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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똥

ㅡ부정 편향에 대하여

by 지얼



... 반면 지혜롭고 거룩한 제자는 몸의 접촉으로 인해 괴로운 느낌이 생기고 큰 고통이 닥쳐 목숨까지 빼앗기게 되어도, 슬퍼하고 원망하며 울부짖고 통곡하는 등 마음의 광란을 일으키지 않는다. 몸의 느낌 한 가지만 생기고 마음의 느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비유하면 하나의 독화살을 맞아도 두 번째의 독화살은 맞지 않는 것과 같다. 즐거운 느낌이 있어도 탐욕에 물들지 않고, 괴로운 느낌이 있어도 성내지 않으며,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 생겨도 어리석음의 부림을 당하지 않는다. <잡아함경>




오늘, 편의점에서 알바하시는 아주머니께서는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할렐루야~

그 근거는 아래와 같다.


예수님 : 내가 배고플 때, 목마를 때, 그리고 부랑자가 되었을 때 너는 내게 먹을 걸 주고 입혀주고 돌보아 주었지.

편의점 아주머니 : 네? 제가 언제요? 그런 적 없는데요?

예수님 : 내가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네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마태복음 25장>을 봐라.


알바 아주머니께서 오늘도 유통기한이 두 시간 정도 지난 도시락을 공짜로 주셨다. 그렇게 예수님을 영접하셨다.

일하는 곳인 기타 교습소에서 영접받은 도시락과 농심 김치 사발면을 맛있게 먹었다. 다 먹은 후에 빈 용기를 버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발바닥 아래에서 뭐가 물컹한 것이 밟히는 느낌이 전해지는 게 아닌가.


앗,
똥!

(에이, 씨.... 이 몽냥이 X끼.....)


스크린샷 2024-12-24 오후 2.13.11.png 몽냥이



인간의 부정 편향에 대해 생각한다.

숲 속을 가는 도중에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뭐지? 뱀인가?'

그리하여 열나게 튄다.

사실 그것은 생쥐가 낸 소리였다.

개 찐따 같다고? 아니다.

인기척을 뱀이라고 단정하는 인간은 생쥐일 거라고 안심하는 인간보다 생존의 확률이 높아진다. 인기척을 느낄 때마다 생쥐일 거라고 안심하다가 언젠가는 진짜로 뱀을 만날 확률이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인간의 부정 편향은 유전적 특성으로 자연선택 되었단다.


우리 몽냥이는 묘계의 돌연변이다.

똥을 아무 데나 싸질러 놓는 거다.

모래 위에 싼 후에 앞발로 모래를 덮는 고양이 특유의 본성은 대체 어디로 말아먹었단 말인가?

글타.

나는 몽냥이의 똥을 밟은 거다.

이것이 첫 번째 독화살이다.


몽냥이의 똥을 밟은 순간,

"앗! 똥!"

하며 광속의 속도로 급히 발을 지면에서 떼는 순간(발바닥에 느껴지는 끈적한 질감이 냥이 똥이라는 확신을 가져다주었다), 짜증과 당혹감에 살짝 무게 중심을 잃었으며, 그로 인해 빈 그릇에 올려져 있던 사발면 용기의 라면 국물을 바지에 쏟았다.


"앗, 뜨거!"


이것이 두 번째의 독화살이다. 아니, 그저 똥을 밟은 직후에 일어난, 짜증이라는 평상심 상실의 감정이 두 번째 독화살이고, '앗, 뜨거'는 단순히 그것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바지의 얼룩을 확인한 후에 바닥을 확인해 보았다.

그것은... 몽냥이의 똥이 아니라

조금 전에 내가 먹다가 흘린 밥풀 덩어리였다.


인간의 부정 편향에 대해 생각해 본다.

숲 속의 인기척은.... 그래, 뭐 뱀이라고 망상하는 게 생존에 유리할 수 있겠지.

그런데 왜 사뿐히 즈려밟은 그 무엇에 대해 밥풀 덩어리가 아니라 고양이 똥이라고 망상하는 것이 대체 생존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말인가? 똥의 세균이 네안데르탈인을 절멸로 이끌기라도 했단 말인가?

대체 이런 류의 부정 편향의 진화심리학적 근거는 과연 무엇일까?


어쨌거나 고양이 똥.... 아니, 밥풀 덩어리라는 첫 번째 독화살을 맞는 것으로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결국 연쇄작용으로 평상심 상실이라는 두 번째 독화살까지 처맞게 되었다.



스크린샷 2024-12-24 오후 2.16.00.png 몽냥이와 에옹이



카톡 왔어~


카톡 알림음이 울린다(참고로, 나는 처자들에게 오는 카톡의 알림음은 특별히 '카톡 왔어'나 '뭐해 뭐해', 또는 '메시지 왔어요' 따위로 설정해 놓는다. 아쉬운 점은 '오빠 뭐해요'가 없다는 거다). 이것은 숲 속의 알 수 없는 인기척이지만 그저 고양이 똥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류의 오래된, 부정 편향의 유전자가 나를 저지한다. 잡아함경에 따르면 이것은 첫 번째 독화살이다. 1을 지우는 순간 아마도 두 번째 화살을 처맞게 될 것이다. 그래서,


씹었다


장하다, 나 자신.






https://youtu.be/VShvFN6K_gE?si=cKVOunh8oM34ZE4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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