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뿅가고 싶지만 중독은 싫어
여자들의 극혐 남자 '베스트 5' 중1위는?
욕 잘하는 남자?
피어싱 한 남자?
발가락 양말 신은 남자?
아니다.
담배 피우는 남자다.
나는 오래 전의 경악스러운 사진을 한 장 가지고 있다. 소양호를 건너는 조그만 관광선의 그 많은 사람들 한가운데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내 모습이 찍힌 사진이다. 그 당시에 내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 중 내게 뭐라고 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다들 담배 연기를 좋아해서 그런 건 물론 아니었을 테고.
내가 완전 얼라였을 때는 아재들이 극장 안에서도 피우고, 버스 안에서도 피우고 기차 안에서도 피웠다. 뭐, 그런 좋은 시절이었다.
클래식기타 동아리 활동을 하던 대딩시절에는 꽤 자주 담배를 꼬나문 채로 기타 연습을 하곤 했다. 그럴 때 한 여자 동기가 내게 말했다.
명희(가명) : 야! 냄새 때문에 죽겠거든?
나 : 근데?
명희 : 나가서 피워!
나 : 싫은데?
명희 : 좀 나가서 피우라고!
나 : 니가 나가.
이게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아, 물론 명희가 아니라 수지였더라도 마찬가지..... 였을 거다.
지금은 극장, 식당, 버스, 기차 등은 물론이고 거리에서조차 피우면 안 된다. 금연구역이 꽤 광범위해졌다. 그리하여 애연가들은 도시 구석에 따로 설치해 둔 흡연실에서 삼삼오오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워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이건 뭐 일종의 게토 같은 격리구역이나 다름없다.
어쩌다 친구들이 흡연이 허용된 거리에서 담배연기를 날리게 되면 길 가는 여성들이 인상을 왕창 찌그린 채 혐오의 눈길을 보내며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된다. 뭐, 사실상 불가촉천민 취급이다. 남미의 어떤 토착 문화 집단에서는 담배를 일러 '신성한 약물'이라고 한다는데!
이럴 때 문득 궁금해진다.
비흡연자 입장에서는 이토록 혐오스럽고 역겨운 것일진대 7,80년대의 뭇 여성들은 인근 남자들의 담배 냄새를 대체 어떻게 견뎌왔던 것일까? 어떻게 당시의 와이프들은 집안에 재떨이를 구비하도록 허용할 수 있었던 것일까?
혐오에 대해 생각한다.
혐오 감정은 그 자체로 증식되지 않는다.
사회가ㅡ사회 제도가 사회적 담론을 조장하고 때로는 혐오감정을 증식시킨다. 뭔 말이냐고?
대마초를 예로 들어보자.
초딩, 또는 중딩시절에 간혹 모 연예인이 대마초를 피우다가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보기라도 하면 나는 감정적으로 그들을 중죄인, 혹은 구제불능 쓰레기 취급을 했었다. 대마초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전혀 없었음에도!
작금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 미국의 36개 주에서 대마초는 합법이고 심지어 '마리화나 처치(대마초 교회)'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같은 사항을 두고 한국인과 미국인의 가치 판단이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단 말인가?
대마초와 LSD가 (베트남) 전쟁 반대를 외치는 히피들을 구속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전쟁을 반대한다는데 도대체 시위자들을 구속할 명분이 뭐가 있었겠는가? 그리하여 당시 닉슨 대통령이 저들을 범죄와 엮을 수단으로 찾아낸 것이 대마초와 LSD였다.
그 이전 시대인 1936년에 대마초가 불법화된 것은 당시 (인종차별주의자였던) 해리 앤슬링어라는 마약국장의 입김이 큰 역할을 했다. 꼴보기 싫은 유색인종들을 어떻게 해야 다수 치워버릴 수 있을까? 옳거니, 유색인종들이 마리화나를 많이들 애용하는군. 오케이!
대마초가 무해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싸그리 뭉개졌다는 사실은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문득 세상의 비합리성에 대해 생각한다.
