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늬의 수컷 공작새 전략

-나는 나쁜 쌤이다

by 지얼


고딩 시절의 한 친구(가명 : 이성천)는 정말이지 브레이크 댄스를 끝내주게 잘 췄다. 그가 수학여행의 댄스 타임 때 브레이크 댄스로 친구들의 주목을 받는 것을 목도했을 때 아마 이런 마음이었으리라.

나도 저 춤을 연마하여 주목을 받고 싶다.

그날 이후로 방에 깔아 둔 이불 위에서 X랄을 했다. 등을 바닥에 대고 데굴데굴, 머리를 바닥에 대고 데굴데굴.... 유체이탈하여 그 광경을 봤다면 아주 가관이었겠지.

며칠 동안 연습한 후에 깨달았다.

나는 춤에는 재능이 없다.

비보이는 꿈도 꾸지 말자.


성천 군은 쌍절곤도 정말 잘 다뤘다. 그가 교실에서 이소룡 뺨치듯이 쌍절곤을 휘둘렀을 때도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나도 쌍절곤을 잘 다뤄서 주목을 받고 싶다.

일주일 동안 수련한 결과 팔꿈치와 뒤통수에 시퍼런 멍이 들었고,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쌍절곤에도 재능이 없다.

몸치라서 그런 걸까?


브레이크 댄스와 쌍절곤으로 (여자들에게) 주목을 받고 싶었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나는 기타만 열심히 쳤다.

인정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하루는 성천 군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여전히 미련이 남았던 나는 그에게 브레이크 댄스의 기술을 배웠고 등짝으로 방바닥을 열심히 비볐다. 나의 DNA는 아마도 이렇게 속삭이고 있었을 거다.

기타 치는 거 이외에 춤까지 잘 추면 너도 언젠가는 뜨밤 행복한 날을 보낼 수 있단다.

글타. 나는 화려한 무늬의 날개를 지닌 수컷 공작새가 되고 싶었던 거다.


그가 돌아간 후 잠시 동네에 마실 나갔던 마더께서 돌아오셨다.

10분 후, 날벼락이 떨어졌다.

돈이 없어졌어!

지갑을 집에 두고 외출했는데 그 잠깐 사이에 만 원짜리 석 장이 사라진 것이었다. 당시의 우리 마더의 추론은 대충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1. 집에 있었을 때는 있었던 돈이 외출한 사이에 사라졌다.

2. 그때 아들놈은 (브레이크 댄스 따위나 추는 불량한) 친구와 같이 있었다.

3. 범인은 그 친구다.


"걔, 그런 애 아니라고!" 뭐, 사실 그런 애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내 생각에는 그랬다. 친구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어야 할까? 그럼에도 마더께서는 확신하고 계셨다. 범인은 성천이라고.

한 시간 여가 지난 후, 화장대 서랍 속에서 3만 원이 발견되었다. 마더께서 그곳에 넣어둔 것이었는데, 잠시 잊었던 거였다.


마더의 치부를 들추는 게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구태여 쉴드를 치자면 누구나 다 그런 실수를 한다. 살면서 타인을 단 한 번도 의심해 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수지(가명)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 '수지가 차에 전화기를 두고 내렸나 보다'라거나, '중요한 일 때문에 무음으로 해 두었겠지'라고 생각하는 대신 '전화를 안 받아? 나를 무시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앞섰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없었을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진실을 고려하지 않고 부정적 현실을 구축하는 좌뇌의 능력(?)'에 관한 것이다.



좌뇌는 오직 정보를 해석하고 그것을 토대로 개연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낼 뿐이다.(...) 이 해석하는 마음에게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설명과 해석이 옳다는 확신에 차 있을 뿐이다.

-크리스 나우바우어, <뇌는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원제 : No self, no problem)> 중에서


위의 책에서도 소개한, 그 유명한 '분리뇌 실험'에 대해 언급해 본다.

간질의 치료를 위해 우뇌와 좌뇌를 연결하는 신경섬유 다발인 '뇌량'을 절단한 분리뇌 환자를 대상으로 한 실험 중 하나는 이렇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뇌는 신체의 좌측을 담당하고, 좌뇌는 오른쪽을 담당한다. 예컨대 오른쪽 눈으로 뭔가를 보았을 때 활성화 되는 시각 피질은 좌뇌 쪽에서다.


1. 분리뇌 환자의 우뇌(좌측 눈)에만 '걸으세요'라는 글자를 보여 준다.

2. 환자는 벌떡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3. 환자에게 왜 걸으냐고 묻는다.

4. 환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가서 콜라 좀 가져오려고요."


