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하는 사랑
"굳이 존재란 말 대신에 '실존'이란 말을 쓴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일단 태어난 인간은 다른 존재, 예를 들어 호랑이나 나비와 달리 자신의 죽음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어요. 동물도 죽지만, 죽음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진 않아요.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보면서 자신의 현재 삶을 살지요.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매 순간 판단하며 살지요. 삶의 의미는 바로 거기서 나타나게 됩니다. 죽음에 미리 달려가봄으로써 자신의 삶을 의식하며, 거기서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게 인간이지요.
결국 '실존'이란 죽음으로 미리 달려가봄으로써 자신의 삶을 인식하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자신에게 의미 있는 존재방식을 선택하는 '자유'같은 겁니다. 그것은 주어진 생명을 그저 본능대로 소모할 뿐인 동물과는 다르지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구역질 나는 상황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겁니다. 이런 뜻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는 것은, 개개인이 주어진 순간에 가장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는 삶-이게 바로 '자유'죠-이 있을 뿐, 어떤 주어진 본질을 실현하기 위해 인간이 살고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담고 있는 겁니다."
-이진경 著, <철학의 모험> 중에서
본 작품집은 총 4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상받지 못한 엘리시오를 위해>
<켄싱턴에 바치는 꽃다발>
<슬퍼서 날개가 없어서>
<9월의 4분의 1>
각 작품들 속에는 어김없이 너무나 친근한 음악들이 배경을 이룬다(작품 순서대로 비틀스-롤링스톤즈-레드제플린-아바의 음악이 나온다). 특히 <슬퍼도 날개도 없어서>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자취방에서 애인에게 기타 연주를 들려주는데, 바로 레드제플린의 기타리스트인 지미 페이지의 연주곡인 'Bron-Y-Aur Stomp.'
이 작품집의 단편들 중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9월의 1/4>이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스포일러 주의).
주인공 겐지의 꿈은 직업 작가. 꿈을 이루기 위해 일찍이 '미리 세워 둔 계획을 따라 앞으로 필요하게 될 것 같은 책을 차례대로 읽'고, '지구력을 기르기 위해 세계 명작 장편들을 모조리 읽고, 순발력을 기르기 위해 근대시를 골라 읽은 적도 있'으며, '유행을 탐색하기 위해 신인들이 쓴 책은 장르를 불문하고 거의 섭렵'한다. 그리하여 스물두 살 봄, '기술은 다 익혔으니 이제 실행에만 옮기면 된다고 생각'하였으나 집필은 초장부터 좌초하기 일쑤다.
문학에의 '앎'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낀 겐지는 '삶'을 느끼기 위해 거리로 나간다. 그러나 실제로 얻은 건 술로 대변되는 방종과 타락, 그리고 창작을 향한 열정의 냉각뿐. 그리하여 겐지는 스물두 살 때 꿈을 접고 전기밥솥 판매원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창작에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전기밥솥 판매량에의 실적은 전혀 그의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는 도피하듯 사표를 내고 브뤼셀의 그랑 플라스(Grand Place)로 향한다. '그랑 플라스라는 광장 같은 공간, 혹은 좌절감에서 도망칠 장소'가 필요했던 것.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나오'라는 동갑내기 여인을 만나서, '목적도, 용도도, 물론 설계도도 없'는, 이른바 '실존적'사랑에 빠진다. 스물일곱 해의 어느 날의 일이다.
본문에 소개된, 쟝 폴 사르트르의 '실존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렇다.
'지우개라고 하는 것은 미리 그 기능을 예상해서, 그렇게 되도록 설계해서 만들어진다. 그것은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와 달리 예상되는 기능도 설계도도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런 존재를 실존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러니까 겐지와 나오의 사랑은 정해진 목적이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실존적 사랑이었던 것.