대마초를 피우고 사람을 죽였다는 기사를 적어도 나는 들은 바가 없지만 술을 먹고 사람을 죽였다는 기사는 무진장 많이 접했다. 그럼 사실상 술을 더 금지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실제로 모든 향정신성 약물의 가해/자해에 대한 영향력을 조사한 결과가 있다. 놀랍게도 결과는 이랬다. 가해/자해의 가능성이 낮은 군에 속한 것으로는 (머시룸 버섯에서 추출되는) 실로시빈(실로사이빈)과 LSD였고 비교적 상위에 위치한 코카인이나 헤로인 보다 상위였던 약물이 바로 알코올이라는 사실.
글타.
알코올이 부동의 1위다.
중독적인 면에서도 LSD보다 알코올이 훨씬 더 위험한 거다!
왜 우리는 술 먹은 인간에게는 관대하고 대마초를 피우는 인간에게는 혹독할까? 역시 과학적 팩트보다는 형법이 조장한 대중의 일반 인식이 더 무겁기 때문이 아닐까?
담배가 바로 그런 역사(?)를 걸어온 것이 아닐까? 흡연에 대한, 제도가 조장한 사회적 인식이 보다 가혹해질수록 비흡연자들의 후각 민감도도 비례해서 증가하는 거 아닐까? 7,80년대에는 '싫지만 참아줄 정도는 되는 냄새'가 작금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독가스'로 생체반응을 하게 된 건 아닐까? 감각의 비약!
TV에서 영화를 방영할 때, 극중 인물이 담배를 피우는 장면에는 항상 블러 처리가 되어 있다. 방송법의 일환인 듯싶다. 그걸 볼 때마다 나와 내 후배는 한마디를 던진다. 저 머저리 같은 발상을 한 방송 관계자 멍청이는 대체 누구일까? 마치 음모가 나올 때마다 가위질(검열)을 해대는 심의의원회 멍청이들 같다. 니들은 좆털이 없냐? 도덕적 근본주의, 뭐 그런 건가?
한때는 제임스 딘과 알베르 카뮈, 그리고 영원한 따거 주윤발에 의해 남성성을 대표하던 그것이 작금에는 혐오 1위에 등극하게 됨으로써 애연가들은 본의 아니게 (경) 범죄자 취급을 받는 현실이라니!
아니..... 어쩌면 그녀들은.... 제임스 딘이나 현빈 급의 와꾸에서 풍기는 담배냄새 정도는 봐주는 것일까?
음... 그렇다고 담배의 폐해를 축소하려는 건 아니다. 물론 담배는 건강에 아주 해롭다. 말하고 싶은 바는 이렇다. 우리가 특정 물질(예컨대 대마초, 또는 실로시빈이나 엑스타시, 그리고 LSD 같은 소위 '향정신성금지약물')에 대해 지니고 있는 관념도 지극히 보편타당한 사실이 아니라, 개인보다 훨씬 큰 사회 조직(예컨대 정부나 국가)이 주입시킨 맹목적 혐오감ㅡ일방향성 고정관념일 수 있지 않을까?
작가 마이클 폴란은 자신의 저서 <마음을 바꾸는 방법>에서, 일부 금지 약물에 대한 일반적 편견을 지적한다. LSD와 실로시빈(실로사이빈)이다.
... 그 악명 높은 유해성의 대부분은 과장된 것이거나 사실이 아니었다. 예를 들자면 LSD와 실로시빈의 과다복용으로 죽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두 약 모두 중독성이 없다. 동물은 이 약을 한 번 투여한 후 재차 투여하려 하지 않았고, 사람에서의 반복적 사용은 약물의 효과를 떨어뜨렸다.(...) 1990년대에 사이키델릭 연구가 승인되어 부활한 이래로 거의 천 명 가까운 자원자들이 약을 투약했지만 심각한 이상 반응은 단 한 건도 보도되지 않았다.
"LSD는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내 생각을 보다 뚜렷하게 해주었다. 즉, 돈을 벌기보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사물들을 역사와 인간 의식의 흐름 속에서 파악하는 것을 의미한다."
ㅡ스티브 잡스
이제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소위 '우주적 각성', 혹은 '인식의 확장' 같은 영적 체험을 한 이들의 대략적인 소감은 다음과 같다.
ㅡ이 세상이 압도적인 아름다움으로 다가온다.
ㅡ불교에서 말한 연기적 세계ㅡ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강렬하게 느낀다.
