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그러거나 말거나
내 주거지 근처의 음식점에서 키우는 어린 고양이....
... 라는데, 주인이 대개는 집 밖에 내놓는 모양이다. 하루종일 길가에서 얼쩡거린다.
한 번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신발에 '부비부비'하길래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물어보았지만 당연히 묵묵부답이다. '쓰담쓰담'해주기 위해 고개를 숙이는 순간, 주머니 속에 있던 전화기가 툭 하고 떨어진다. 화들짝 놀란 냥이는 그걸 공격 신호로 받아들인 모양인지, 그 이후로 다가가려고만 하면 달아나 버린다.
오늘은 어느 가게에서 다 먹고 내놓은 배달 음식 그릇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배가 고픈 걸까? 인근 편의점에서 고양이용 고기 캔을 사려고 했으나 안 판단다. 어쩔 수 없이 강아지용 캔을 사서 냥이에게 내미는데 이것마저 공격 무기로 판단했는지 저만치 달아나 버린다. 커뮤니케이션의 완전한 실패.
예전에 일산의 한 시골 마을에서 개 두 마리,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유유자적 (비참하게) 살았을 때다. 어느 날 아침, 침대 아래에서 죽은 새 한 마리를 발견했다. 물론 고양이가 나더러 먹으라고 잡아 온 거다. 평상시 주인으로부터 먹거리를 제공받았으니, 자기도 뭔가 보은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보다. 당시 이런 의미를 몰랐던 나는 고양이가 보든 말든 새를 집어 들고는 밖으로 나가 저 멀리 던져 버렸다. 고양이가 곁에서 빤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 그 고양이는 선의에 재를 뿌린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라고 생각했을까?
그래도 고양이는 여전히 내게 와서 '부비부비'했다.
청각 장애아를 소재로 한, 명작 만화 <도토리의 집>에 다음의 장면이 나온다. 청각 장애가 있는 어린아이가 밥을 씹다 말고 손바닥에 뱉어내고는 엄마한테 쓰윽 내민다. 반복되는 아이의 행동에 화가 난 엄마가 야단을 치자 아이는 억울함에 눈물을 터뜨린다. 아마 아이의 생각은 이랬을 테다. '내가 조금 씹어 보니, 참으로 맛있네. 그래서 이 맛있는 걸 엄마한테 주려는 건데 엄마는 대체 왜 화를 내는 거지?' 청각 장애로 인해 사회화가 늦을 수밖에 없는 아이는 씹다가 만 음식을 타인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걸 알 리가 없다. 그리고 고양이는 내가 닭 이외의 새를 먹지 않는다는 걸 알 리가 없다.
선의의 대가로 악의를 감당해야 하는 이런 상황 또한 명백한 커뮤니케이션의 실패다.
아들러 심리학의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기는 해도 배울 구석이 꽤 있는,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꼽으라면 아마도 '과제의 분리'에 관한 장일 테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선의를 베풀거나, 혹은 누군가의 발전을 위해 나름의 노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을 때 그 누군가가 나의 선의나 노력에 상응하는 반응이나 결과를 보여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코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마라. 선의나 노력이 나의 '과제'라면, 그것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상대방의 '과제'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과제에까지 네가 개입하려 들지 마라.
책을 조용히 덮고 나서 생각한다. '평범한 인간에게 이런 게 가능할까?'
보은의 새를 저 멀리 던져 버린 행동을 보고 나의 고양이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인간적 사회화와는 거리가 먼 고양이 나름대로의 '과제의 분리'다(아니, 이런 걸 구태여 '과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테다). '강아지 캔을 무기로 오해하거나 말거나....' 인간영장류인 나는 결코 이렇게 시큰둥하게 여기지 못하고 다만 이렇게 생각할 뿐이다. '저 먹으라고 돈 들여서 사 왔건만.... 아까비!'
웃는 얼굴에 침을 맞게 되었을 때, 혹은 뒤통수를 얻어맞았을 때 상대에게 '부비부비'까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시큰둥할 수가 있을까? 내게는 요원한 일이기는 하다.
-2017.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