'무언가를 지우기 위해 만들어진 지우개가 아닌 것처럼, 무언가 목적을 가진 사랑이 아니었다. 단지 막연하면서도 돌연한, 그러나 확실히 실존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절연되지 않는 과거의 상처로 인해 현재진행형의 상처를 품고 있었던 나오는 '다음에는 9월 4일에서 만나요'라는 모호한 내용의 편지 한 장만 남겨두고 떠난다. 겐지는 몇 년 간 9월 4일만 되면 그녀를 기다렸으나,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오와의 이 '실존적' 사랑의 경험은 창작에의 작은 불씨가 되고, 겐지는 '미리 설계도를 그리고 기능을 정한 것이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시절, 그리고 그 설계도에만 매달려서 실존하는 소설에 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도 못했던 시절, 그저 괴로워서, 하지만 그 폐쇄감을 어떻게든 타개하기 위해서, 무턱대고 책상에 붙어 있는 나날들'에 작별을 고한다. 그는 오랜 세월을 보낸 후에 소설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건축물은 어떨까?" 나는 물었다. 조엘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것은, 그야말로 면밀한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완성도 역시 정해져 있는 것이니까, 존재 중의 존재이지 않을까? 명실공히 사르트르가 말하는 존재의 우등생이지."
"그럴까?"
"무슨 말이야?"
"확실히 건축물은 설계도에 의거해서 만들어져. 하지만 완성되는 것은 그대로의 기능뿐일까? 그렇지 않은 건축물도 분명 있지 않을까 하고 나는 오늘 앙칼의 건축물을 보고, 그리고 이미 없어져버린 건축물을 상상하고 생각했어. 완성된 건축물은 그 기능 이상의 것을, 설계자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가져올 때도 있다고 말이야."
"생각지도 않은 것?"
"그래. 예를 들면 예상치도 않았던 아름다움. 완성되고 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설계도라는 평면에서는 상정할 수 없었던 구조."
"하지만 그것은 디자인이나 기능미에 포함되잖아? 계산되어 있는 거야."
"그럴까? 그럼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격, 이런 걸 느끼는 인간이 있을 것이라는 것도 미리 짐작하고 있었을까? 건물이 부서지고 몇십 년이나 지난 후에도. 만약 그렇지 않다면 설계했던 것 이상의 기능을 그 건물들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 되지.... 요컨대 나는 이렇게 생각해. 앙칼의 건물은 실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랜 세월이 흘러 40대가 된 겐지는 친구인 조엘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를 찾아가고, 프랑스 지하철의 노선도를 훑어보던 중 지하철 3호선에 '쿼터 셉템버'라는 이름의 역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쿼터 셉템버라는 로맨틱한 이름의 역이 있군."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될 즈음에 나는 조엘에게 말했다.
"9월의 1/4이라니 말이야."
그러자 조엘은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쿼터 셉템버가 아니라 까흐띠에 셉땅브흐."
"까흐띠에 셉땅브흐?"
"그래."
"영어로 읽었었군."
"그리고 4분의 1이 아니야. 9월 4일이란 얘기지."
9월 4일 역이라니. 프랑스 사람들은 운치가 있다.
제3공화국이 수립된 날을 기념하여 이런 이름을 붙이다니.
주인공은 나오가 9월 4일 역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인연의 엇나감에 회한을 느낀다. 당시에 그는 9월 4일이라는 시간에 나오를 기다렸고, 나오는 9월 4일 역이라는 공간에서 그를 기다린 것이다.
나오가 편지를 모호하게 남긴("9월 4일에서 만나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오는 분명 불안했던 것이다. 그대로 나와 사랑에 빠져서, 그리고 자기 나름대로 과거청산도 못한 채 질질 끄는 사귐이 시작되어 버리는 것이. 그래서 자신이 남긴 편지에 내기를 걸었던 것이다. 내가 알아차릴지, 어떨지. 그 아주 작은 가능성에.
그리고 나는 내기에 졌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두 사람은 재회하지 못한다.
그렇게 13년이 흘러간 것이다.
'잃어버린 사랑은, 철거된 건물처럼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단지 잔상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잔상이기 때문에 보다 선명하게 마음에 계속 투사되는 면도 있다. 남겨진 건물보다도 철거된 건물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되듯이.'
소설의 마지막 문장.
