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은 리얼하다

-개똥철학으로 읽는 동성애

by 지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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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K군(별명 : 음해선생)이 VR이라는 것을 구매하셨다.

내게 그것을 경험해 보는 은총을 베푸셔서 고글처럼 생긴 그것을 착용하였는데… 내 시야에 가득히 들어온 것은 천 길 만 길 낭떠러지에 설치된 롤러코스터였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문득 영화 <매트릭스>에 등장하는 모피어스의 대사를 읇조렸다.


This is not real...


가상현실 속 롤러코스터가 시동을 걸기 시작하고, 이윽고 철길 끝 낭떠러지 끝에 머물게 되었는데… 솔까 엄청 무서웠다는 걸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식은땀에 약간의 메스꺼움은 덤.

이런 것도 있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고층 빌딩의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내 생각에는 여의도에 있는 63 빌딩만큼 높은 것 같다.

맨 꼭대기층으로 올라오니 난간이 없는 옥상 끝에 허공을 향하여 널빤지 한 장이 매달려있다. 음해선생의 요구대로 나는 옥상 끝에 걸쳐진 널빤지 위에 발을 올려놓는다.

걸음을 떼고 아래를 바라보니 천 길 만 길 낭떠러지다.

심적 동요가 인다.

용기를 내어 발걸음을 옮겨 결국 널빤지 끝에 다다르고, 공포심이 심화된다.

다시 한번 생각한다.


This is not real...

This is not real...


그 순간, 나는 음해선생에게 등 떠밀리고, 아래로 추락한다.

건물의 유리창들이 휙휙 지나가는 것이 보이고 지면이 다가오는 게 보인다.

악!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머리로는 이게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추락에 대한 엄청난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하긴,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 분)도 고층빌딩에서 떨어질 때 그러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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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데이비드 흄이라는 이름의 철학자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한다. "이성은 정념의 노예다." 이 견해에 대해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는 이렇게 부언 설명을 했다.


(해리스의 주장에 의하면) "흄의 요지는 힘과 지속성 면에서 우위를 지니고 있는 정념(=감정)에 이성이 늘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핵심은 이성과 정념 간에 이런 식의 갈등이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본질상 이성은 정념과 경합을 벌이면서 인간의 삶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성은 동기를 부여하는 데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이성 혼자서는 행동을 산출하지도, 자유의지를 일으키지도 못한다." 이성은 감정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전투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다.

-줄리언 바지니, <데이비드 흄 :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고자 한 철학자> 중에서


정념(감정)은 무엇으로 촉발되는가? 말할 것도 없이 감각에 의해서다. 오감(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이 없다면 과연 어떤 정념이 일어날 수 있을까?

불교의 '12지연기'에서도 그러지 않나. 세상과의 접촉인 '촉'이 있어야 '수(느낌)'가 따르고, 이 '수'로 인해 애(증)의 '애'가 있는 것이라고.

(미안하다. 아는 척 좀 해봤다....)

나의 이성은 VR 속 고층건물이 허상이라는 걸 분명히 안다. 그럼에도 나의 감정은 고소공포를 느낀다. 그러고 보니 "이성은 감정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전투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바지니의 말이 옳은 것 같기도 하다.

세련이나 품위와는 거리가 먼 나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객관적 현실 인식은 시각적 구라 정보 앞에서조차 좆밥이다 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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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아니, 개든 고양이이든 적어도 고등생물체에게는 시각 정보를 뇌 속에 저장하여 그것을 상상으로 재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예컨대 사과라는 대상을 경험한 바 있다면, 이후에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머릿속에서 그것의 이미지(표상)를 그려낼 수 있다.

때로는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정보조차 상상력으로 재현ㅡ표상할 수도 있다. 예컨대 A라는 인간은 동성 간의 성애를 경험한 적이 없다. 그렇더라도 그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꽈추와 '부적절한 부위'와의 결합을 표상할 수 있고 그에 따르는 감정적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이에 대해 어떤 진보적인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그런 (부정적) 반응들을 도덕적 확신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자면, 정서적 반응과 도덕적 입장을 구분해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이 학자의 말에 동의한다. 정서적/감각적으로 차은우가 지얼보다 잘생겨 보인다고 해서 차은우가 지얼보다 더 선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물론 차은우가 더 착할 수도 있다).


