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e Christmas

-크리스마스는 치맥과 함께

by 지얼



크리스마스 노래에 대해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노래는 오로지 기쁜 노래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런 제목의 크리스마스 노래가 있다.


Blue Christmas


개사된 가사는 일부 기억에 있다.


님 없는 블루 크리스마스 아침은

빈 들에 서있는 소나무와 같이

외로이 홀로 쓸쓸히 님 그리며

부질없이 한 날을 보내리


오랜만에 이 가사를 음미하다 보니 문득 <Oh, Christmas Tree>라는 캐럴도 떠오른다. 우리에게는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내 빛'이라는 가사로 유명한 곡이다.

개사된 <블루 크리스마스>에도 소나무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소나무란 독거, 또는 고독의 상징인 것일까? 야청청의 이미지 때문에?

어쨌거나 소나무 같은 독거, 혹은 외로움의 정서는 <블루 크리스마스>의 원 가사에도 충분히 표현되었다.


I'll have a blue Christmas without you
그대 없인 슬픈 크리스마스가 될 거예요
I'll be so blue just thinking about you
그대 생각 만으로도 슬플 거예요
Decorations of red on a green Christmas tree
빨간색과 초록색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도
Won't be the same dear, if you're not here with me
그대 없인 예전 같지 않을 거예요
And when those blue snowflakes are falling
그리고 슬픈 눈이 내릴 것이고
That's when those blue memories start calling
슬픈 기억들이 되돌아오겠죠
You'll be doing alright with your Christmas of white
그대는 그대의 하얀 크리스마스를 지내며 좋겠죠
And I'll have a blue, blue Christmas
그리고 난 슬프고 슬픈 크리스마스를 보낼 거예요


스탑모션 애니메이션 영화, <크리스마스의 악몽>의 한 장면


24세 때의 크리스마스이브를 잊지 못한다(고 이미 예전에 쓴 적이 있다). 서울 마포 소재의, 한 기타 학원의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홀로 바흐의 칸타타 <눈 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어>를 들으며 외로움을 잘근잘근 씹어먹고 있었을 때를.

어쩌면 홀로 있다는 서글픔에의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있을 정도로 자의식 과잉이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어느 지하실 생활자의 수기>에 등장하는 인물ㅡ지하에서 히키코모리 같은 고립된 삶을 영위하는 자신의 모습에 묘한 자조적 쾌감을 느끼는 주인공처럼.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에

홀로 어둠 속에 잠겨 바흐의 음악을 듣고 있구나.

외로워.

쓸쓸해.

가슴 한편이 아릿해지고

조명등의 빛이 번진다.

아... 근데 뭐지?

이 아릿함, 왠지 나쁘지 않아.

찌릿찌릿....

아... 왠지 좋아....


뭐, 이런 궁극적 경지로 변태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날 밤에는 참으로 눈이 많이도 퍼부었다.

쌓인 눈의 깊이만큼 고적함도, 그리고 자학적 쾌감도 깊었으리라.


이제는 그런 자학적 달콤함 따위조차 누릴 수 없다. 젊은 시절이 제법 아득해지는 시기에 독거가 일상이 되면 특별한 날의 의미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으니까. 무엇보다 자학적 쾌감은 젊은 날의 것이니까.

그럼에도 생각의 관성은 여전한가 보다. 크리스마스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오래전에 박탈된 나로서는 아무렇지도 않음에도, 주변의 지인들(특히 절친들)은 특별한 날의 평범한 고독을 누리는 나를 안타깝게 여긴다.

고마운 일이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당신과 만나는 그날을 기억할게요

헤어져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도 나에겐 아무 상관없어요

아직도 내 맘은 항상 그대 곁에 언제까지라도 영원히



절친인 순발(가명) 군도 그중 한 명이다.

그로부터 전화가 왔다.

"뭐 하냐?" 그가 묻는다.

"유튜브 본다." 내가 대답한다.

"밥은?"

"밥? 점심때 한식 뷔페 먹었지."

"뷔페? 누구랑?"

무언가(누군가를) 기대하는 물음이다.

투명인간이랑 먹었지,라고 대답하려다가 재미없어 보여 관둔다.

"혼자 먹었지."

늘 그랬던 것처럼.


그런 후에 참으로 공허한 대화를 나눴다.

"대체 왜 우주의 기본 온도는 영하일까?" 내가 물었다. 열이 가해지지 않은 상태를 '기본상태'라고 했을 때, 왜 우주는 그냥 0도가 아니고 마이너스 2,3백 도인 것일까? 뭐, 이런 어이없는 질문이다. 문답이 돌고 돌아 내려진 결론은 이렇다. 열 에너지가 있어야 생존이 가능한 우리 생명-유기체 자체는 정상적이지 않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생명이 없는 무기물 상태가 기본값이고 정상 상태인데, 열 에너지로 인해 우리 같은 비정상적인 유기체가 발생/진화해서....


따뜻함.

생명의 기본 전제 조건.

생각해 보면 '냉혈한'이라는 은유는 재미있다. 얼어붙었다는 것은 우주 대개의 사물처럼 생명이 없다는 의미일 테니, 그런 인간은 최대한 좋게 말해 Living dead(좀비)라는 얘기다.

피가 따뜻한 인간은 연민할 줄 안다.


통화를 끝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톡으로 문자메시지가 온다. 순발 군이다.

[치킨 (네가 있는 곳으로) 배달시켰음. 맛있게 드삼.]

이어지는 문자.

[칠면조 대신.]

나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대머리 아저씨 이모티콘을 보낸 후 다음의 메시지를 보냈다.

[감동의 눈물.ㅜㅜ]



그리고 덧붙였다.

[이 치킨을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순발이는 한 시간 동안 음식 배달을 했단 말인가(목에 안 넘어갈 것 같다).....]

농원 일을 하는지라 그는 겨울에는 쉰다. 대신 '배민'같은 음식 배달 일을 한다. 나도 잠깐 해 봐서 알지만 이 일은 시간당 최저임금이나 잘해야 조금 웃도는 정도 벌 수 있다.

답 메시지가 왔다.

[세 시간임. 요즘 치킨 3만 원....]

그는 외로운 크리스마스이브에 라면이나 끓여 먹고 있을 나를 염려하여 무려 세 시간의 노동량에 해당하는 가격의 치킨을 내게 보내준 것이다!

답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먹는 눈물의 치킨...]

그것도 무뼈 치킨.

한 입 베어 물고 다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무뼈 치킨에 스민 매콤한 맛에 강도를 더하는 (고블링) 소스... 뼈가 시린 세 시간의 (노동) 강도가 스민 맛이란 바로 이런 맛이란 말인가....]

금방 답 메시지가 왔다.

[ㅋㅋ.... 지랄을 한다....]



(누군가 사준) 치맥으로 보내는 크리스마스는 홀로 있어도 우울하지 않다.

문득 <10Cm>의 노래가 듣고 싶어진다.


꽃이 언제 피는지

그딴 게 뭐가 중요한데

날씨가 언제 풀리는지

그딴 거 알면 뭐 할 건데

추울 땐 춥다고 붙어있고

더우면 덥다고 니네 진짜 이상해

너의 달콤한 남친은 사실 피시방을 더 가고 싶어 하지

겁나 피곤하대


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벚꽃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결국 꽃잎은 떨어지지

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


(눈이 언제 내리는지

그딴 게 뭐가 중요한데

크리스마스가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흰 눈이 그렇게도 예쁘디 바보들아

결국 겨울비나 떨어지지

니네도 떨어져라 몽땅 망해라)


편곡/연주 :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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