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

-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

by 지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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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에는 왕도(王道)가 없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을 이 말은, 학문에는 편법을 통한 지름길에 이르는 길이 없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런 의미로 파악하다 보니 ‘왕도’라는 것이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는 듯하다. 사전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1. 임금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
2. 인덕(仁德)을 근본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도리. 유학(儒學)에서 이상으로 하는 정치사상.
3. 어떤 어려운 일을 하기 위한 쉬운 방법.

그런데 1과 3의 의미가 ‘왕도’라는 한 단어에 공존하는 것이 기묘하다. ‘임금의 도리’가 ‘쉬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라니, 임금은 그 막강한 권력으로 인해 범인(凡人)들보다는 어떤 일을 처리함에 있어 쉽게 행한다는 뜻일까? 그건 아니겠지.

이렇게 받아들이면 ‘왕도’라는 말은 그 무게감을 상실한다. 모리 히로시의 <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에서, 기시마 선생은 학문의 왕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학문에 왕도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지?”
“음… 왕이 지나는, 그런 특별한 길은 없다, 즉 성실하게 열심히 배울 수밖에 없다는 의미죠.”
“내가 말한 왕도는 그것과는 다른 의미야. 전혀 반대지. ‘학문에 왕도가 없다’에서 왕도는 ‘Royal road'라는 의미지. 그게 아니라 패도(覇道)라고 해야 하나? 나는 왕도라는 말을 좋아해서 나쁜 의미로는 절대 쓰지 않아.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학문에는 왕도밖에 없어.”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왕도를 걷는다.
“나는 최소 17시간은 연구에 소비했다. 열심히 한다는 의식은 전혀 없고 , 오히려 그 반대였다. 가능한 한 열심히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잠자는 시간도 아까워서 건강을 잃어 연구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될까 무서웠던 것이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에 의해 알려진 ‘Flow’라는 낱말은 현재에 온전히 몰두하는 경험을 뜻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일을 집중하여 행할 때는 시간 감각을 잃어버린다. 두세 시간 정도 했을까 생각하여 시계를 보면 어느새 대여섯 시간이 흘러가버렸음을 알아차리게 되는 때가 있다. -이런 경험이 꽤 있었던 것 같다. 학원에서 어떤 곡을 편곡하고 있었을 때 한 초딩이가 왔다.


"안녕하세요." 초딩 진혁(가명) 군이 인사를 했다.

"안녕."

진혁 군이 연습을 위해 기타를 꺼내 들었을 때 내가 말했다.

"10분 동안만 저번에 배운 곡 연습하고 있어. 알았지?"

"네" 그가 대답했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나는 편곡 중이었던 곡의 악보를 접은 후 보면대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자, 이제 레슨을 할까? 한 15분쯤 지났지?"

그러자 진혁 군이 말하기를,

"40분 지났는데요..."


하루에 17시간을 연구에 소비했다는 얘기는, 17시간 동안 연구할 것을 목표로 했다는 것이 아니라 하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지나가버렸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런 것도 타임슬립의 일종일까. 시간은 확실히 일정하게 흐르지 않는다. 아마도 카이로스의 시간은 더 빠르게 흐를 것이다. 고딩 시절의 수학 시간은 너무 길고 수지(가명)와 대실한 후 함께 지낸 한 시간은 너무 짧다. 군대에서의 2년은 너무너무 길고 대딩 1,2학년 시절의 2년은 너무나도 짧다.


아이들이 놀이에 열중한 모습을 떠올려 보라.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한 그 모습에는 아이와 세상은 다 사라지고 그저 놀이만 남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어른들 역시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 자신을 벗어나 자기가 하는 일과 하나가 되는 일은 분명히 가능하다.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신체적 요구는 줄어들고 시야가 좁아지며 시간 감각이 멈춘다.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중에서


중딩이 시절, 교실의 게시판에는 담임 쌤이 직접 써서 붙여 놓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귀가 있었다.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

무슨 소리! 부지런한 꿀벌도 실연은 슬프다고! 그때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실연도 못해 본 주제에).

지금은 대충 그 말의 의미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을 듣다 보니 어느덧 찾아온 새벽의 여명, 늦게까지 기타 연습을 한 후 동아리 방에서 나오자마자 축축하게 스미던 새벽안개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사적인 우울이나 슬픔은 공기 속에 녹아버리고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그 순간의 상태가 행복이라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ㅡ 존재의 충일감을 오롯이 느끼고도 남음이 있었다.

보들레르는 이렇게 썼다.

취하게 하라, 언제나 너희는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너희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너희를 지상으로 누르고 있는 시간이라는 끔찍한 짐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너희들은 여지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얼 가지고 취하는가?
술로, 또는 시로, 또는 당신의 미덕으로, 그건 좋을 대로 하시오. 하여간 취하여야 한다.


아드리안 반덴버그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라는 제목의 소설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과거는 우리에게 아무 소용이 없어. 미래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지. 오직 현재만이 실재하는 거야. '바로 지금'. 오늘을 잡아야 해."

"영혼을 구원하는 길은 모든 감각으로 온전히 지금 듣고 행동하는 것에 몰입하는 것이다"라고 수사 베네딕트 폰 누르지아는 말했다. 붓다는 온전히 순간에 몰입하는 것을 깨달음에 이르는 여덟 가지 방법들 중 하나라고 하였다고 한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즉 음악감상, 독서, 대화, 관광 등에도 전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바로 이 순간에 하고 있는 활동만이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어야 하며, 완전히 몰두해야 하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은 플로우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플로우는 '취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취할수록 술자리는 길어지고 새벽이 빨리 찾아온다. <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는 학문에 제대로 취한 사람들의 얘기다.


언젠가, 하루에 기타 연습은 몇 시간이나 하느냐는 인터뷰어의 질문에 대해 기타리스트 아드리안 반덴버그는 이렇게 답변했다.

"새삼스럽게 연습이라는 것을 한 적은 없습니다."

그의 실력을 감안했을 때, 얼핏 들으면 하루에 잠은 8시간을 자고 교과서 위주로 공부한 수능 전국 1등 학생의 말보다 더 황당하게 들린다. 이 말에서 반덴버그의 시건방을 읽는 것은 잘못이다. 그는 아마도 이런 얘기를 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제게 있어 기타 연주는 그냥 놀이입니다.'

노력하는 놈은 노는 놈을 못 이긴다. 제대로 미쳐서 노는 놈을.

학문에는 왕도밖에 없다는 기시마 선생의 말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공부가 놀이가 될 때 왕도가 열린다는 것.




...아마 아직 나는 '생활'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그로부터 수년 후 나는 그것을 알게 된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고, 가정이란 것이 나를 둘러싸게 되고, 거기에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생활'이 있어서 편리하겠다, 꼭 그것이 필요하다 하는 식으로 차례로 갖춰야 할 것들이 생긴다. 일로 번 돈은 순식간에 '생활'로 전부 사라지는 구조가 된다. 어른이란 이 구조 속에 있는 사람들로, 어느새 나도 그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더이상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

(...)

수식이나 수치 계산 속에 모든 모험흥분이 있다. 그에 비하면 실생활의 매일매일은 거의 변화가 없다. 자고, 깨고, 먹고를 반복할 뿐이다. 지금의 소박한 생활로 충분 살 수 있고, 살기만 하면 연구를 할 수 있다. 그 외에 필요한 것이 있을까?

-모리 히로시, <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 중에서


2014. 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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