ㅡ강렬한 지복과 신의 존재를 느낀다.
이것 말고도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이 세상 너머의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문득 '지각의 문을 정화하면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무한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라는, 윌리엄 블레이크의 말도 생각난다.
기쁜 소식과 슬픈 소식이 있다. 기쁜 소식은 우리가 영적 구도자들처럼 오랜 세월 동안 가부좌를 틀고 명상에 몰입하지 않아도 위와 같은 각성을 간단한 방법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슬픈 소식은, 이와 같은 간단한 방법을 실행하다가는 철창행을 면하기 어렵다는 거다. 아직까지는.
(금지 약물인) 메스칼린을 처방받은 한 정신병 환자는 그 체험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 내가 침대에 누워 있었을 때 그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는 장엄한 순간이 있었지요… 이 모든 생각과 이 빛들이… 그러고 나서는 황홀한 평화와 환희가 있었어요.
ㅡJ.C.네마이어 <정신병리학의 기초>중에서
약 반 세기 전에 활발했던 '사이키델릭' 연구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작가는 아마도 올더스 헉슬리일 것이다. 그는 메스칼린을 경험하고 난 후의 각성 상태를 저서 <인식의 문>에 묘사하였다. 전 세계 종교인들의 깨달음을 기록한 <영원의 철학>을 쓴 그가 각성에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는 화학약물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흥미로운 것은, <인식의 문>을 인상 깊게 읽은 짐 모리슨이 자신의 밴드명을 The Doors로 명명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히피 문화의 60년대는 사이키델릭 연구가 활발했던 마지막 시기였다. 따라서 비틀스가 Lucy in the Sky with Diamond(머리글자를 따면 'LSD’)를 발표한 것을 두고 작금의 관점에서 뽕쟁이를 두둔하는 노래라고 비난하는 건 부당하다.
이렇게 금지된 약물은 2000년대에 들어서며 다시금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PD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 그리고 알코올 중독 등의 치료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LSD나 실로시빈 같은 약물은 중독의 우려가 없기에 알코올 등의 중독을 해소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거다. 게다가 말기 암 환자의 경우, 해당 약물이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확신을 줌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극복ㅡ근심과 고통을 경감시키는 데 큰 기여를 한다는데, 이들 약물의 연구를 지속시키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극심한 우울증 환자의 자살 충동을 소멸시킬 수 있다는데 이 연구를 멈출 이유가 있을까?
이런 내용을 담은 <마음을 바꾸는 방법>을, 유발 하라리는 2018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하였다.
이와 관련해 권장할 만한 또 한 권의 책은 <불멸의 열쇠>다. 본서는 소위 고고화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고대 그리스에서의 밀교 축제나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사용했던 술잔을 분석하여 당시에 환각 성분의 약물을 흔하게 시음했던 증거를 찾아내어 기록한다. 고대에 이런 환각성 약물을 사용한 이유를 현재의 관점에서 뽕쟁이의 그것이라고 판단하기는 다소 곤란하다. 고대인들에게 이것들은 신과 조우하기 위한 의례였다.
불법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거의 당대 도덕/사회적 분위기에 기인할 것이다. 어떤 연예인이 대마초로 인해 구속이 되었을 때 우리들이 던지는 짱돌의 수는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그 돌의 무게도 심상찮다. 이게 다 70년대부터 지속된 과도한 억압 탓일 테다.
대마초가 좋다는 게 아니다. 다만 도덕의 이중성과 일관성 부재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같은 잣대를 놓고 보면 술처럼 위험한 것이 또 있을까? 음주운전 등에 의한 과실치사 피해자나 알코올 중독으로 영혼이 파괴된 중독자들을 빤히 목도하면서 우리는 술의 합법성에 대해 그 어떤 태클을 걸지 않는다.
더불어 미국의 절반이 넘는 주가 왜 마리화나를 합법화했는지, 몇몇 나라에서 실로시빈 추출을 위한 환각버섯의 재배를 허용하는지 이해하려들지 않고 오로지 관료들이나 뉴스가 툭 던지는 정보만을 절대적으로 확신할 뿐이다. 치료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은 이렇게 막힌다.