좌뇌는 '왜 걷느냐?'는 질문을 받아들이지만 명령어 '걸으세요'를 본 우뇌와는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이 걸으라고 했으니까요'라고 답변할 수는 없다(우뇌는 입력된 말을 이해하고 좌뇌는 해석과 발화의 기능을 갖는다). 그래서 좌뇌는 걷는 이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가서 콜라 좀 가져오려고요.

고약한 심성의 실험자라면 다음의 실험으로 피실험자를 민망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1. 분리뇌 환자의 우뇌(좌측 눈)에만 야동을 보여준다.

2. 환자의 그곳을 가리키며 묻는다. "왜 커졌지요?"

3. 환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점심에 장어를 먹어서 그런가 봐요."


미안하다. 그냥 농담이다.

어쨌거나 이 실험이 드러내는 것은 자명하다. 맞을 때도 있지만 좌뇌는 이처럼 종종 현실을 왜곡하는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것.


정상인의 경우에도 좌뇌는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만들어내는 데 아주 특출한 능력을 발휘한다. 비록 그것이 '맞는' 설명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크리스 나우바우어, <하마터면 깨달을 뻔> 중에서


분리뇌 실험


우리가 무언가를 행할 때(예컨대 피자를 먹을 때) 그와 관련된 뇌의 특정한 부분은 활성화가 될 것이다(피자를 먹으면 미각을 담당하는 대뇌 피질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 예컨대 '멍 때릴 때'라면 뇌의 모든 영역이 비활성화되어 있지 않을까? 실험 결과 이 경우에도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된다는 것을 수년 전에 뇌과학자들은 발견하였다. 이처럼 뇌가 외부 자극에 집중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의 연결망을 '디폴드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 DMN)'라고 한다.


문제는 이 DMN이 'Ego 의식'의 발현지라는 거다. DMN이 활성화되어 있을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한 생각을 강화한다. 예컨대 '수지한테 괜히 고백했다가 까였잖아, 쪽팔려 죽을 것 같다.' 거나, '앞으로 뭐 하고 살지?' 하는 따위의 근심들, '나, 좀 멋있는 듯.' 할 때의 자뻑적 주체감, 좀 더 심오(?)하게는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일까?' 하는 식으로 '자아'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는 영역인 거다. 이를테면 '자아'의 활동 근거지랄까. 보다 큰 문제는 DMN이 활성화되어 있을 때, 다시 말해 '멍 때릴 때' 우리는 대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정적 상념의 파도에 휩쓸리기 쉽다는 거다.


왜 그럴까? 인간의 DNA에 부정편향적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두 명의 원시인이 있다. A는 숲 속을 지나갈 때 수풀 속에서 '부스럭'하는 소리가 들리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빤쓰런을 친다. 반면에 낙관적인 B는 '뱀은 아니고 아마도 쥐새끼가 지나가는 소리일 거야'라고 생각하며 가던 길을 계속 간다. 이 경우 누가 생존할 확률이 높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부정편향의 겁쟁이 DNA를 타고날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사실은 고도로 숙련된 명상가가 명상을 할 때나 LSD, 또는 실로시빈 등의 향정신성 약물을 복용한 후의 뇌를 검사했을 때 DMN이 비활성화되어 있다는ㅡ다시 말해 '자아'가 해체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거다. 그들은 자아가 해체된 상태를 이렇게 표현하곤 한다. 나와 타 존재라는 이분법이 해체되고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을 느낀다고.

이게 무슨 소리냐고?

나도 모른다. 경험하지 못한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다만 이것이 불교에서 말한 '자타불이(自他不二)' 또는 브라만교의 '범아일여(梵我一如)'를 의미하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되었을 때 타 존재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열리면서 지복을 느낀다고.


명상을 통해 우리는 의식의 경계를 점점 확장시킨다. 마치 모든 생명체가 나의 가족인 것처럼 그들을 향한 연민의 마음에 열린다.

(...)

... 우리가 떠올리는 생각 사이에 틈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우리의 자아 감각에 이 존재함을 볼 수 있다. 생각이나 우리 앞의 문제에 완전히 빠진 채 온갖 드라마를 지어내는 대신, 우리는 경험 주변의 공간을 느끼고 모든 것을 내려놓으며 편안하게 이완할 수도 있다. 명상 스승 초걈 트룽파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틈이 있다는 것은 아주 좋은 소식입니다." 이 틈은 우리가 언제든 알아차림에 머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언제라도 자유가 가능함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

... 앞에서 보았듯이, 누가 알고 있는지, 즉 앎의 주체가 누구인지 처음 알아보려 할 때 우리는 마치 물을 찾는 물고기처럼 혼란스러울 수 있다. 우리는 거기에 견고한 어떤 것, 인지하는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잭 콘필드, <마음이 아플 땐 불교 심리학> 중에서


