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빛도 없이

-크눌프, 삶으로부터의 세 이야기

by 지얼
스크린샷 2025-10-17 오후 4.21.22.png 히데 (1964-1998)


오랜만에 X-japan의 기타리스트였던 히데의 솔로 음반 수록곡인 Rocket dive를 듣는다.

사견이지만, '가요풍+스피드 메탈'의 분위기를 풍기는 X japan의 음악보다 히데의 음악이 훨씬 세련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노래 초반의 '앵앵'거리는 듯한 보컬은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22년 전, 히데의 급작스러운 죽음 이후에ㅡ 마치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발간 직후 여러 명의 독자가 그랬던 것처럼ㅡ여러 여성 팬의 모방 자살이 잇따랐다고 한다.

자살로 발표되었지만, 이후 여러 정황적 증거로 인해 일종의 사고사로 인식되어 가는 듯하다.

그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은 57세였을 테다. 세월 참....


히데를 생각하면서 이런 망상을 한다.

어느 날, 신께서 왕림하신다.

내게 다음의 제안(밸런스 게임)을 하신다.


두 가지 삶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라.

히데처럼 굵고 짧게 살다 갈래,

아니면 너처럼 가늘고 길게 살다 갈래?


나 : '굵다'는 게 뭔 뜻인데요?

신 : 유명한 작품이나 업적을 남긴다는 뜻이지.

나 : 그럼 '가늘다'는 건요?

신 : 그건 너처럼 업적도 없고 그다지 남긴 작품도 별로 없거나 아예 없다는 것이지.


'굵고 짧게 살다 간 사람의 명단은 엄청 길 것이다. 예술가들만 살펴봐도 커트 코베인,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랜디 로즈, 모차르트, 슈베르트, 쇼팽, 브론테 자매, 퍼시 셸리, 실비아 플라스, 이상, 김소월, 김유정, 윤동주, 박인환, 제임스 딘, 리버 피닉스, 히스 레저, 반 고흐, 라파엘로, 장 미셸 바스키아 등등등.....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가늘고 긴 삶을 지향하는 사람은 진정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철학자 강신주의 강연을 통해 들은 이야기이다. 언젠가 그가 길을 가는데 길 건너편에서 한 청소미화원 아저씨가 열심히 빗질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 근처에 있었던 어떤 아주머니께서 그 환경미화원 아저씨를 가리키며, 동행한 자신의 초등학생 아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고.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돼.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 있는 의자에 멍 때리며 앉아있는데 대문 바깥으로 쓰레기봉투를 실어 나르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들의 부산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부와 명예를 성공의 척도로 삼는 이에게는 퇴락한 삶이겠지만, 오랫동안 늦은 아침까지 자빠져 자곤했던 내게는 부끄러움을 일깨우는 성실한 삶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대체 나라는 인간은....


간만에 아침 일찍 일어나 근래 만든 곡을 연습하고 퇴고(?) 해 본다. 적어도 오늘 아침은 덜 부끄럽다.

그래도 약간의 자괴감은 남아 있다. 내 일에 대한 성실함생활에 대한 성실함은 일치하지 않고 대개 겉돌고 만다.

문득 군대 훈련병 시절에 평소 나를 우습게 보았던 어느 동기생이 내게 빈정거리며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는 기타 치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대체 뭐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그의 안면에 작렬한 라이트훅은 내게 연타로 되돌아왔다. 그를 떡실신시킨 후에 내려다보며 "기타 말고 쌈박질도 잘하거든? 이 X새야."라고 멋지게 응징하고 싶었는데.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기타 말고 ....도 잘하거든?" 하지만 현실의 나는 삼각김밥의 포장지도 제대로 뜯지 못해 늘 김과 밥이 분리된 채로 그것을 먹는다.

생활 부적응자.

이후에 퇴소할 때 그 동기생과 화해를 했는데, 딱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그랬다기보다는 아마 그렇게 하는 게 폼이 난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가끔은 내 삶과 이렇게나마 화해하고 싶다.