새삼 강조하지만 이 책들은 모든 마약을 옹호하지 않는다. LSD나 실로시빈 같은 중독성이 없는 약물의 허용에 대해서도 전제를 둔다. '의료 기관ㅡ전문 가이드의 통제 하에.'
영적인 각성ㅡ인식의 확장과 더불어 이런저런 치료적 효과를 감안했을 때 이제 LSD나 실로시빈 같은 약물이 '악마의 약물'이라고 지칭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것들은 '트릭스터(Trickster)'라고 지칭하고 싶다. '도덕과 관습을 무시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장난꾸러기 같은 존재' 같지만 '결국에는 좋은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물론 전문적인 가이드의 통제 하에서.
...하지만 우리가 배웠어야 하는 가장 중대한 사실은 이 강력한 약물이 견고한 사회적 보관함에 들어있지 않으면 개인과 사회 모두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약물의 사용을 통제하는 견고한 의식과 규칙, 즉 프로토콜과 보통 샤먼이라고 불리는 가이드의 필수적인 관여가 바로 이 사회적 보관함을 구성한다.
-마이클 폴란, <마음을 바꾸는 방법> 중에서
불교의 자타불이, 또는 켄 윌버의 '무경계' 같은 각성을 글로 아는 게 아니라 '체감한' 이들의 뇌 활성화 상태를 검사해 보면 인간이 '자아'를 인식하게끔 하는 소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가 비활성화되어 있다는 보고가 있다. 하버드 대학에서 뇌 연구를 하던 질 볼트 테일러는 뇌졸중으로 좌뇌가 상당 부분 죽은 상태에 빠졌을 때, 자아라는 인식이 사라지고 이 세상 모든 것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이른바 자타불이의 각성, 또는 켄 윌버가 말한 '무경계'를 경험했으며 그것이 엄청나게 황홀한 경험이었다고 고백한다(<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참고).
같은 효과를 LSD나 실로시빈 같은 약물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가 강조하는 '자아의 해체를 통한 성화'와 (작금의 판단으로) 향정신성금지약물이 만나는 역사적 지점이 바로 여기다. <불멸의 열쇠>는 그 과거의 지점을 추적하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사이키델릭을 한 사람들에 대한 모든 현상학적 결과 보고 중에서, 나에게는 자아의 해체가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치료 효과가 큰 것으로 느껴진다.(...) 결국 그들이 이 경험의 핵심적인 심리학적 원동력으로 제시하는 것은 자아 혹은 자신의 상실(융이 '"정신의 죽음Psychic death"이라고 칭한)이다. 우리에게 신비 체험과 죽음에 대한 사전 경험, 조망 효과, 정신적 리부트라는 개념, 새로운 의미 창조, 경외감을 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마이클 폴란, <마음을 바꾸는 방법> 중에서
자아의 팽창을 미덕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왜 영적 스승들이 자아의 축소와 해체를 추구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아 초월 심리학자인 스티브 테일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영적 수련을 통해서 완전히 새로운 자아 체계를 다시 천천히 만들어 간다. 그 과정에서 점점 '나'를 덜 감지하게 되고, '나'의 지배력도 약해지게 되며, 그 경게가 허술해진다. 생각은 조용해지고, 지각/감각/인식은 강렬해진다. 그러는 사이 옛 자아가 고기능의 새 자아 체계로 개조된다.
-스티브 테일러, <보통의 깨달음> 중에서
하지만 이러한 자아의 해체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LSD나 메스칼린, 또는 아야와스카 같은 향정신성 물질이 자아를 해체한다는 사실에는 동의를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고기능의 새로운 자아 체계'를 생성하지는 못하는 탓에 정신병과 같은 심리적 공백이 발생하는 점을 우려한다.
이 약물들이 영성으로 향하는 길을 제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문을 열어줄 수는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향정신성 물질은 우리가 바라보고 가야 할 곳을 보여 주지만, 그곳에 도달하는 방식은 제공하지 않는다.(...) 이상적일 경우 향정신성 물질은 특히 영적 여정의 초반에 현명한 안내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그 현명한 지혜를 나눠 받았다면 그때부터 그렇게 받은 지식을 우리 스스로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앨런 와츠의 말을 빌리자면 '메시지를 받았다면 전화를 끊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얘기, 다소 익숙하다. 옥상에 올라갔으면 사다리는 걷어차 버리고 강을 건넜으면 배는 갖다버리라는. 그러고 보니 법상 스님께서 그랬다. 부처님의 법은 약이니, 다 나았으면 버려라.
