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잠언 25장 24절
키스(영화 <건축학개론>의 '납득이' 기준에서는 '뽀뽀')를 기습으로 행하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사귀는 거다."
군대 복무 시절에, 저녁만 되면 선임들은 TV 앞에서 벌러덩 드러누운 채 드라마를 시청하곤 하였다.
그것이 아마도 그들의 가장 큰 낙이었으리라.
한 번은 (고)최진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부산 출신의 한 병장이 담배를 뻑뻑 피우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 최진실이 내 여자친구라면 매일 업고 다닐 텐데..."
그때의 그 말이 인상적이었던 탓이었을까?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을 보면.
짧은 키스(뽀뽀)를 한 후부터 사귀게 된 그녀를 등에 업고 걷는다.
그녀도 거부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러고 다니는 것이 하나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등 뒤에서 초딩들인지 중딩들인지, 여하튼 내심 부러웠는지 우리들을 보고 비웃는다.
'얼레리꼴레리' 하면서.
그래.
이것도 다 추억이다.
오랫동안 기억될.
잠시 눈을 감으니 애들의 소란스러운 음성들이 알 수 없는 의미의 언어로 대체된다.
어둠 속에서 그 언어의 정체를 알아챈다.
일본어다.
주량이 약해진 탓인지 소량의 막걸리조차 의식의 스위치를 불현듯이 꺼 버린다. 일본어를 들으며 눈을 뜨니 완전한 어둠은 아니다. TV의 빛이 스민다. 일본 방송 전용 채널로 일드 <한자와 나오키>를 보다가 잠들었던 것.
안경을 집어 쓰고 바라본 TV속에서 젊은 남녀 무리의 일본인들이 장미꽃이 만발한 한국의 어느 관광지에서 각자의 감회를 일본의 전통 시로 표현하는 놀이를 하고 있다. 5.7.5조의 하이쿠다. 예컨대,
붉은 장미꽃
그녀에게 주고파
현실은 모쏠
뭐 이런 식이다.
생각나는 바가 있어 나도 한 수 읊는다.
옛사랑 그녀
등에 업고 걷는다
눈뜨니 ㅆㅂ
가브리엘 포레의 성악곡 <꿈을 꾼 뒤에>의 가사 내용은 이렇다.
Hélas! Hélas! triste réveil des songes
아아! 아아! 꿈에서 깨어나는 슬픔이여...
Je t'appelle, ô nuit, rends moi tes mensonges,
나는 너를 부른다, 오 밤이여, 너의 환상을 다시 보여다오.
이 곡을 야심한 밤에 오리지널 성악곡 말고 첼로 연주로 듣는다.
나는 너를 부른다. 오, 밤이여. 환상을 다시 보여다오...
하지만 꿈은 릴레이가 안 되는 것을.
오, 통재라.
https://youtu.be/OW3ODErNVVo?si=N-7EieDjhLpE1fA0
며칠 후.
피곤한 몸을 일으키고 자명종 시계를 바라본다.
7시 30분이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늦지는 않을 것 같다.
아침 식사만 생략한다면.
조금만 더 잘까...
새로 취업한 직장에서의 첫날.
첫날이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사무실을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닌다.
저 앞쪽에서 어떤 어여쁜 여직원이 내게 다가온다.
"오늘 일 끝나고 뭐 하세요?"
대체 왜 이런 걸 묻는 걸까. 혹시....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한다.
"일 끝나고 집에 가야죠. 집에서 와이프도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가 가버리자 한 남자 직원이 와서 말한다.
"왜 그랬어? 보니까 퇴근 후에 자네랑 식사 같이 하고 싶어서 저러는 거구만."
"아... 그런가요?" 하고 대답했지만 속으로,
'그러게 괜히 유부남이라는 걸 밝혀버렸나?'하고 살짝 후회의 마음이 든다.
하지만 마음을 고쳐 먹고는,
'안 되지. 며칠 동안 집에도 안 들어갔잖아.... 어제도 외박했으면서 전화를 안 했지. 오늘은 퇴근하자마자 집에 가야지'하고 생각하며 시계를 보는데... 아, 벌써 퇴근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리하여 과장님에게,
"과장님, 퇴근 안 하십니까?"
하고 물으며 집에 있을 와이프의 얼굴을 떠올리는데....
헉....
그녀는 바로 내가 대딩 때 짝사랑했던 수지(가명)가 아닌가.
아, 너무나 그리웠던.....
이런 그녀를 두고 며칠 동안 외박을 했단 말인가......
.
..... 하며 의아해하는 도중에 잠에서 깨었다.
망연자실.
이런 것이 상실감이라는 것인가.
아아! 아아! 꿈에서 깨어나는 슬픔이여...
나는 너를 부른다, 오 밤이여, 너의 환상을 다시 보여다오...
누운 채로 기지개를 펴는데 머리에서 무언가 툭 하고 가볍게 부딪힌다.
지난 밤에 읽은 성경책이다.
문득 솔로몬 왕의 저작 <잠언>의 구절이 떠오른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여자와 넓은 집에서 함께 사는 것보다, 차라리 다락 한 구석에서 혼자 사는 것이 더 낫다
_잠언 25장 24절 <큰 글자 새 번역 성경>
바가지 긁는 배우자는 똑똑똑 물이 새는 수도꼭지와 같다. 잠글 수도 없고 거기서 벗어날 수도 없다
-잠언 27장 15~16절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
그리하여 상황극을 상상으로 재현해 보았다.
마눌 : 여보! 대체 뭐 하는 거야!
나 : (띵가띵가 하며) 기타 치는 거임. 안 보임?
마눌 : 쌀 떨어졌어, 이 양반아!
나 : 에이, 씨...쌀 떨어졌으면 라면 먹으면 될 거 아님!
마눌 : 아니, 도대체 기타나 뚱땅거리고 있으면 쌀이 나와 돈이 나와?
나 : 대신 음악이 나오잖음?
마눌 : (기타를 빼앗더니 창밖으로 내던져 버리면서) 나가! 당장 나가!
위대하도다. 솔로몬의 지혜여.
포레의 노랫말을 단숨에 날려버리는 저 현명함.
말씀으로 이 상실감을 상쇄하였으니... 아, 위대한 지혜의 말씀이여.
설령 위의 상황극과 솔로몬의 말이 현대판 '여우와 쉰 포도'일지라도
미련과 상실감에 허우적대는 것보다는 낫다.
아니.... 어쩌면 이솝의 의도도 여우의 현명함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https://youtu.be/VvyBiHGr2b8?si=kiliu3EF1WbNuc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