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의 불가능함

-배려심....

by 지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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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클래식기타를 잘 연주하셨던, 터프한 성격의 한 선배님이 술자리에서 말씀하셨다.

"주변을 보면 말이야, 손가락이 길고 손톱이 튼튼한 놈들이 오히려 기타 연습을 존나 안 해."

손가락이 짧고 손톱도 얇아 툭하면 부러지는 나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합석해 있던 키 크고 손가락도 긴 후배가 말했다.

"저요?"

선배님이 답변하셨다. "그래 색꺄."


중/고등학교에서 행하는 소위 '방과 후 수업'에 강사로 일한 지 어언 3년째.

학기 말이 되면 어김없이 학생들에 대한 수행 평가를 해서 서면으로 제출해야만 한다. XX중학교의 담당 선생님께서 가급적이면 우호적으로 평가해 달라고 당부하신다. 그러니까 이 말인즉,


홍길동 학생에겐 배우려는 의지가 전혀 없으므로 기타를 시킬 시간에 차라리 부족한 수면을 취하게 하는 것이 차라리 나아 보입니다.....


.....라고 쓰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문제는 항상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들을 평가할 때다.

평가서를 작성하게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동안 한참을 생각하다가 결국 이렇게 작성한다.


홍길동 학생은 기타를 연주하기 위한 아주 좋은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평상시에 꾸준히 연습하는 습관을 들인다면 기량이 향상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 학기가 기대됩니다.


이를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다테마에(겉마음)'라고 한다지.

위 문장에 대한 '혼네(속내)'는 아마 이럴 것이다.


홍길동 학생은 손가락도 길고 손톱도 튼튼함에도, 평상시에 연습은 존나 안 하는 걸로 보입니다. 다음 학기에는 다른 과목을 수강하게 하세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던가.

그건 고래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이고, 대개 악기와는 관련이 없는 것 같다.

다테마에 문화는 위선의 문화일까, 아니면 배려의 문화일까?

물론 선생인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믿거나 말거나.


2022. 6.

내가 이런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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