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 가는 꿈

-꿈보다 해몽

by 지얼

다음의 꿈을 꾸었다.


한 서점에 들어간다.

엄청나게 큰 서점이다.

그런데 50% 세일의 재고정리라도 하는 것인지 책장에 남아있는 책들은 별로 없다.

나는 책장을 둘러본다. 구매하고 싶은 책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좌측 벽면의 책장 상단에서 익히 아는 책을 발견한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최근 이 소설집에 대해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용산참사가 있었던 날에 조세희 작가의 인터뷰를 본 이후로는 아마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초딩 6학년 즈음에 읽었던 이 소설집이 왜 작금에 꿈에?


작금에 이 소설에 대해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연작소설이라는 것과, 첫 번째 장의 제목이 <뫼비우스의 띠>라는 것, 그리고 첫 장면에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굴뚝 청소부들 중에서 누가 세수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다는 것, 마지막으로 작품의 배경이 강제 철거 직전의 가난한 마을이라는 것 정도가 전부다.

(아, 또 하나 있다. 야시시한 장면이 나온다는 거....)

당시 초딩이 6학년의 나이로는 아마도 완독은 불가능했을 테다.


다시 꿈 얘기로 돌아간다.


책장에서 <난쏘공>을 뽑아 든 나는 계산대(계산대 너머의 공간도 엄청 넓었다)로 가서 셈을 치른 후 세월의 흔적이 농후한 책장을 천천히 넘긴다. 아, 그런데....

책이 너무 지저분하다.

밑줄이 문제가 아니다. 어떤 페이지들에서는 대체 이유가 뭔지 문장을 모두 가릴 정도의 무수한 겹줄이 그어져 있다. 그것도 형형색색으로. 이래서야 도저히 읽을 수 없다.

환불을 요청하기 위해 계산대로 발길을 돌린다. 계산원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그때 오른쪽 벽 끝에 있던 문(아마도 화장실이었던 것 같다)이 열리며 그녀가 다가온다.

나는 환불을 받고 서점을 나온다.


대체 이게 뭔 꿈일까?


직관적으로 봤을 때 서점은 내적 성장을 위한 공간을 상징한다.

문제는 그 큰 서점의 책장이 거의 비어있었다는 거다.

혹시나 해서 A.I. 브리핑을 검색해 보았다.


스크린샷 2025-10-25 오전 10.08.39.png

이에 따르면 책장이 비어있는 서점의 꿈은 '개성화, 자기 성장, 새로운 통찰'을 위한 공간이 비어 있다는 얘기가 된다. 꿈(=무의식)의 전언은 어쩌면 이런 게 아닐까?

최소한 너는, 자기 성장의 방식을 책에서 찾지 마라.

마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주인공에게 던진 충고처럼 들린다.


"책은 저쪽으로 내던져 버려요.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인간은 짐승이라구요. 짐승은 책 같은 건 읽지 않아요."


주인공은 이 말을 듣기 전에, (김어준 총수가 말한) '무학의 통찰'을 언급한 적이 있다.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 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오염된 적이 없다. 온갖 것을 다 경험한 그의 마음은 열려 있다.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을 그대로 갖고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더 대왕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듯 풀어 버린다.

그는 온몸의 체중으로 두 발을 대지에 버티고 서 있어서 겨냥을 잘못한다는 일이 오히려 드물 정도다. 아프리카 야만인들은 뱀이 온몸을 땅에 붙이고 있어서 대지의 비밀을 더 잘 알 거라고 믿으며 뱀을 숭배한다고 한다. 배, 꼬리, 그리고 머리로 대지의 비밀을 안다. 뱀은 늘 어머니인 대지와 접촉하고 동거한다. 조르바도 이와 같다. 우리들 교육받은 자들이란 공중을 나는 새처럼 골이 비어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스크린샷 2025-10-25 오전 10.38.00.png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장면


꿈이 내게 전하는 메시지가 '새 말고 뱀처럼 살아라'라는 얘기인가? 아전인수라고 해도 좋다. 일단 그렇게 생각하자.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대체 왜 하필이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인가? 내용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책이 지저분한 이유는? 그것을 반환한 이유는?

그리고 지나치게 넓은 계산대 공간은 대체 뭘까?

머리를 감으며 생각에 잠긴다.

알듯 말듯 머릿속이 간지럽다. 할 수 없이 소년 탐정 김전일을 소환한다.

그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고개를 든다.

수수께끼가 모두 풀렸어!



나 : 대체 <난쏘공>은 뭐고 쓸데없이 넓은 계산대 공간은 뭐냐?

김전일 : 하나씩 물어보시죠.

나 : 그럼 <난쏘공> 먼저.

김전일 : <난쏘공> 읽어 보셨죠?

나 : 끝까지는 아니고... 어쨌든 읽긴 읽었지.

