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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이미 죽어 있다

ㅡ아니, 이미 <결제>를 누르고 있다

by 지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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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명작 만화 <북두신권>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사가 있다.


너는 이미 죽어 있다


시체에게 하는 말도 아니고, 아직 살아있는 사람에게 '이미 죽어 있다'니.

일종의 비문(非文)이지만, 그 만화를 본 우리는 그 의미를 충분히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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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의 '여행자 기타', 즉 여행 시 갖고 다니면 좋은 '트레버캐스터'기타는 일반적인 스트라토캐스터 기타에서 픽-가드 부분만 제외하고 나머지 바디 부분을 깡그리 잘라낸 기타이다(한마디로 '생기다 만 기타'다). '그것 참 변태 같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도중에 지름신께서 불쑥 왕림하시더니 명하시는 것이 아닌가.


질러라


하여 구매를 하려고 이런저런 세부 사항을 기재한 후에 [결제]를 누르려는데 손가락이


멈칫


하는 것이었다.

문득 '개 같은 인생'을 추구하는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의 가르침이 떠올랐으니,


이 학파의 가르침의 핵심은(...)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신(神)의 특징이며, 필요한 것이 적을수록 신에 가까운 자유로운 인간이라는 것이다.

ㅡ네이버 지식백과


그러나 이런 기특한 생각 말고도 뇌리를 강하게 때리는 자학적 생각이 곧바로 따른다. '아니, 고작(?) 4,5십 만 원대의 기타 하나 가지고 이렇게 고심한다는 말인가....'

예전에 후배 태중(가명) 군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돈이 없으면 서글픈 게 뭐라고 생각하냐? 좋은 집에서 못살아서? 벤츠를 타고 다니지 못해서? 예쁜이를 만나지 못해서? 아니야.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이때 태중 군은 의혹의 눈길을 보내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여자도?'). 돈이 없어서 짜증이 나는 때는 서점에서 3만 원짜리 책을 살까 말까 고심할 때야. 고작 3만 원일뿐인데 '이걸 사면 이제껏 쌓인 카드 결제 금액이 어느덧...'하고 계산을 하는 게 제일 싫지. 다시 말해 부자들이 부러운 이유는 돈으로 인한 염려나 근심이 없다는 거지."


덧붙이자면 이런 경우도 있다(물론 어디까지나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친구에게 "오늘은 내가 쏠게"라고 말하면서 술집에 들어간다. 물론 나는 맥주나 몇 병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요청하기를,


나, 와인 좀 시켜도 될까? 샤또 딸보 어때?


어, 그럼. 좋지. 그걸로 마시자, 하고 일단 사회적 가면을 쓰고 대답했지만 속마음은 이렇지 않았을까.


아니 이 개자식이.... 하필 딸보를.......


이렇게 쪼잔해질 때 부자들이 부러워진다.

예전에 백억 대 부자였던 친척 형님이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지갑에 돈이 들어있지 않으면 힘이 빠져." 뭐, 부자들도 그런가 보다, 하지만 빈자와의 결정적 차이가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서 '미도리'는 이렇게 말한다. 부자와 빈자의 차이는 수중에 돈이 없을 때 부자는 개의치 않고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빈자는 자격지심에 없다는 말을 쉽게 할 수가 없다는 점이라고. 이 글을 읽었을 때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오래전에 선배님들과 게임비 내기 당구를 친 적이 있었지. 게임에 진 내가 카운터에서 비용을 지불하는 순간 나는 깨달았지.


아, X 됐다. 차비가 없다....


"형, 만 원만 꿔주세요. 차비가 없네요." 이 말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 <베테랑>이라는 영화가 27년 정도 앞서 개봉했다면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 거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그리하여 가락동에서 천호동까지 걸어서 갔다. 한참을 걷는 도중에 귓가에서 <엄마 찾아 3만 리>의 주제곡이 들려왔다.


가도 가도 끝없는 길

3만 리


스크린샷 2024-12-22 오후 5.44.42.png 엄마 찾아 삼만 리



아, 돈 없는 가오의 대가는 얼마나 혹독했던가.

20대 후반에 이태원의 한 클럽에서 유능한 '박찬호(웨이터)' 덕분에 수지(가명)를 처음 만났다. 우리는 '원나잇' 없이(나, 그런 사람 아님...) 재회를 약속하며 가벼운 포옹으로 헤어졌다. 그리고 3일 후,

이태원의 한 카페에서 그녀에게 까였다...

그때 이런 대화를 나눴었다.

"세상에는 참 별난 인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아까 지하철 안에서 턱걸이를 하는 사람을 봤다니까요."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물었다.

"차.... 없으세요?"