그럼에도 해당 약물 복용자들 중에서는 자타불이의 체험은 물론 '신을 만났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올더스 헉슬리는 해당 약물이 인식의 문을 열어준다고까지 했다(신경학자 올리버 색스도 같은 말을 했다. "사람들은 명상 혹은 무아지경을 유도하는 유사한 기법들을 통해 초월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어떤 약물들은 그 지름길로 안내한다. 원한다면 약물은 언제라도 초월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대체 뭘까? 심리적 과장이나 단순한 은유적 수사일 뿐일까? 인식의 문이 열리는 것을 헉슬리는 '편재정신(신적 근원)'에 다가가는 것의 은유로 표현한 듯싶은데, 스티브 테일러는 이에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다. 대체 누구의 말이 맞는 걸까?
(젠장, 먹어 봤어야 알지....)
결론은 이거다.
(스티브 테일러에 의하면) 완전한 영성에는 도달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 해도 영성에 길을 터주는 것이 확실한 LSD나 실로시빈 등의 향정신성 약물은 중독성이 심한 코카인이나 헤로인 같은 마약의 범주로부터 과연 어느 정도 해방될 수 있을까? 통제가 가능하다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까지 불법은 불법이다. 그러니 콩밥 먹고 싶지 않으면 좀 기다리자.
못기다리겠으면 다른 방법을 모색하자. 자아를 해체하는 또 다른 방법은 다름 아닌 명상이다. 고도의 명상 수련가들의 뇌는 해당 약물 복용자의 그것과 동일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무엇보다 돈도 안 들고 합법적이다.
"LSD? 메스칼린? 엑스타시? 그런 거 다 나쁜 거 아니에요?"라는 우리의 건전한(?) 상식을, 이 책들은 과감하게 타파한다. 그러고 보니 놀랍지 아니한가? 우리의 상식으로는 악이고 금기이며 영혼의 파괴를 촉진하는 향정신성 화합물이라고 여기는 것이, 기실 각종 중독이나 여러 정신병에의 치료로 기능할 수 있고 무엇보다 영적인 통찰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그러고 보니 카프카가 그랬다지. 책은 우리 마음속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이 두 권의 책들은 우리들 마음속의 얼어붙은 편견을 깨는 도끼다.
참고로, <마음을 바꾸는 방법>은 넷플릭스에서 다큐로도 제작되었다. 일시청(?)을 권한다.
60년대 중반에서 70년대 초중반까지 '사이키델릭 록'이라는 장르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거의 사장된(?) 장르다.
"LSD 경험에서 비롯된 비현실적 감각과 시간 인식 왜곡을 음악으로 재현하려는 시도가 특징"이라는데, 개인적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은 LSD 체험을 재현할 수 없다. 음악을 듣고 강렬한 환각을 경험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사이키델릭 록은 LSD 경험을 음악으로 재현하여, 우리 같은 무경험자들에게 간접 경험이라도 시켜줄 의향으로 만든 음악이 아니라, 단지 사이키델릭 록의 뮤지션이 LSD 경험을 한 후에 만든ㅡ 다시 말해 '약 빨고' 만든 음악이 아닐까, 하는.
오래간만에 브레인티켓(Brainticket)의 정신 나간 몽환적인 음반 <Psychonaut>를 감상해 본다. 20대의 어느 시절, 강남역 지하의 한 레코드 샾에서 우연히 구한 이 음반을 한 때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밴드의 음악을 듣다 보니 문득 한 후배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형이 미국이나 영국에서 태어났으면 록-음악하다가 약물 중독으로 요절했을 거임."
LSD나 실로시빈은 중독이 안 된다잖냐...
Psychonaut는 자신의 내면(정신)을 탐험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주로 명상, 감각 억제, 약물(특히 환각제) 등을 활용해 의식 상태를 변화시키며 자기 자신을 깊이 이해하려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용어는 영어 단어에서 유래했으며, ‘psyche’(정신, 영혼)와 ‘naut’(항해자, 선원)의 합성어로, ‘정신 항해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ㅡ네이버 AI 브리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