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연습이 재미없을 때는 이렇게
학생들이 처음 기타를 배우면 재미있어할까?
그럴 리가 없다. 듣는 귀는 하늘에 있는데 현재 손가락의 능력이 바닥일 경우, 그 갭으로 인해 재미가 상당 부분 감소할 테니.
비슷한 예를 들면 이렇다.
절친인 박 모 씨가 연애를 하면 재미있어할까?
그럴 리가 없다. 눈높이는 아라가키 유이한테 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만날 수 있는 여성은....... 이 갭으로 인해 재미가 상당 부분 감소한다. 고로 박 모 씨는 연애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학생들이 자신의 귀를 만족시키려면 손을 단련시키기 위한, 무진장 재미없는 트레이닝을 수행해야만 하고, 박 모 씨의 경우 자신의 눈을 만족시키려면....
.... TV나 처봐야지, 뭐.
다음은 어느 학생과의 대화 :
"태만아, 재미없지?"
"....."
"재미없는 게 당연한 거임."
"왜죠?"
"생각해 봐. 기타가 니들이 좋아하는 게임처럼 재미있다면 세상에 기타 잘 치는 인간이 천지삐까리이겠지?"
"천지삐까리가 뭔데요?"
"졸라 많다는 얘기야.... 어쨌든, 처음부터 기타가 재미있어 죽겠다는 인간은 둘 중 하나야. 변태이거나 거짓말쟁이이거나."
글타. 손가락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F코드를 잡는데 소리는 잘 안 난다. 이러는 상황에 "이 고통, 그리고 이 더러운 소리.... 아이, 넘 좋아..."라고 한다면 매저키스틱한 변태일 가능성이 높다.
때로는 특정상황이 '졸라 잼없음'을 극복하게 해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컨대 다음의 상황이다.
장원영(을 닮은 여학생) : 야, 태만아.
태만 : (당황하며) 어? 응.... 왜?
장원영 : 애들이 그러는데 너, 요즘 기타 배운다며?
태만 : 어? 아...응, 뭐 그렇지.
장원영 : 진짜? 너, 그럼 <황혼> 칠 수 있어?
태만 : 황혼? 아, 그 곡... 뭐, 조금...(사실은 하나도 못 침).
장원영 : 헐~대박! 나 그 곡 넘 좋아하는데! 코타로 오시오가 치는 거 봤는데, 아... 너무 멋있어서 홀딱 반했잖아...
그 이후로 태만 군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하루 8시간의 강행군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설령 <황혼>을 연주할 수 있게 되더라도, 장원영이 홀딱 반한 것은 황혼을 치는 '코타로'이지, '황혼을 치는 태만'이 될 리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지도 못한 채.
하지만 이런 일은 요즘이라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여학생들은 기타를 든 커트 코베인 보다는 춤을 잘 추는 스트레이키즈 같은 남친을 원한다. 고로 (남)학생들의 기타에 대한 성취욕은 기타 자체로 풀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졸라 잼없음'이 기정사실인 상황에서 선생은 어떤 수행법을 가르칠 수 있을까?
"쌤...."
"응? 왜?"
"이 연습, 꼭 해야 돼요?"
"당근이지. 그걸 안 하는 건 이런 얘기와 똑같아. '쌤, 저는 나중에 꼭 해외여행을 갈 건데요, 그래서 영어를 잘하고 싶어요. 근데 단어는 외우기 싫더라고요. 그래서 단어는 안 외우려고요.' 자, 이게 말이 되냐?"
"안 되죠..."
"그러니까 연습해. 지금부터 백팔 번, 시작~!"
하지만, 이런 억지 연습이 오래갈 리가 없다. 인간은 원래 재미없는 건 안 하게 되어있다. 그렇다면 다시,
'졸라 잼없음'이 기정사실인 상황에서, 그리고 '기타 잘 치면 여친 생긴다'가 개뻥이라는 것이 간파된 상황에서 선생은 어떤 수행법을 전수할 수 있을 것인가?
"태만아. 너,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거 보냐?"
"그럼요. TV는 안 봐도 그건 봐요."
"그럼, 일단 네가 좋아하는 채널이나 드라마를 검색해서 봐."
"왜요?"
"그리고 기타를 들어."
"그다음엔요?"
"드라마의 경우, 사실 모든 장면이 다 재미있는 건 아니잖아?"
"뭐... 그렇겠죠?"
"재미없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위의 연습을 하는 거지. 그러다가 화면에 예쁜이가 나오면 연습을 중단하고 좀 보다가, 다시 재미없어지면 또 연습을 하는 거지. 어떠냐?"
"에이, 쌤....연습하는 데 그렇게 집중을 안 하면 어떡해요?"
"아예 연습을 안 하는 것보다 낫잖아?"
글타. 나름 효과가 있다.
사실 이 방법이 집중을 빼앗는 것도 아니다. 장원영을 보면서 연습을 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재미없는 장면일 때는 잠깐이나마 집중을 할 수 있다. 곡 전체를 완주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 반복의 기능적 훈련이라면 이런 방법이 왜 도움이 안 되겠는가.
드라마가 끝나면 태만이는 다음과 같은 착시효과... 아니, 뭐라고 해야 할까, 일종의 착종 효과를 볼 수 있다. 사실 재미있었던 건 드라마였음에도,
"아~나름 재미있는 연습이었어!"
라고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도 드럼 연습을 할 때 이 방법을 쓰기로 한다.
스티븐 킹 원작의 공포영화 <It>을 보다가 간혹 재미없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스틱을 잡고 연습용 스네어 드럼을 '우다다다두다다다~' 두들긴다. 그러다가 광대귀신이 등장하면, 다시 영화에 집중한다.
이 경우에 오히려 집중이 안 되는 쪽은 영화다. 그러므로 심오하고 디테일이 중요한 영화는 배제한다.
연습에 도움이 되는 영화, 다시 말해 주요 장면만 봐도 상관없을 영화라면 아래의 것을 추천한다.
등산의 목적
신애마 천국
자다 깨니 도련님
두사부합체
말죽거리 복상사
황홀해서 새벽까지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