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들의 밥

ㅡI am 밥 쌤

by 지얼





파리가 날리는 학원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드라마 <또 오해영>을 재밌게 보고 있는 도중에 시크하기 짝이 없는 뭐시기 초교 4학년 소윤(가명) 양이 레슨을 받으러 들어왔다.

잠시 멈춘 화면을 가득 채운, 잘 생긴 얼굴의 주인공(에릭)을 가리키며 내가 물었다.

"소윤아, 이 아저씨 짱 잘 생기지 않았냐?"

그랬더니,

"아니요, 별로요."

"이 얼굴이 별로라고? 그럼 원빈 아저씨는?"

"잘 생겼어요."

"좋아. 그럼 현빈 아저씬 알아? 그 아저씨는 어때?"

"그 아저씨도 잘 생겼어요."

궁금하여 더 물어보았다.

"너, 그럼 이정재 아저씨는 알아?"

"그게 누군데요?"

"오징어 게임에 나오는 주인공 아저씨. 몰라?"

"아. 알아요. 근데 그 아저씬 왜요?"

"그 아저씬 어때. 잘 생겼지?"

"아니요. 그 아저씨는 그냥 평범해요."


대체 평범의 기준이 뭘까. 요즘 초딩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야, 이정재 아저씨가 평범하면 대체 나는 뭐냐? 폐기물 오징어냐?"

라고 물었더니,

"쌤도 평범해요."

이러는 게 아닌가. 하여,

"야, 그럼 내가 이정재 아저씨와 동급이라는 얘기야?"

은근히 기쁜 마음에 물었더니 이 초딩이 답변하기를,

"아뇨!"

"뭐야… 이정재 아저씨도 평범하고 쌤도 평범하다면서?"

"이정재 아저씨는 잘 나가는 평범함이고요…"

"뭐? 그럼 나는?"

그랬더니 이 초딩이 말하기를,

"쌤은 PC방에서 죽때리는 평범한 백수 같아요."


이렇게 초딩들의 밥이 되어가고 있다…




초딩이 효진 양의 그림. 잘 그렸다~



이런 일도 있다.

클래식 기타 레슨 중에 초딩이 효진(가명) 양이 세하(검지 손가락으로 한 개 이상의 기타 줄을 잡는 테크닉)가 나오는 부분에서 자꾸 미스톤을 낸다.

"아까부터 자꾸 거기서 틀리는구나."

"어려워요."

"연습 부족이야."

"연습 많이 했어요!"

세하의 요령도 이미 다 가르쳤다. 어쩌면 좋을까.

연습 부족이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집중력의 문제가 아닐까?

문득 좋은 생각이 났다.


"너, 거기 자꾸 틀리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요?"

"10년 후에 나랑 똑같이 생긴 남자랑 연애하게 돼!"

그랬더니,

"악! 싫어요!"

"왜 싫은데?"

"쌤은 가난한 데다가 못생겼잖아요."

그러고 나서는 해당 부분을 치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미스톤 없이 제대로 쳤다.

이노무 자식이… (ㅡ..ㅡ^)





'선생님 전 세계 최강 못생김'이라고 쓰고 있는 소윤 양



효진 양을 통해 터득하였다.

훈육에는 물리적 체벌 따위는 불필요하다는 사실.

저주(?)로 체벌을 대신하는 교육적 효과는 확실하다는 것.

이 교육 철학(?)을 연습을 제대로 안 하는 소윤에게 다시 한번 적용해 보기로 한다.

나 보고 'PC방에서 죽때리는 평범한 백수' 같다고 한 그 아이다.


"너, 연습 안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요?"

이번에도 인과관계라고는 전혀 없는 저주성 답변을 해주었다.

"10년 후에 나랑 똑같이 생긴(소윤이의 관점에서 '전 세계 최강 못생긴') 남자랑 사귀게 돼."

"그럼 헤어지면 되죠."

"그건 안돼."

"왜요?"

"왜냐하면 그때는 이미 결혼한 상태가 되어있거든."

"그럼 이혼하면 되죠."

"그것도 안 돼."

"왜요?"

"그때는 이미 네 남편이랑 똑같이 생긴 아이가 있을 거거든."

과연 소윤이는 이 굴레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과연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그럼 그냥 죽어버리면 돼요."

이렇게 이 아이는 나의 '전 세계 최강 못생김'을 감정적으로 증명하였다…



아.... 어쩔 것인가.

초딩이들의 머리를 오염시키는 이 외모지상주의를.

"내가 한 때는 말이야, 굉장히 날씬하고 얼굴도 뽀얗고 나름...." 말을 끊는 초딩 미나(가명) 양.

