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서평

by 지얼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한 줄 평 :

가독성 쩌는 명작. 완전 강추.

이하 스포일러 있음.



저자는 자살미수의 경험 이후에 삶을 혼돈으로 몰아가는 우주적 법칙-엔트로피의 법칙-이라는 거대한 허무를 직시하면서도 인간이 계속해서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어디서 어떻게 얻는지 알고 싶어서 우연히 생물학자/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추적해 나간다.


특히 어류를 분류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데이비드는 전 세계를 다니며 새로운 어종을 포획해서 이름을 부여하는 일에 열심이었는데 어느 날 지진으로 인해 그가 모은 많은 생물학적 자료들이 파괴됨으로써 수년간에 걸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연구와 분류를 시작한다. 저자는 이 점에 주목한다.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생의 추동력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른바 '긍정적 착각'이다. 엔트로피-혼돈이 자명한 우주적 진실 앞에서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과 자신감. 조던은 말한다. "나는 바라는 목표를 향해 끈질기게 일하고 그런 다음 결과를 차분히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다. 나아가 나는 일단 일어난 불운에 대해서는 절대 마음 졸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이 책도 일종의 자기개발서인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책값 17000원에 대한 본전 생각과 함께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제부터는 스포일러가 독서의 재미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농후함. 주의 요망))


데이비드 스타 조던(1851-1931)


그러나 본서는 절대 자기개발서가 아니다. 저자는 데이비드의 일생을 계속해서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가 자신의 직책과 학문적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진실의 문을 닫아버린 것을 깨닫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멍게나 따개비 같은 한자리에 고착되어 살아가는 생물들이 한때는 물고기나 게처럼 더 높은 차원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나 기생으로 자원을 획득해 온 결과 더 게으르고 더 약하고 더 단순하고 더 지능이 떨어지는 생명체로 '퇴화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더 넓게는, 어떤 식으로든 장기적으로 한 생물에게 도움을 주면 그 결과 신체적으로나 인지적으로나 쇠퇴하게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데이비드의 믿음은 나치가 좋아했던 우생학에의 믿음으로까지 악화된다. '덜떨어진' 존재들은 유전에 의한 것이므로 애초에 그러한 존재들이 태어나지 않도록 불임수술을 행해야 한다는-그리하여 '우성'인 종자들만 남겨야 인류가 발전한다는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인 사이비 과학을 맹신하게 된 것이다.


[.... 이런 글들에서 데이비드는 자신이 지구상에서 제거해버리고 싶은 종류의 사람들-빈민들과 술꾼들, "백치들"과 "천치들", "바보들", 도덕적 타락자들-을 모두 모아 적격자와 반대되는 "부적격자"라는 한 범주에 몰아넣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1970년대까지 "부적격자" 여성들을 대상으로 국가에 의한 감금, 불임 수술이 강제 시행된다. '헐~~~'소리가 절로 나는 대목이다.

본서는 엔트로피라는 혼돈의 우주적 법칙에 맞서 '질서'를 잡으려는 학자들의 '긍정적 착각'에 기인한 맹목이 '범주폭력'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정직한 관점은 우열의 서열-유전적 사다리가 아니라 잡초처럼 보이는 것에도 관점을 달리하면 소중함을 인식할 수 있다는 '민들레 법칙'이라고.

범주폭력이라는 말을 들으니 문득 불교의 '분별'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이진경의 <불교를 철학하다>에서 발췌해 본다.


[분별은 모두 '나'의 기준을 척도로 행해진다. 거기에는 나의 척도에 남을 맞추려는 의지가 작용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남들도 행해야 한다는 암묵적 가정이 분별의 행위 속에 숨어서 작동한다. 그 척도를 내려놓지 않으면 남의 처지가 보이지 않고, 남의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다.(...)그래서 옳은 생각이 강할수록 분별하고 내치는 힘도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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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무언가를 범주화 하는 것 자체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지식의 기반은 범주화를 통해 이루어지니까. 다만 우리가 '이름'을 부여하는 일, 다시 말해 무언가를 '규정'하고 '분별'하는 일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예컨대 교회가 율법이라는 거창한 도덕률을 앞세워 성정체성을 분별하여 정죄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메리는 인형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판단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랑을 지지해준다.]


문득 오래 전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에게 정명석 변호사가 반성하며 한 말도.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고 말한 것은 실례인 것 같아요."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 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300페이지 분량이지만 하루에 다 읽을 수 있다. 그만큼 재미있고 또 감동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철학자와 늑대> 이후로 제일 좋았다.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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