뇌졸중으로 좌뇌에 이상이 생기자 자아 감각이 사라지고 온갖 분별이 허상임을 간파하게 되어 '자타불이'를 경험했다는 뇌과학자 질 볼트 테일러의 경험은 아마도 좌뇌가 자아에 대한 감각을 강화한다는 사실에 대한 강력한 증거일 것이다. 그녀는 저서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에서 이렇게 썼다. "어떤 고통스런 생각을 하더라도 내가 자발적으로 그 감정 회로를 접속했다는 알기만 하면 괜찮아진다. 결국 그 생각을 멈출 의식적인 힘이 내게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몸 상태나 심정이 어떻든 상관없이 언제든 오른쪽 의식(우뇌 의식)으로 넘어가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선택할 수 있다."


스크린샷 2026-02-05 오후 8.10.13.png 질 볼트 테일러

정리하면 이렇다. 좌뇌의 분별하기와 판별하기 등의 기능은 우리의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만 자아감의 강화는 행복과 멀어지게 만든다. 고로 행복에 이르는 길은 필요할 때 좌뇌의 DMN를 비활성화시킴으로써 자아의 해체(무아無我)를 도모하는 것.

'나'에 대한 생각을 멈추라는 것인가? 아니, 그 생각 자체가 '내 것'이 아니므로 자의적으로 멈추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그러니까 '나'에 대한 (부정편향의)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저 알아차릴 것. 그리고 호흡에 집중할 것. 호흡에 집중할 때 또다시 그 생각이 떠오르면 조용히 속삭인 다음('꺼져') 다시 호흡에 집중할 것.


내가 '나라는 것이 존재하기를 멈추었다'라고 묘사할 때, 나는 피아노 협주곡을 감상한 후의 느낌처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구체적인 체험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훨씬 더 실제적인 것이다. 이 체험의 가장 큰 특징은 이 상태가 우리가 예전에 경험 했던 것들보다 더욱 실제적인 감각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그 감각은 베일이 벗겨져 '진실한 실재'와 접하는 것이다.(...) 그 체험에 가장 근접한 언어적 표현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통일이자 연결성이며, 중력장이나 연통관 같은 것들의 상호의존성이다.' 정신적인 삼투성과 같은 것에 우주적 심연과 연결되고 그것에 융해되었기 때문에, '나'는 존재하기를 그친다.

-아서 쾨슬러, <The invisible writing> 중에서




간혹 생각한다.

음악 연주는 자아를 강화시킬까, 아니면 자아를 약화시킬까?

재즈 연주가가 즉홍연주를 할 때, 활동을 의식적으로 계획하고 통제하는 기능을 하는 앞이마엽피질의 상당 부분이 덜 활성화가 된다고 하는데, 크리스토퍼 드뢰서는 저서 <음악 본능>에서 이 상태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몰입상태에서 음악가들은 개별 음들을 계획하지 않으며 일종의 무아지경에 빠져 세계와 합일하는 경지에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연주가 명상과 유사한 상태를 유발하는 것 같다. 즉홍연주라면 재즈 연주가든 롹 연주가든 장르에 상관없이 모두가 그러할 것 같은데, 심히 삐딱한 나는 간혹 연주가들(특히 롹 기타리스트들)에게서 자아의 축소가 아닌 자아의 확장을 느낄 때가 있다. 엄청난 테크닉을 구사한 후에 "봤지? 이런 건 나밖에 못해." 라거나, "이런 연주를 해내는 위대한 나를 경배하라!"는 투의, 전문용어로 자뻑감의 고양을 느낀다고나 할까(기타리스트 잉베이 맘스틴의 젊은 시절 퍼포먼스를 보라).


자뻑 대마왕 잉베이 맘스틴. 그래도 간지가 나는 건 인정할 수밖에.....


간혹 생각한다.

나는 레슨 할 때 학생들의 자아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이끌까, 아니면 그 반대일까?

선생의 경험과 지식은 학생들을 가르칠 때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아무리 레슨을 잘하면 뭐 하나. 학생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지 못하면 호세 토마스(스페인의 유명한 기타 선생)나 아벨 깔로바로(남미의 저명한 기타 선생) 급의 능력이 있어도 다 무용한 것을.

나의 동기 부여 전략은 '화려한 무늬의 날개를 지닌 수컷 공작새 되기'다.


나 : 연습 안 했구나?

중딩이 : 어제 할머니집에 다녀오는 통에 못했는데요.

나 : 이빨은 닦았냐?

중딩이 : 당근이죠.

