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가톨릭 신학자 칼 라너의 신학을 요약한 책, <인간은 신의 암호>.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에 다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젊은 물고기가 바다를 찾고 있었다. 그러자 나이 많은 물고기가 "여기가 바다야"하고 말했다. 그러자 젊은 물고기는 "여기요? 여기는 물인데요? 내가 원하는 건 바다라고요."
구약성경에서 신(야훼)은 아브라함에게 '말한다'. "네 맏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쳐라."
모세에게 '말한다'. "모세야. 네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나와 가나안으로 가라!"
문자주의를 고집하면, 이런 신은 신인동형의 초월적 인격신, 다시 말해 로마의 제우스 신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즉, 인격적 신이 우리를 초월해 '저 높은' 곳에 살고 계시며 우리를 두루 살펴보신다는 생각이다.
기독교의 신관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초월적 인격신관이고, 또 하나는 소위 '범재신론적(신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안에도 밖에도 두루 존재한다는) 신관이다.
칼 라너는 후자를 지지하는 신학자이다. <소울>에서의 나이 많은 물고기와 같다고나 할까. '신', 또는 신성이 모든 존재들 속에 '이미' 선물, 혹은 은혜로서 부여되어 있다. 이슬람교도이든 불교도이든 무신론자이든 상관이 없다. 그것은 선험적으로 이미 부여되어 있는 거다.
그러니까 네 안의 신성과 접속해라. 그리 노력 안 하는 게 무명이고 죄다.... 뭐 이런 알듯 말듯한 내용이다.
... 하나님은 모든 것의 아버지시요, 모든 것 위에 존재하고 모든 것을 통하여 존재하고 모든 것 안에 존재합니다.
<에베소서 4장 6절>
소위 '위경'으로 분류되는 도마복음서에는 이런 얘기도 있다.
'... 통나무를 쪼개어 보라. 거기에 내가 있다. 돌을 들추어 보아라. 그러면 그곳에서 너희는 나를 발견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미' 너는 바다에 살고 있음을 부디 깨달아라. 더불어 그렇기 때문에 너의 일상 체험이 곧 신적 체험이 된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이랄까.
어쩌면 일상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소울>은 칼 라너 신학의 관점에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줄 평 :
범아일여(梵我一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