김전일 : 배경이 어떻던가요?

나 : 배경? 글쎄다. 읽은 지가 한참 되어서... 뭐 대충 철거 직전의 판자촌 같기도.

김전일 : 판자촌인지 모르겠지만 꽤 가난한 동네죠.

나 : 그랬던 것 같아.

김전일 : 그런데 가난한 동네가 배경인 그 소설집을 샀다고 했죠?

나 : 그랬지.

김전일 : 근데 글자가 안 보일 정도로 낙서가 되어 있었고요.

나 : 낙서는 아니고... 글자 위에 여러 겹의 줄을 좍좍 그어놓았더라고.

김전일 : 그러니까 읽을 수 없는 책이군요?

나 : 그렇지. 그래서 환불받으려 했던 거고.

김전일 : 사실은 읽을 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읽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나 : 응? 그게 뭔 얘기임?

김전일 : 읽을 수 없는 그 책은 당신이 회피하고자 하는 것을 내용으로 담고 있습니다.

나 : 회피? 그게 뭔데?

김전일 : 가난입니다. 당신은 가난한 삶을 '읽음으로써' 재현하고 싶지 않은 겁니다.

나 : 알아듣게 좀 설명해 봐.

김전일 : 의식적 차원에서 당신은 남들에게 '없어 보이는 게' 싫은 거예요.

나 : 누가 그래?

김전일 : 당신의 꿈이 단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걸요.


어딘가 미덥지 않은 구석이 있다. 말은 그럴 듯 하지만 기실 아전인수식 끼워 맞추기 아닌가?

질문이 더 남아 있다.


나 : 그럼 쓸데없이 넓은 계산대 너머의 공간은 뭐야?

김전일 : '계산'이라는 낱말에서 연상되는 건 뭐죠? 학문인가요? 아니면 예술?

나 : 말이 안 되잖아.

김전일 : 그렇습니다. 계산-계산대에서 연상되는 건 당연히 돈이죠.

나 : 그러니까 네 말은 책장이 있는 공간의 상징과 어쩌면 대립적인 것일 수도 있다, 뭐 그런 얘기인가?

김전일 : '어쩌면'이 아니라 사실 그렇습니다. 계산대 너머의 공간이 넓은 것은 당신의 무의식적 심리를 반영합니다.

나 : 무슨 심리?

김전일 : 금전적 탐욕이죠.... 아니, 말이 좀 지나친 것 같군요. 돈에 대한 애착 정도로 해두죠.

나 : 그거나 이거나.... 탐욕이니, 애착이니 하는 말은 듣기 좀 거북하군.

김전일 : 그런가요?

나 : 당근이지. 궁핍에 기인한, 어쩔 수 없는 돈에 대한 아쉬움이라면 또 모를까.

김전일 : 아쉬움이라....뭐, 대충 그렇다고 해두죠.

나 : 그럼 계산원 아가씨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건 뭐야?

김전일 : '화장실'에서 연상되는 건 뭐죠? 학문인가요?

나 : 항문?

김전일 : 항문 말고 학문이요.

나 : 그럴 리가 없잖아.

김전일 : 그렇죠. 화장실에서 연상 되는 건 바로 '똥'입니다.

나 : 똥이라고? 그래서?

김전일 : 정신분석학에서 똥은 돈의 상징이죠.

나 : 헐.... 순 억지 아니냐?

김전일 : 글쎄요. 저로서는 자연스럽다고 생각되어집니다만....

나 : 죄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런 억지춘향이 어딨어?

김전일 : 이해합니다. 누구나 다 자신의 무의식에 있는 그림자는 부정하는 법이니까요.

나 : 그림자?

김전일 : 네. 그림자란 다른 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인격의 어두운 부분을 말합니다.


점점 더 기분이 더러워지려고 한다.


나 : 그래? 그럼 내 그림자는 탐욕이란 말인가?

김전일 : 그렇다고 봐야겠죠.

나 : 그렇다고? 음....

김전일 : 받아들이세요. 그게 정신건강에 좋답니다.

나 : 그럼 너한테도 그림자라는 게 있나?

김전일 : 그럼요. 그림자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 : 그럼 너의 그림자는 뭔데?

김전일 : 저요? 음.... 근데 말해도 되나?

나 : 괜찮아. 말해 봐.

김전일 : 저는.... 뭐, 사실 좀 바람둥이 기질이 있는 것 같아요.

나 : 너한텐 마유키가 있잖아?

김전일 : 아, 네. 뭐.... 마유키가 예쁘긴 하죠. 근데...

나 : 근데 뭐?

김전일 : 가끔은 질리더라고요. 어떤 날은 케이코나 쿄쿄에게 끌리거든요.

나 : ......

김전일 : 왜 그러시죠?

나 : .... 뒤를 돌아봐.



클로드 드뷔시, <꿈>. 연주 : 랑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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