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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결선생

ㅡW시의 디오게네스

by 지얼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기타 학원(사실은 교습소)의 이름은 '지음'이다. 노래를 짓는다는 의미도 되지만 그보다는 고사성어에서 따 온 것이다.


지음[知音]

-소리를 알아듣는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친구를 이르는 말.

《열자(列子)》<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말인데, 백아가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옆에서, "참으로 근사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산이 눈앞에 나타나 있구나"라고 말하였다. 또 백아가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기가 막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눈앞을 지나가는 것 같구나" 하고 감탄하였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를 부수고 줄을 끊은 다음 다시는 거문고를 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세상에 다시는 자기 거문고 소리를 들려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란 말인가! 음악과 우정의 혼연일체!

만약 내 친구 상권(가명)이었다면....

오래전에 그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야, 지얼아. 넌 좋겠다."

나는 물었다. "왜? 뭐가?"

"내가 어제 비디오로 영화를 한 편 봤는데..."

"뭔 영화? 제목이 뭔데?"

"뭐. 하여튼 있어. 그런 영화가. 근데 그 영화에서 어떤 남자가 여자 앞에서 기타를 치더라고."

"그래서?"

"근데 다 치고 난 다음에 여자를 자빠뜨리더라고. 야, 넌 좋겠다."

오징어가 기타를 좀 친다고 해서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용히 한 마디를 던진다.


조까


악기는 예술의 도구이지, '작업'의 도구가 아니다.

누군가가 이에 대한 내용으로 책을 쓴다면...뭐, 대충 이런 내용이겠지.


지음[知淫]

-음란을 안다는 뜻으로 자기의 속마음을 왜곡하는 친구를 이르는 말.

《고자(鼓子)》<음탕문편(淫蕩問篇)>에 나오는 말인데, 지얼이 높은 산에 오르고 싶은 마음으로 기타를 치면 상권은 옆에서, "참으로 대단하다. 하늘을 찌를 듯한 미모의 장원영이 눈앞에 나타나 있구나"라고 말하였다. 또 지얼이 흐르는 강물을 생각하며 기타를 치면 상권은 "기가 막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카리나가 눈앞을 지나가는 것 같구나" 하고 감탄하였다. 상권이 죽자 지얼은 기타를 새로 사고 줄을 교체한 다음 더욱더 열심히 기타를 쳤다고 한다. 이 세상에 여전히 자기 기타 소리를 들려줄 처자들이 많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지음[知音].

좋은 의미다.

하지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가야 한다. 만일 다른 곳에서 새로이 기타/음악 학원을 하게 된다면 색다른 상호명으로 지을 것이다.


백결 음악학원


분홍색 셔츠를 꺼내 입으려다가 목소매 쪽이 해어진 것을 발견하였다.

아....'남자는 핑크'라는 격언에 따라 산 옷인데 이제 버려야 하나.....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청바지는 걸레 같이 찢어진 걸 입고 다니는 주제에 왜 셔츠는 찢어진 걸 입으면 안 되는 거임?'

이 참에 더 막 나가기로 한다. 네이버 쇼핑에서 누더기옷을 검색한 것이다. 오, 실제로 있긴 있다. 물론 대개 코스프레용이긴 하지만.


한 번은 후배 태정(가명)에게 "나, 왠지 K대(군대) 시절에 입었던 패션이 그리워. 그래서 깔깔이랑 알록달록 야상 점퍼를 사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었더니 그가 대답하기를,


여자들이 싫어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대체 왜 입는 것까지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자 태정 군이 '뿅'하고 내 머릿속에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형은 지금 본말전도를 하고 있음

형에게는 여자를 위해 패션이 있지, 패션을 위해 여자가 있는 게 아니잖아




뭐시라.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다 그의 선배인 음해선생ㅡ툭하면 나를 음해(라기보다는 곡해)해서 지어진 별명이다ㅡ때문이다. 근묵자흑이라고, 가까이 지내더니 시커먼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음해선생은 내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신이 만약 무인도에서 살게 된다면 기타가 있더라도 절대로 연주 따위는 하지 않을 거임

왜냐하면 무인도에는 여자가 없거든


글타. 나는 이런 곡해와 오해를 받아가며 살고 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어머.... 패션이 너무 그지 같아요'라고 지적해도 나만의 개성을 위해 능히 누더기옷을 사 입을 의향이 있음에도!

왜냐하면 내 어린 시절의 마음속 위인은 그 누구도 아닌 두 명의 빈자, 디오게네스와 백결선생이었기 때문이다.


백결선생[ 百結先生 ]

-경주 낭산(狼山) 기슭에 살았다. 몹시 가난하여 어찌나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었던지 세상에서는 “현순백결(懸鶉百結:가난하여 입은 옷이 갈가리 찢어짐)”의 문자를 빌려 백결선생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악조건 가운데서도 백결선생은 한점 흔들림이 없이 오직 금(琴)만을 사랑하여 모든 희로애락을 금으로 풀었다. 어느 해 세모(歲暮)에 집집마다 울려 나오는 떡방아 소리를 듣고 부인이 “우리는 무엇으로 과세(過歲)를 합니까”라고 근심하자 금으로 방앗공이 소리를 내어 위로하였는데, 그 곡조가 후세에 전하여 대악(碓樂)이란 이름이 붙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백결선생 [百結先生]


초딩이 신X원 양의 작품


하여 먼 훗날, 상권이 같은 인간에 의해 다음과 같이 쓰여질지도 모른다.


지얼선생 [지나가는 얼빵한 쌤]

-원주천 다리 밑 움막에서 살았다. 몹시 가난하여 어찌나 갈기갈기 찢어진 옷을 입었던지 그의 초딩 여학생들은 '개그지쌤'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지얼선생은 한점 흔들림 없이 오직 기타만을 사랑하여 모든 희로애락을 기타로 풀었다. 어느 해 한 해가 끝나갈 무렵 집집마다 울려 나오는, 대바늘로 허벅지 찌르는 소리(비명 소리)를 듣고 한 과부가 "우리는 무엇으로 긴 밤을 위로받아야 합니까"라고 근심하자 기타로 방앗공이 소리를 내어 위로하는 대신 몸으로 직접 위로해 주려다가 형법 300조에 의거.......

[네이버 지식백과]




사족 :

나,

절대로,

그런 사람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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