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하라
휴가 중에도 해가 뜰 때 일어나는 부류와 침대에 한정 없이 늘어져 있는 부류를 늘 본능적으로 알아채곤 했다. 첫 번째 부류를 보면 곧바로 저어하는 마음이 들었다. 무언가를 빨리, 많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듯 치열한 삶의 전장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 불편했다.
-크리스티앙 보뱅, <가벼운 마음> 중에서
초여름임에도 상의는 다 젖어 버렸고 얼굴에서도 수분이 다분해졌다. 아파트 5층까지 수차례 오르락내리락했기 때문이다.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있는 한 그까짓 것은 껌이지.
택배 기사에게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는 고난이다.
한 택배 기사 님이 말했다.
"나는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
내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왜 그렇게 말한 것일까? 그가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렇다.
고양이를 키우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에 사는 사람.
그중에 특히,
고양이의 배변용으로 쓰이는, 18kg 가까이 되는 고양이 모래를 서너 개 주문한 사람.
한 개의 종이 박스 안에는 서너 개의 고양이 모래가 담긴다. 박스가 네 개라면 5층까지 네 번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한다.
고양이 모래를 담은 박스는 굉장히 무겁다.
"나는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이 싫어"라고 그가 말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다.
"택배 기사를 계속하게 되면 휴머니즘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아요."
담배 연기가 대답 대신 허공에 뿌려졌다.
7월의 어느 날이다. 5층 아파트에 사는, 누군지 모를 여자분에게 내가 배송해야 할 물건은 모두 16개였다.
절반은 비닐 포장지의 가벼운 것들이었지만, 나머지는 무게가 꽤 나가 보이는 박스들이었다. 아마도 음료수나 생수들이었을 것이다.
박스 하나를 어깨에 들춰매고 계단을 오르다가 2층 층계참에다 내려놓는다.
다시 내려가서 또 하나의 박스를 2층의 층계참에 내려놓는다.
2층의 층계참에 박스들이 모두 놓이면, 그중 하나를 들고 4층의 층계참까지 간다.... 이런 식으로 박스를 옮겨놓느라 시간이 꽤 걸렸고, 내 몸과 얼굴은 땀에 절었다.
순수한 악마가 말했다.
시발, 대체 뭐 하는 여자야...
곧이어 경제관념이 있는 또 다른 악마가 말했다.
한 군데에서 16개나 주문하다니, 덕분에 너는 만 원 넘게 번 거야.
20여 년 전,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음악 학원의 대리 원장으로 재직했을 때다.
드럼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혹시 이태만(가명) 학생, 아번 달에도 등록했나요?"
내가 말했다.
"네, 조금 전에 태만이 어머니께서 등록하고 가셨어요."
"아... 그렇군요."
그의 표정을 읽은 내가 물었다.
"왜 그러시죠?"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저기... 태만이 가르치기가 좀 힘드네요."
"....."
"열심히 안 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집중을 안 하는 데다가 너무 말을 안 들어요."
잠시 생각한 후에 그에게,
"그럴 때는요, 선생님... 이 학생이 '내게 돈을 벌어준다'고 생각하세요."
라고 자본주의적으로 대답해 주었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천박하게 말했을 수도 있다.
그냥 학생을 돈으로 보라고.
일이란 것이 마냥 귀찮기만 한 시절이었다.
권력 안에 사랑은 없다고 칼 구스타프 융 선생은 말했다.
나는 과-노동에도 사랑은 없다고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번아웃에 그런 것이 끼어들 여지가 있을까?
하지만 대리 원장 시절의 나는 과-노동의 상태도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그건 순전히 내가 인간이 덜 되어서 그런 것일 뿐이다.
삶이 귀찮아질 때 타인에 대한 사랑이 설 자리는 없다고 한다.
가끔 삶이 귀찮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상냥하자고,
친절하자고.
이것은 나의 지옥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말라는 정언명령이라고.
그래서 푸쉬킨도 이렇게 말했나 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라고.
크리스티앙 보뱅은 소설 속 화자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무언가를 빨리, 많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는 듯 치열한 삶의 전장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늘 불편했다."라고. 내가 보기에 택배 업무보다 '무언가를 빨리, 많이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건 당 수입이 700원이 채 안 되기 때문에 배송은 가능한 한 많이 처리해야 한다. 많이 처리하려면 빨리 해야 한다. 빨리 하지 않으면 밤 12시에도 배송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그날 받은 물건을 다음 날로 이월하면 절대 안 되므로.
시간당 노동량을 계산해 보았을 때 한 달 수입은 결코 많다고 볼 수 없다. 수입이 꽤 높은 경우는 경력이 오래되어 일의 요령을 잘 알고 있을뿐더러, 나름 힘이 덜 드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고층 아파트 위주로 배정받은 경우에만 그럴 것이다.
"이 일은... 나이 먹고 정말 다른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택하는 일이야." 담배 연기를 허공에 날리며 그가 말했다.
"이를 테면 (탄광의) 막장 같은 것이군요." 내가 말했다.
'막장'이라는 말에 존재론적 위계는 없다.
보뱅의 말을 음미해 본다.
치열한 삶을 사는 이들이 불편했다는 말이 작가의 말인지, 아니면 소설 속 화자의 말에 불과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아직 소설을 다 안 읽었다). 설령 작가 자신의 생각이라 해도, 나는 보뱅이 택배 기사 같은 이들을 경시해서 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는 단지 '빵' 만을 삶의 목적으로 여기는, 다시 말해 '비본래적'인 삶에 대한 회의감에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이 빵 만으로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들로 살 것"이라는 예수의 말은 종교적으로 한정하지 않는다면, 관점에 따라서는 실존적인 얘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리라.
옳은 얘기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실존을 생각할 여유가 없이 그저 '빡쎄기만'한 삶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CCTV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는 한 택배 기사의 영상이 뉴스 기사에 났다.
그 기사 분은 배송물을 들고 계단을 올라 현관문 앞에 그것을 내려놓은 후, 문 아래 또는 벽면에 놓인 박스 안 음료수들을 발견한다. 아마도 거기에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음료수들 중 아무것이나 골라 가져가시라는 내용의 글을 적은 메모지가 부착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감사의 표시로 CCTV를 향해 고개를 숙인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팔 다리가 후들거리고 땀에 절어도 이런 분들이 있는 한 휴머니즘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오늘 새소리가 들리기 전에 일어난 것은 갈망 때문이다. 나는 침대에서 잉크로 옮겨가는데, 둘은 비슷해서 동일한 휴식을 준다. 뚱보(바흐)도 그렇다. 수천 개의 음들을 써 내려가면서도 그는 결코 애쓰지 않았다. 조곡, 칸타타, 소나타, 미사곡, 협주곡, 모든 곡이 서로 닮았고 황홀하게 되풀이 된다. 결코 자신의 본성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일찍 일어나는 자들이 떠드는 노래를 전혀 믿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전진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가혹해야 하고 스스로를 내몰아야 한다는 그들의 말을.
-크리스티앙 보뱅, <가벼운 마음> 중에서
Dave Grusin & Lee Ritenour - J.S. Bach: Concerto In A Minor For Four Keyboards And Str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