3개월 후, 나는 250만 원짜리 마틴 기타를 팔아 차를 샀다. 천만 원이 넘는 잔여금은 할부 처리를 했으나 36개월 할부라는 짐덩어리가 어깨를 짓눌렀다. 뭐, 그렇다고 수지에게 다시 연락을 하지는 않았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하지만 박진영의 노랫말이 귀벌레처럼 귓속을 기어 다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너무 예뻤어


이렇게 수지의 빈자리에 흰색 소형차가 남겨졌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이렇게 썼다.


... 사실 사치품의 역사는 탐욕의 이야기라기보다는 감정적 상처의 기록으로 읽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 역사는 남들의 경멸에 압박감을 느껴 자신에게도 사랑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텅 빈 선반에 엄청난 것들을 전시하려 했던 사람들이 남긴 유산이기 때문이다.


결국 부를 추구하려는 욕망은 순수한 재화 축적의 욕망이라기보다는 사실상 일종의 인정욕구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가사의 노래도 있지만 기실 '당신은 인정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노래해야 보다 현실적이다. 그래서인지 대딩 시절에 민주화 투쟁을 했던 일부 친구들도 이제는 투쟁의 목표를 바꾼 것 같다. 민주화투쟁에서 인정투쟁으로.


인정욕구는 우월적 차별성을 기반으로 한다. '내'가 '너희들'과의 평등한 상태에 만족한다면 인정투쟁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이 세상의 불평등에 대한 기원은 비교우위에의 욕망에 있는 것 같다. 예체능에서의 탁월한 재능이 없는 한, 혹은 그 외의 분야에서 별 다른 재능이나 공적이 없는 한 비교우위에 서기 위한 가장 일반적인 방편은 역시 재력이다. 이렇게 소유와 축적에의 의지는 무의식적으로 체화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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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기의 노래였던가. "누난 내 여자니까." '내 여자'라니. 그녀가 니 거냐? 뭐,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세상에 '내' 여자는 없다. 다시 말해 '내 것' 또는 '내 소유'인 여자는 없다. 그럼에도 소유격의 사용에 너무나 익숙하다. 에리히 프롬의 지적이다. 문득 강신주 철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결혼 제도란 임대가 금지된, 상호 간 성기독점권을 보장하는 계약이라나 뭐라나.

소유냐 존재냐.


대개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다. 욕망하는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소유하는 한 질려버리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른바 '한계 효용의 체감'이랄까. 그런즉 남자들의 이상형 여성이란 늘 '처음 본 예쁜 여자'일 수밖에 없는 거다(아니 여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소유냐 존재냐.


이런 실험도 있다. 실험용 쥐의 집 안에 초인종을 설치한다. 우연히 쥐가 초인종을 누르게 될 때마다 먹을 것을 준다. 이게 반복이 되면 배가 고플 때마다 쥐는 학습의 효과로 초인종을 누르게 된다. 이때 쥐의 생리적 반응을 조사해 보니, 정작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보다는 초인종을 누를 때 도파민 분출이 심화가 되었다. 이 얘기인 즉 욕구 충족의 순간보다 욕구에 대한 갈망의 상태가 더 강렬하다는 사실이고, 따라서 영화 <유리의 성>에서 여명과 재회했을 때 서기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내가 가장 너를 사랑했을 때는...... 너와 떨어져 있었던 시절이었어


스크린샷 2024-12-22 오후 5.52.21.png 있을 때 잘하라니까...


이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인가 보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에서도 알리사가 제롬에게 비슷한 말을 하지 않았나.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감히 단언하건대, 다수의 인간들은 없을 때 잘할 수밖에 없다. 아니, 말이 좀 이상하다. 없을 땐 잘해 줄 수 없으니 말이다. 다시 고쳐 쓰자. '없을 때 잘하려는 생각이 강렬해진다.'

나는 왜 저따위 '생기다 만' 기타를 욕망하는가? 물론 마음에 들긴 한다. 그 선호라는 장작불에 '하지만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 인식의 기름을 부어 넣는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손안에 잡힌 욕망은 더 이상 욕망이 아니라는 것을.

만났던 여자의 수가 내 아이큐 숫자보다 높을 것만 같은, 임시완을 닮은 내 친구 윤호(가명)는 젊은 시절의 내게 이렇게 조언하곤 했더랬다.


찐따들이 흔히 그러는 것처럼 (좋아하는) 여자에게 그녀가 원하는 것을 즉각 즉각 제공해 주는 것은 그녀와의 뜨ㅂ... 아니, 교재를 경건하게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욕망의 지연이 외려 욕망의 불길에 장작을 제공하는 아이러니. 성취 그 자체가 아니라 오직 성취에 대한 기대감만이 행복감을 높여준다는 엄연한 생리학적 사실.

하지만 너는 이미 도파민에 감염이 되어 있고, 지름신은 견유학파보다 힘이 세다. 따라서,


너는 이미 [결재]를 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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