대가'로 평가받는 미국의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평전을 구매했다. 근래 앤드루 포터의 단편집 <사라진 것들>을 보면서 문득 '앤드루 포터는 어쩌면 레이먼드 카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을 담은 담백하고 절제된 문체에 깃든 아릿함과 위태위태함.

레이먼드 카버는 '전기도 끊기고 집세도 못 내어 가족이 흩어지는 등 최하의 생활을 이어갔'었다. 직후에는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 문득 술에 절어 술집 바깥에서 40세의 나이로 사망한 에드거 앨런 포 생각이 난다. 레이먼드 카버는 50세의 나이로 죽었다.


난 아홉 살이었다.

평생을 술 근처에서

살았다. 내 친구들도 마셨지, 하지만 걔들은

술에 지지 않았다.

우린 담배, 맥주,

여자애들 두엇을 데리고

아지트로 가곤 했다.

ㅡ레이먼드 카버, <운>


20250911_110039.jpg


멜빌, (오) 헨리, 피츠제랄드, 헤밍웨이, 치버 등 문인들의 알코올 중독은 그리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음악 쪽으로 넘어가면 한 술 더 뜰 것이다. 시인으로 평가받는 짐 모리슨(밴드 The Doors의 보컬리스트)도 과음이 다반사였고, 기타의 신 에릭 클랩튼은 죽으면 술을 못 먹게 될까봐 자살을 억제했다. 드러머 존 본햄과 보컬리스트 본 스콧은 술 때문에 죽었다.


카버는 알코올 중독에 빠지는 동안 소설을 거의 못 썼다. 소설이 안 써져서 술에 빠진 건지, 술에 빠져서 소설이 안 써진 건지 모호하다. 문득 <어린 왕자>가 어떤 별에서 만난 술 주정뱅이 아저씨가 떠오른다. 아저씨는 왜 술을 마셔요?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마시지. 뭐가 부끄러운데요? 술 마시는 게 부끄럽지.

폐암으로 사망하기 전인 몇 년 동안을 제외하면 카버의 삶은 진창 그 자체였다. 돈이 없어 집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부적응으로 직장에서 해고되기도 한다. 그리고 두 차례의 파산 신청, 알코올 중독, 부인 매리앤과의 폭력을 동반한 부부싸움, 게다가 (부전녀전이랄까) 딸도 알코올 중독, 아들은 마리화나 중독.

그리고 이혼.


대학에 입성한 이 무렵부터 카버의 알코올의존증은 본격적으로 심화되었고, 이때부터 <춤 좀 추지 그래?>와 <뷰파인더>를 쓰는 1977년까지의 6년 동안 카버는 단 한 작품밖에 써내지 못한다. 이름을 얻자마자 몰락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

.... 카버의 마지막 침몰 혹은 추락의 과정은 길고도 끔찍했다. 그는 집에서 쫓겨나다시피 해 혼자 사는 동안에도 수시로 가족들을 방문하여 괴롭혔다. 그는 더 이상 그 자신이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그는 마지못해 상대해주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고영범, <레이먼드 카버>


아이러니하게도 카버는 자신의 거친 삶을 작품의 소재로 삼아 현재 존 치버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단편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내면의 어딘가가 심하게 망가진, 문학적으로 재능 있는 이들이 글쓰기로서 삶의 숨통을 틔우는 것이라면, 더 이상 글쓰기에의 영감이나 열정이 고갈되었음을 감지했을 때의 심경은 어떨까? 다자이 오사무도 죽기 직전에 그 괴로움을 토로했다.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져서 죽는 것입니다.


20250911_104553.jpg




2. 겨울새 깃털 하나


생활고 때문이든, 알코올 때문이든, 과거의 트라우마 때문이든 망가진 예술가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에 관심이 많이 간다. 아마도 이런 '망가짐'이 예술가 본연의 모습이라는 편견이 있어서일 것이다.

김혜린 작가의 86년 작 만화, <겨울새 깃털 하나>에 등장하는 시인 '서지한'도 꽤나 망가진 인물로 그려졌다 (어쩌면 작금의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까칠한 차도남'의 원형일지도 모르겠다).

아동 폭력의 트라우마와 글을 쓸 수 없게 된 현재의 처지를 잊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그는(편견일 수밖에 없을) 예술가상의 모범적 태도로 '막 산다.' (과도한) 술, 담배는 기본이고 장발과 남루한 옷차림은 선택, 난잡한 밤 생활은 특별부록.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은 말해 무엇하리(가끔 각혈을 하면 예술가 초상의 완성. 잘생긴 얼굴은 작가 욕망의 반영).

까칠했지만 못생긴 나는, 까칠하지만 잘생긴 서지한이 부럽기만 하다.

다운로드파일.png



여주인공 '신애'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가며 플러팅을 시도한다.

"고료 타셨죠? 한 턱 내세요."

그러자 이 서지한이라는 작자가 대답하기를,

"이건 화대로도 부족하다고."

1980년대의 만화 작가이든, 2020년대의 드라마 작가이든 젊은 여성 작가들에게, 까칠하지만 잘생긴 나쁜 남자는 세대를 초월하는 로망인 것일까?


비가 내리는 어느 밤, 신애는 우산도 없이 정처 없이 걸어가는 서지한 앞에 나타난다. 그리고는 대뜸 그의 품에 안긴다. 눈물을 흘리면서.