....그것은 모든 흑인은 거짓말쟁이이며 근본적으로 부도덕한 창조물이고, 특히 모든 남자 검둥이는 우리 (백인) 여성들 주위에 안심하고 놔둘 수 없다는 억측인 것입니다.

신사 여러분, 우리는 이것이 본질적으로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것은 제가 지적할 필요도 없는 거짓말입니다. 여러분은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 진실이란 흑인 가운데에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음험하기도 하고, 또 여자들 주위에 안심하고 둘 수 없는 흑인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은 절대 특정 인종의 남자들에게만이 아닌 모든 인종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 법정 안에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음란한 행동을 하지 않은 사람도 없으며, 욕망을 품고 여자를 쳐다본 적이 한 번도 없는 남자란 살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에서


에수님도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만 돌을 던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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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연유로 기독교계가, 만만한 게 홍어좆이라고, 틈만 나면 성소수자를 정죄하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것에 대해, 성경에 뭐라 쓰여 있든지 간에 반대한다.


그럼에도, 그런 (불쾌한) 정서적 반응도덕적 확신(동성애는 죄다!)으로 착각하는 점에 대해 아예 이해를 못 할 바는 아니다. 어쩌면 그들의 태도는 표면적으로는 동성애 금지에 관한 성경 말씀에 기대고 있는 듯 하지만, 기실 표상으로 재현된 동성애 이미지에 대한 시각적/감정적 거부감이 성경 말씀보다 선행되기 때문은 아닐까.

성소수자가 선택의 문제가 아닌 자연발생적인 것처럼, 동성애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은 아마도 생래적인 것일 테다. 유전자의 재생산에 기여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유전자는 그것에 대한 거부감을 강화하였으리라.

하지만 이 얘기는 각설하자.

(사실 나도 잘 모른다....)


뭐, 솔까 꼭 동성애적 성애가 아니더라도 인간의 성애는 지극히 도착적이라 '내'가 하는 성애는 그럭저럭 사랑의 행위라는 관념적 차원으로 포장할 수도 있지만 남이 하는 그것에 대해서는 관음적 도착이 작용하는 탓인지라 오로지 육체적인 질펀함으로ㅡ보다 더럽게(?)ㅡ 느껴지는 거다. 아마도 제한적인 시각(내가 붕가붕가하고 있는 나를 보는 것)과 보다 포괄적인 시각(내가 붕가붕가하고 있는 남을 보는 것)의 갭에서 기인되는 듯하다. 배우자나 연인의 육체적 외도에 대한 처절한 분노의 근거이자 야동이 근절되지 않는 근거다. 에리히 프롬이 <인간의 마음>에서 피력했듯이, 내 똥은 타인의 똥보다 덜 더러워 보인다.

그래서 '내가 하면 에로티즘, 남이 하면 야동.'



어쨌거나 <매트릭스>의 네오는 구라일 뿐인 가상세계를 극복했다.

나는 아직 못했다.

그래서 VR 속의 좀비를 보면 기겁을 한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시각의 망상ㅡ시각이라는 우선적인 감각기관이 유발하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그에 따르는 판단ㅡ을 거스르거나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내가 '동성애가 뭐 어때서?'라고 주장하는 것은, 흄의 말대로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이성임에도 꾸역꾸역 이성의 바벨탑을 세우려는 무리수일지도 모르겠다는. 어쩌면 PC(정치적 올바름) 주의를 실천하고 있다는 자뻑(이것도 정념의 일종이다)을 획득하기 위함에 그 동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위 바지니의 글에서, "이성은 동기를 부여하는 데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라고 하지 않았나.

어쩌면 원효대사처럼, 성급히 마신 물이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는 것을 시각으로 확인해도 심정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경지가 요청되어야 이성과 감정 간의 갭이 해소되는 것은 아닐까?

근데,

그게 가능해?


이상 개똥철학.


-2021. 9. 25.


스크린샷 2025-10-18 오후 12.02.04.png '사람 좋은' 흄 아저씨.


To. 기독교인 분들


아무리 그래도 성소수자 좀 그만 괴롭히세요.

그러다가 나중에 하나님께 혼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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