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한 줄 평 :
가독성 쩌는 명작. 완전 강추.
이하 스포일러 있음.
저자는 자살미수의 경험 이후에 삶을 혼돈으로 몰아가는 우주적 법칙-엔트로피의 법칙-이라는 거대한 허무를 직시하면서도 인간이 계속해서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을 어디서 어떻게 얻는지 알고 싶어서 우연히 생물학자/분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일생을 추적해 나간다.
특히 어류를 분류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데이비드는 전 세계를 다니며 새로운 어종을 포획해서 이름을 부여하는 일에 열심이었는데 어느 날 지진으로 인해 그가 모은 많은 생물학적 자료들이 파괴됨으로써 수년간에 걸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연구와 분류를 시작한다. 저자는 이 점에 주목한다. 실패와 역경, 정체에도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생의 추동력은 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것은 이른바 '긍정적 착각'이다. 엔트로피-혼돈이 자명한 우주적 진실 앞에서도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과 자신감. 조던은 말한다. "나는 바라는 목표를 향해 끈질기게 일하고 그런 다음 결과를 차분히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졌다. 나아가 나는 일단 일어난 불운에 대해서는 절대 마음 졸이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이 책도 일종의 자기개발서인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책값 17000원에 대한 본전 생각과 함께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이제부터는 스포일러가 독서의 재미를 떨어뜨릴 가능성이 농후함. 주의 요망))
그러나 본서는 절대 자기개발서가 아니다. 저자는 데이비드의 일생을 계속해서 추적해 나간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가 자신의 직책과 학문적 주장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진실의 문을 닫아버린 것을 깨닫는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멍게나 따개비 같은 한자리에 고착되어 살아가는 생물들이 한때는 물고기나 게처럼 더 높은 차원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으나 기생으로 자원을 획득해 온 결과 더 게으르고 더 약하고 더 단순하고 더 지능이 떨어지는 생명체로 '퇴화했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더 넓게는, 어떤 식으로든 장기적으로 한 생물에게 도움을 주면 그 결과 신체적으로나 인지적으로나 쇠퇴하게 된다고 믿었다.]
이러한 데이비드의 믿음은 나치가 좋아했던 우생학에의 믿음으로까지 악화된다. '덜떨어진' 존재들은 유전에 의한 것이므로 애초에 그러한 존재들이 태어나지 않도록 불임수술을 행해야 한다는-그리하여 '우성'인 종자들만 남겨야 인류가 발전한다는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인 사이비 과학을 맹신하게 된 것이다.
[.... 이런 글들에서 데이비드는 자신이 지구상에서 제거해버리고 싶은 종류의 사람들-빈민들과 술꾼들, "백치들"과 "천치들", "바보들", 도덕적 타락자들-을 모두 모아 적격자와 반대되는 "부적격자"라는 한 범주에 몰아넣었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1970년대까지 "부적격자" 여성들을 대상으로 국가에 의한 감금, 불임 수술이 강제 시행된다. '헐~~~'소리가 절로 나는 대목이다.
본서는 엔트로피라는 혼돈의 우주적 법칙에 맞서 '질서'를 잡으려는 학자들의 '긍정적 착각'에 기인한 맹목이 '범주폭력'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는 정직한 관점은 우열의 서열-유전적 사다리가 아니라 잡초처럼 보이는 것에도 관점을 달리하면 소중함을 인식할 수 있다는 '민들레 법칙'이라고.
범주폭력이라는 말을 들으니 문득 불교의 '분별'이라는 개념이 떠오른다. 이진경의 <불교를 철학하다>에서 발췌해 본다.
[분별은 모두 '나'의 기준을 척도로 행해진다. 거기에는 나의 척도에 남을 맞추려는 의지가 작용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대로 남들도 행해야 한다는 암묵적 가정이 분별의 행위 속에 숨어서 작동한다. 그 척도를 내려놓지 않으면 남의 처지가 보이지 않고, 남의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다.(...)그래서 옳은 생각이 강할수록 분별하고 내치는 힘도 강하다.]
사실 무언가를 범주화 하는 것 자체는 잘못된 일이 아니다. 지식의 기반은 범주화를 통해 이루어지니까. 다만 우리가 '이름'을 부여하는 일, 다시 말해 무언가를 '규정'하고 '분별'하는 일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예컨대 교회가 율법이라는 거창한 도덕률을 앞세워 성정체성을 분별하여 정죄하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을 시사하는 듯하다.
[메리는 인형을 사랑하는 친구에게 판단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랑을 지지해준다.]
문득 오래 전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가 떠오른다. 그리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에게 정명석 변호사가 반성하며 한 말도.
"미안해요. 그냥 '보통' 변호사라고 말한 것은 실례인 것 같아요."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 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300페이지 분량이지만 하루에 다 읽을 수 있다. 그만큼 재미있고 또 감동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철학자와 늑대> 이후로 제일 좋았다.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