나 : 밥은 먹었고?

중딩이 : 그럼요.

나 : 그러니까 기타 칠 시간만 없었다는 거네.


이런 식으로 갈구지는 않는다. 한 지인 분은 중학생이었을 때 연습을 안 해 오면 기타 쌤이 발로 보면대를 걷어찼다고 하는데 요즘 세상에 그럴 수는 없다.


나 : 연습이 재미없지?

중딩이 : ....

나 : 재미없는 건 당연한 거야.

중딩이 : 왜요?

나 : 네가 진짜 좋아하는 요즘 노래들을 연주할 수 없으니까 그렇지.

중딩이 : 그렇긴 하죠.

나 : 그렇다고 이제 겨우 입문 두 달째인데 복잡한 코드와 어려운 주법의 요즘 노래를 할 수는 없잖아?

중딩이 : 그런가요?

나 :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처음에는 쉽고 단순한 옛날 노래나 일부 크리스마스 캐럴을 하는 건데.... 너로서는 재미없는 게 당연하지.

중딩이 : 그래도 해야죠.

나 : 아니, 그건 힘든 일이야.

중딩이 : 왜요?

나 : 사람은 재미없다고 느끼는 것을 지속하여 할 수 없는 존재거든.

중딩이 : 그런가요?

나 :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중딩이 : 그러면 쌤은 초보일 때도 기타가 재미있으셨어요?

나 : 뭐... 아주 재미있지만은 않았지. 빌어먹을 F코드가 발목을 잡았거든.

중딩이 : 그런데 어떻게 계속하셨어요?

나 : 상상력의 힘으로.

중딩이 : 그게 뭔데요?

나 : 이렇게 상상했지. '지금은 F코드도 제대로 소리 내지 못하지만 일 년 후에는....'

중딩이 : ....

나 : '학교 축제 때 밴드를 이끌고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연주하리라...'라고 다짐하곤 했지.

중딩이 : 헐.....

나 : 그리고 무대에서 전기기타를 폼나게 치는 나를 상상했지.

중딩이 : 그리고요?

나 : 무대 아래 여학생들의 환호성에 화답하는 내 모습을 머릿속으로... 쥑이지 않냐?


문득 드라마 <반짝이는 워터멜론>에서 주인공인 이찬 군에게 "밴드맨은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어.(...)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이 세계를 정복하고 미인을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밴드맨이 되는 것이야!"라고 조언하는 선배 발산이의 수준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화려한 무늬의 날개를 지닌 수컷 공작새 되기' 전략은 다음과 같이 심화된다.


나 : 그러니까 너도 연습이 힘들게 느껴질 때면 나처럼 상상력을 동원해 봐.

중딩이 : 어떤 상상이요?

나 : 무대에서 끝내주게 연주를 하여 모든 여학생들의 우상 같은 존재가 되는 상상.

중딩이 :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데요.

나 : 그러고 싶지 않은 건 네가 상상력이 부족해서야! 이런 생각을 해보라고.

중딩이 : 어떤 생각이요?

나 : 너희 학교에 장원영이 있다고 쳐 보자.

중딩이 : 저 장원영 안 좋아하는데요.

나 : 그럼 네 이상형의 여학생이 있다고 쳐 보자.

중딩이 : 그런 애 없는데요.

나 : 그냥 있다고 쳐 인마....

중딩이 : 네....

나 : 어느 날, 장원영 같은 예쁜이가 너에게 다가올 거야.

중딩이 : 헐....

나 :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우영아... 할 말이 있는데..."

중딩이 : ....

나 : "저번 공연에서 기타 치는 네 모습, 너무 멋지더라..."

중딩이 : ...

나 : "혹시... 이번 주 토요일에 뭐 해?"

중딩이 : .....

나 : "아바타 영화 티켓이 두 장 있는데... 나랑 같이 갈 수 있을까..."

중딩이 : 그럴 리가요.

나 : 그럴 리가는 무슨 그럴 리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야. 만약에 이런 상황이라면 넌 어떡할래?

중딩이 : 뭐... 예쁜 애가 보러가자는 데 굳이 거절할 이유가.... 일단 보러 가겠죠.


한숨이 나왔다...


나 : 그래서 네가 안 되는 거야.

중딩이 : 네? 왜요?

나 : '절박한 남자는 미인을 사귈 수 없다.' 뭐 이런 거 안 배웠어?

중딩이 :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요?

나 : 딱 한 마디만 하면 돼.

중딩이 : 어떻게요?

나 : "꺼져."


학생들의 자아감을 팽창시킴으로써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막아버린 나는

정말 나쁜 쌤이다.

올봄에 학원을 접을 생각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욕망의 변증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