이 순간, 서지한이 나지막이 내뱉은 한마디.

신애.

밥 할 줄 알아?

(젠장, 나도 써먹을걸...)

이로부터 약 16년 후,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는 유지태에게 비슷한 취지의 플러팅을 시도한다.

라면 먹을래요?


20250913_131725.jpg
20250913_131926.jpg


20250913_134126.jpg 나쁜 놈.........


(이하 스포일러 주의)

그전에, 사실 신애에게는 자꾸 결혼을 종용하는, 의사인 남자 친구 '승우'가 있었다. 신애는 그와 함께 승우의 형 내외를 만나 인사를 드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신애는 자꾸 딴 곳을 본다. 바로 화대가 부족한 데다가 밥도 못 짓는 그놈.

그리하여 승우에게 이별을 고하고 폐병쟁이 지한과 동거 생활에 돌입한다. 그러나 트라우마에 지배되어 더 이상 글을 쓰지 못하는 서지한은 더욱 망가져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애는 지한에게 전 여자와 그녀 사이에서 생긴 딸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지한의 전 여자가 바로 승우의 형수라는 사실과, 승우의 형은 지한과 자기 와이프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자기의 딸인 줄 알고 여태껏 키워왔다는 사실도....

(사랑과 전쟁?)

자기 때문에 지한이 더욱 글을 쓰지 못한다고 생각한 신애는 결국 지한의 곁을 떠나는데....


아쉽다. 김혜린 작가가,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에서처럼 생활과 예술 사이에서 방황하는 예술가상을 부각했으면 좋았을 텐데. 더 나아가 밥벌이가 창작을 좀먹는 과정과 그에 따르는 고뇌를 집중해서 다뤘으면 공감이 더 많이 갔으련만. 아쉽다(물론 개인적인 아쉬움에 불과하다).

주변 음악인들이 흔하게 하는 말이 있다. 음악을 하자니 돈이 안 되고, 돈을 벌자니 음악을 못하겠고. 어디 이게 음악 하는 인간들에게만 해당되는 일일까. 레이먼드 카버도 밥벌이와 글쓰기 사이에서 항상 고뇌했다.

언젠가 한 후배가 유명한 중견 가수 윤 XX 쌤과 함께 한 술자리에서 그분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자네, 기타 친다고 했나?

열심히 하게. 열심히 하다 보면

중산층은 될 수 있을 것이네.


(윤 XX 쌤.

중산층도 힘들어요...)


밥벌이의 괴로움에 대한 묘사의 부재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지한의 그 한마디는 삶의 귀감이 될 것이다.

수지,

밥 할 줄 알아?


꺼져줄래?


3. 병든 조개의 진주


...우리들 각자는 인간 전체에 적용되는 인간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고 보통사람과 같은 희망, 같은 감정, 같은 정열에 따르지 않는, 이를테면 조개 속의 진주처럼 일종의 자연적 아름다운 질병으로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토마스 울프,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중에서


글이 안 써지는 작가의 고뇌에 대해서는 다소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존재의 기반에 녹이 슬어가는 것을 빤히 방치할 수밖에 없는 자의 무력감을. 평생 트라우마에 짓눌려 정신의 기저에 불안과 우울이 통주저음처럼 깔려있는 자의 위태함을. 미래를 낙관할 수 없는 전망의 부재와 아웃사이더로서 지속해야할 생에 대한 불안함을.

어쩌면 지극히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예술지상주의적 면모조차도.


그 순간 카버는 무너진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살게 되리라는 것, 삶은 결코 나아지지 않으리라는 것, 절대로 다른 작가들처럼 작품에만 몰두해서 지내는 삶을 누리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위대한 작품은커녕 장시간의 집중을 요하는 장편은 절대 쓸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마치 어떤 깨달음처럼 몸으로 덮쳐오는 경험을 한 것이다.

-고영범, <레이먼드 카버>


작가 이문열이 편집한 단편 소설집 <세계 명작 산책>의 제 9권 제목은 '병든 조개의 진주'다. 서문에서 그는이렇게 썼다.


상식이나 논리로 해석이 안 되는 인물과 사건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초월성이나 신성함을 부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광기나 일탈로 제쳐놓는 것이다. 하지만 초월성이나 신성함을 부여하는 경우에는 매우 예외적이어서 대개는 광기와 일탈로 제쳐놓기 십상이다.(...)

...여기서 살펴보고 싶은 것은 광기와 일탈의 다른 의미ㅡ예술적 효용이다. 말 밖의 말, 논리 밖의 논리로 직관에 이른다는 종교적 수행방식과 마찬가지로 예술도 일찍부터 광기와 일탈의 눈부신 결정(結晶)들에 주목해왔다.

듣기로 병든 조개만이 진주를 품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정신도 때로는 병들어서야 더 찬연한 아름다움과 진실을 드러내는 수가 있다.(...)


내가 진주라는 결정을 창조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덜 병든 탓일지도.




사족 :

창작력이 넘치는 남자는 바람을 피울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과도한 도파민 분비 때문이란다.

이게 뭘 말하는 거냐고?

예술가는 신랑감으로 이란 얘기지, 뭐.


20250913_131013.jpg
20250913_130436.jpg


나도 한때는 조또 재능도 없으면서 이렇게 까칠하기만 한 적이 있었지....

졸라 반성.


병든 조개의 전범, 짐 모리슨(1943-1971)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무지개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