"안물안궁"

안 물어봤어, 안 궁금해. 뭐 이런 뜻이란다.


어느 날인가, 머리는 하얗고, 뚱뚱하고, 코도 크고, 눈은 작고…등등 나의 못난 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는 초딩이 효진 양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내가 지금은 나이 들어서 그렇지, 20살 때는 나름 예쁘게 생겨서 여자에게 인기가 짱 많았어!"

"뻥치지 마세요."

절대 안 믿는 효진 양에게 역사적 팩트를 말해 주었다.

"진짜야. 당시에는 무려 세 명의 여자 사이에서 누구를 사귀어야 할지 고민한 적도 있었다니까!"

라고 말했더니, 초딩이 효진 양이 화이트보드에 아래의 그림을 남겨주었다.



세 명 사이에서 고민했다고 했지 어장관리를 했다고는 하지 않았어…

그래도 나의 얘기를 나름 인정했다는 증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효진 양은 다음 주에 아래의 그림을 그림으로써 나의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했다.





초딩 여학생에 비하면 남자 애들은 그래도 좀 낫다.

초딩 5학년 남학생인 호동(가명) 군은 나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호동 군과의 레슨 시간.

호동 군이 배워야 할 곡인 <Under the green wood tree>를 구슬프게 쳐서 들려줬더니 내게 하는 말이,

"선생님... 이 곡.... 꼭 선생님 같아요."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게 뭔 소리야? '선생님 같다'는 게 뭔 뜻이지?"

"포장마차 보면 집에 안 가고 밤늦게까지 혼자 술 마시는 아저씨들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랄까...."

이로써 초딩이들의 나에 대한 이미지가 또 하나 추가되었다.


그지(거지)쌤, 구체적으로는

돈 없어서 지하철에서 자거나 자연인 생활을 하는 쌤

기타는 훔쳐서 쓰는 쌤

여자에게 못생겼다는 이유로 매일 까이기만 하는 쌤

그리고, 밤늦게 혼자 술 퍼마시는 고독한 쌤.


이런 빌어먹을....



이건 진짜 잘 그렸다.




뭐, 못생겼다는 평가는 그렇다고 치고,

초딩이 효진 양이 나더러 '그지 쌤'이라고 하는 데에는 사실 다 이유가 있다.

언제가 효진 양이 내게 물었다.


"쌤, 어느 대학교 나오셨어요?"

"나? 하버드 대학교."

"뻥까지 마세요."

"진짜야. 우리나라 저기 아래 지방에 있어. 하버드 대학교 분교가."

당연히 안 믿는 눈치다. 이번에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쌤, 어디 사세요?"

"나? 타워 팰리스."

"뻥치지 마세요. 거긴 서울이잖아요."

믿을 리가 만무하지. 다시 묻는 효진 양.

"어디 사시는데요?"

"사실은.....너, 명주천이라고 알아?"

"그게 어딘데요?"

"저기 산 아래 동네에 개천이 있잖아."

"그런데요?"

"거기 개천이 명주천인데 거기에 다리가 하나 있거든?"

"그런데요?"

"거기 다리 밑에 움막이 하나 있어. 거기가 내 집이야."

그리고 덧붙여서 말해주었다.

"나, 사실 거지거든."

의혹을 제기하는 효진 양.

"그럼 지금 입고 있는 그 옷은 어디서 난 거여요?"

"이거? 의류수거함에서 몰래 빼 온 거야."

이번에는 내가 마시고 있던 우유를 가리키며,

"그럼 그 우유는 어디서 난 거여요? 거지라면서요?"

"이 우유? 편의점 가면 알바하시는 분이 유통기한 지난 음식들을 공짜로 줘."


그 후로 나는 '그지 쌤'으로 불리게 되었다.

효진 양에게 무슨 잘못이 있으랴.

자승자박이다.



돈이 없어서 자연인 생활을 하는 쌤





마지막 이야기.

어느 날인가, 효진 양에게 물었다.

"기타 연습 해왔니?"

당당하게 대답하는 효진 양. "했는데요."

"안 한 것 같은데?" 내가 다그쳤다.

"했어요."

"너, 기타 열심히 쳐야해. 왠지 알아?"

"몰라요."

"네가 열심히 안 하면 네 엄마가 이런 생각을 하실거 아냐. '우리 딸이 기타에 흥미가 없나 보구나. 학원에 그만 보내야지.'"

"그런데요?"

"그러면 내가 얼마나 서운하겠니. 네 그림도 이젠 못보게 되는 거잖아."


그랬더니 이 초딩 왈,

"그짓말. 돈줄이 끊어질까봐 그러면서."


아....

배금주의 만세.



숲속의 악어. 이것이 창의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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