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Major 7th 코드에 대하여
어린 시절에 화음(코드)이라는 청각적 대상을 공감각화 하여 상상하곤 했는데, 그중 (예컨대 '도'음과 그 위의 7번째 음인 '시'음이 같이 울리는) Major 7th 코드는 잠결에 불어오는 미풍 같은 것으로 느껴졌다.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벗님들의 <그대>라는 곡의 인트로를 반복해서 쳤던 기억이 있다.
잠결의 미풍, 혹은
경미한 취기.
축제가 있었던 대학생시절, 동아리 친구 성훈(가명)의 여사친인 진희(가명)가 적을 둔 학과에서 준비한 간이 야외 주점에서의 일이다. 그녀는 나를 초대했고, 나는 비어 있는 바로 옆 자리에 내 기타를 기대어 놓고 그녀와 함께 열심히 낮술을 마시고 있었다. 둘러보니 자리는 만석이었고, 기타를 기대어 놓은 그 자리만 비어 있었다. 그러는 도중 누군가가,
여기 앉아도 돼?
하고 내 앞자리에 앉은 진희에게 묻는 것이었다. 진희는 승낙을 했고, 나는 기대어 놓은 기타를 치우려고 했으나 이미 그녀는 내 기타를 등받이 삼아 앉은 후였다.
그때 나는 보았다. 그녀는 바로....
이런 우연이 있나. 그녀는 진희의 같은 과 학우였던 거다. 짝사랑하는 여자가 바로 내 옆에 있는, 이 가슴 벅찬 영화 같은 현실이라니. 아니, 취기 탓이었을까? 이것은 차라리 비현실이라고 해야 맞다.
친밀하지 않은 타인들 간 개인적 허용 거리(Persnal distance zone)는 46cm~1.2m라고 했던가. 자신의 영역 안에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들은 구태여 뾰족한 털이 없어도 서로에게 고슴도치인 거다. 그런데 의자가 가까이 놓여 있었던 덕에 그녀는 밀접한 거리(Intimate distance zone : 0~46cm) 안에 있게 되었다!
머잖아 그 거리는 0cm가 될 것이고, 보다 더 이후에는 마이너스 거리가....
.... 하는 망상을 품다가 머리를 흔든다.
에라, 이 저질아.....
시간이 지나 그녀들과 헤어지고 난 후 일말의 정신은 있었는지 비틀거리며 찾아간 동아리 방에서 기타를 치려고 손에 들었는데.... 여섯 개의 기타 줄이 각자의 경계선을 잃어버려 기다란 절편처럼 허연 덩어리로 뭉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알았다. 취기는 사물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그리고 왜 술에 취하면 '떡이 된다'라고 하는지.
내게 있어 Major 7th코드는 봄날의 취기와 같다. 마치 아지랑이 배후의 사물을 바라보듯 사물이 가볍게 일렁이는 듯한. 혹은 사물의 경계선이 흐릿해지는 듯한.
구태여 추정해 보자면, 아마도 이럴 거다. 8도 음정, 그러니까 '도'음과 그 한 옥타브 위의 음인 '도'를 동시에 울릴 경우, 같은 음의 중복이므로 당연히 음이 명료하다. 반면에 메이저 7도(장 7도)의 울림, 그러니까 '도'음에서 일곱 번째 음인 '시'음은, '도'음의 배음인 한 옥타브 위의 '도'음과는 단 2도의 불협음정이 된다. 이는 마치 빨랫줄을 바라봤을 때 시력이 좋지 않은 경우 인접한 두 개의 빨랫줄로 보이는 것과 같다. 사물의 경계가 흐려지는 거다.
그래서 아마도 소위 인상주의 음악가들은 저음에서조차 단 2도의 불협을 적극 사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뭐 이런 거겠지. 니들, 음악적 뽕 좀 맞아봐라.
스매싱 펌킨스의 <1979>의 메인 반주(따따따따,따따따안~따~~~)를 들으면 그래서 기분이 좋다. 약에 취한..... 아니, 봄날의 취기를 불러오는 불협화음.
봄날의 취기는 내 젊은 날의 정취이기도 하다. 몽환의 이미지들. 모네, 라벨, 드뷔시... 아지랑이, 해질 무렵, 교회 종소리, 수면 위의 햇살, 그리고 대개 상상 속 막연한 표상으로만 존재하던 너.... 얼마나 많은 그리움이 술을 불러들였던가.
세월은 가고, 잊지 못할 내 소중한 기타.....
...... 를 감히 등받이로 삼은 그녀도, 봄날도, 술과 장미의 나날들도 취기가 사라지듯이 모두 자취를 감춰 버렸다.
We had joy, we had fun, we had seasons in the sun
but the wine and the song like the seasons have all gone
https://youtu.be/4 aeETEoNfOg? si=-JacW3 MyRplAIU7 T
꽤 시끄러운 음악을 했던 스매싱 펌킨스.
그중에 비교적 조용한(?) 음악이었던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