'나는 너를 만나기 위해 유럽에 온 것이었다. 그리고 네가 선언했던 것처럼 쓸 수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끓어오른 듯이, 죽어 있던 시계가 갑자기 째깍거리며 돌아가듯이. 잘 되고 안 되고는 둘째 치고, 좋고 나쁘고는 별도로 하고, 나는 벌써 세 편이나 소설을 쓴 것이다..... 나오를 기다리면서, 9월 4일역을 감싸고 있는 적막 속에서 나는 되풀이해서, 되풀이해서 생각했다. 너와 만났을 때, 그때는 괴롭고, 절실하고, 슬펐지만, 그래도 역시 자유로웠다고. 분명, 막 만들어낸 솜사탕만큼.'
정말 그랬다. 불확실성 때문에 괴로웠고, 절실한 만큼 잡히지 않는 꿈들로 인해 슬펐다. 공허함과 동시에 자유로웠다. 실존적 고민을 안고 살았던 젊은이들이라면 그 누구나 자유와 공허의 어울리지 않을 법한 공존을 경험하지 않았을까. 전망의 결여에 절망하며.
소설이든 삶이든 실존하는 것은 설계도(본질) 안에 갇히지 않는다, 이것이 아마도 저자가 사르트르의 견해에 덧대어 하고 싶은 얘기이리라. 더불어 우리가 추구해야할 것은 목적과 용도를 추구하는 본질적 사랑이 아니라 그랑 플라스 광장의 돌 위에 남겨진 물방울처럼 투명하고 빛나는 실존적 사랑이라고.
사족 :
꿈.
꿈이라니.
목구멍이 포도청인 삶에서 꿈이란 한갓 미몽이요 사치에 불과한 것일까?
하지만 윤택한 삶이 보장된다고 한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본래적(非本來的)인 삶'에서 벗어나려는 자유를 선택하게 될까? '본래적 삶'이 윤택함과 대체로 등가관계가 아닌 한, 대개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경제적 동물이기를 희망하여 고착되고 마는 건 아닐까?
고(故) 장영희 교수는 자신의 에세이 <내 생애 단 한번>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들어 슬픈 일 중 하나가 이제는 사람들이 내게 꿈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2013. 8. 22.
Vanessa Paradis - <Station Quatre Septembre>
우리는 어느 날 아침 9월 4일 역에서 만났죠
On s'est connus un matin station quatre septembre
다음날부터는 커피를 함께 마시기 위해 다시 만났어요.
Reconnus dès le lendemain pour aller boire un café ensemble
적어도 내게는 함께 하는 것 같았죠
On en a fait du chemin, du moins il me semble
와인 첫 잔을 마실 적부터 말없이 마지막 키스를 나눌 때까지
Depuis le premier verre de vin au dernier baiser sans la langue
뒤뜰에서 12월의 냉기를 함께 느끼며
On a connu les arrières cours, les frimas de décembre
부드러운 발길로 갑자기 뛰어다니는 천진난만한 소녀들
Les ingénues qui portent court, qui font du pied aux pieds tendres
습한 밤이 퍼지네
Les nuits moites allongé sur le coco et la cendre
고급 와인, 적나라한 불행, 하지만 함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지
Le vin chenu, la misère nue mais quel bonheur ensemble
다음 세기에도 나는 여전히 말하고 있겠지
Même au siècle prochain j'en parlerai encore
우리는 어느 날 아침 9월 4일 역에서 헤어졌지
On s'est perdus un matin station quatre septembre
어쩔 줄 모르고, 와인에 취해 게슴츠레한 눈으로
Eperdus, ivres de ce vin qui vous fait les yeux en amandes
우리는 모습을 숨기고, 너는 다리를 올리고
On a rasé quelques murs, toi levé quelque jambes
괴상망측한 생각으로, 모두에게 작별을 고하기
Une pensée bien saugrenue, dire adieu à ces grands ensembles
부드러운 밤이여 안녕, 따스한 포옹도, 아몬드 우유도 안녕
Adieu nuits tendres, adieu caresses, adieu lait à l'amande
기쁘게 함께 마시던 커피도 안녕
Adieu relative allégresse de prendre un café ensemble
다음 세기에도 나는 여전히 말하고 있겠지
Même au siècle prochain j'en parlerai encore
난 여전히 울고 있겠지
J'en pleurerai enc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