아마도 내가 창작한 음악과 글은 결국에는 소멸되어 버릴 테니 내 인생이란 그저 '가늘고 긴' 삶으로 귀결될 것이다. 이것이 삼각김밥의 포장지도 제대로 뜯지 못하는 삶의 대가인가,라고 생각하면 간혹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문득 중학생 시절에 교회에서 들었던 찬송가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2021. 9. 21.

영화 <낮은 데로 임하소서>의 한 장면




...... 한편 그는 이 며칠 동안은 경건한 마음으로 인자하신 하나님 앞에 서서 끝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가 하나님과 나눈 대화는 그의 생애가 무의미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인자하신 하나님은 빙그레 웃고만 계셨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가끔 흰 눈에 파묻혀 버리는 것이었다.

"크눌프야!" 하나님은 타이르듯 말씀하셨다. "너의 청년 시절, 즉 오덴발트에서 보낸 일들을 돌이켜 보려무나. 너는 어린 사슴처럼 춤추며 아름다운 생명이 전신에 약동하는 것을 느끼지 않았느냐? 너는 노래나 하모니카의 명수가 되어 처녀들을 매혹시키지 않았느냐? 그리고 바우에르즈빌에서 보낸 일요일들이며, 너의 첫 애인인 헨리에트를 잊었단 말이냐? 너의 인생은 그래도 전혀 무익했단 말이냐?"(...)

"네! 그것은 아름다웠습니다."

크눌프는 이렇게 입 속으로 되뇌면서도, 고달픈 어린이처럼 항거하며 북받쳐오는 서러움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 시절은 아름다웠습니다. 비록 죄악과 비애가 엇갈렸을 망정 분명히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그 무렵에 저만큼 밤마다 술과 춤으로 사랑에 도취된 사람도 흔치 않을 겁니다. 그러나 그때 이미 끝맺었어야 했을 인생을 가시 돋친 행복을 안고 뒤척였습니다. 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는 그런 시절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은 이때 멀리 눈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크눌프는 숨을 가누려고 발길을 멈추었다. 순간 흰 눈 위에 붉은 피를 몇 방울 토하였다. 그러자 하나님은 다시 나타나 말씀하셨다.

"크눌프, 더 말해 보라! (...) 너는 한때 무도장의 왕자로 군림하던 일이며, 너의 헨리에트를 회상하고, 삶의 의의와 행복에 충만했던 때를 잊었느냐? 헨리에트의 사랑도 그러하려니와 리자베트와의 사랑이 있지 않았느냐? 그녀에 대해서도 모두 잊었단 말이냐?"

(...)

"리자베트가 죽어버린 이 세상에 나는 살아 있을 수 없습니다."(...)

"크눌프, 너는 리자베트에게 커다란 슬픔을 안겨 주었지만 한편 더 많은 사랑을 베푼 것도 나는 알고 있다. 이 철부지 같은 놈아, 아직도 너는 모든 것의 진가를 모르는도다. 너는 곳곳에서 어린애 같은 익살과 웃음을 터뜨려 약간의 사랑과 희롱과 감사를 받기 위해 경솔한 방랑자가 된 것을 깨닫지 못하느냐?"

(...)

"듣거라!" 하고 하나님께서는 말을 이었다. "나는 너를 달리 만들 수는 없었다. 너는 내 이름으로 방랑생활을 해오면서, 일정한 고장에 머물러 사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자유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였다. 너는 나의 이름으로 어리석은 일을 저질러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깃들어 있던 나 자신이 웃음거리가 되고, 또한 아낌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 너는 아들이며, 동생으로서 말하자면 내 분신이었다. 그러므로 네가 맛보고 겪은 모든 괴로움은 나도 늘 함께 느꼈던 것이다."

(...)

그는 눈 위에 드러누워 푹 쉬었다. 피로하던 사지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하여 그의 빛나는 눈동자는 웃음을 띠었다. 그러자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하나님의 밝은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이제는 더 불평이 없느냐?" 하고 하나님께서 물었다.

"네, 이제는 불평이 없습니다." 크눌프는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운 듯이 웃어 보였다.

"그럼 모든 것이 될 대로 잘된 것이냐?"

"네, 모든 것이 썩 잘 되었습니다." 크눌프는 이렇게 수긍하였다.

-헤르만 헤세, <크눌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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