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ㅡ무라카미의 심리학

by 지얼



2017년 여름.


하라는 기타 연습은 안 하고 잡담이나 일삼는 초딩 3인조.

뭐가 그리 즐거운지 왁자지껄 떠드는 도중, 그들 중 한 명인 M군에게 전화가 온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전화기 저편으로부터 들려오는 여자 초딩이의 소리. 까르르, 혹은 주절주절.

"야, 전화 끊어."

M군이 모질게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끼어들었다.

"야, 걔가 너를 좋아하나 보다."

이러면 보통의 경우라면 다른 두 명의 초딩이가 얼래리꼴래리 하는 눈빛으로 M군을 쳐다보며 놀려야 마땅할 텐데, 그런 기색은 전혀 안 보이고 다만 그 여자 초딩이에 대해서 일치되는 견해를 보일 뿐이다.

"걔, 완전 '관종'이에요."

'관종.' 관심 종자. 즉, 관심병자를 말한다.

"설마?"하고 되물었더니, M군 말고 다른 초딩이가 애써 증명해 준다.

"얘(M군)한테만 이러는 거 아니에요. 저한테도 그러고, 딴 애한테도 그래요."

"뭘 모르는 놈들...." 선생 기질이 발동하여 '무라카미의 심리학'을 전수해 주기로 마음먹는다. 텍스트는 일본 만화 <캠퍼스 러브 스토리(원제 : 동경대 러브 스토리)>다.


동경대를 목표로 하고 있는 전교 1등생 '무라카미'는 연정의 대상인 '하루카'를 보고 싶어 미칠 지경이 되지만, 남들이 알아차릴까 두려워서 그냥 그녀의 교실 뒷문 창을 통해 그녀를 훔쳐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무심코 지나가는 다른 학생들의 시선이 "너, 지금 하루카 훔쳐보는 거지?"라고 말하는 듯하여 신경이 쓰였던 무라카미는 마음의 불안감을 떨쳐낼 묘수(?)를 생각해 낸다. 그 층에 있는 모든 교실의 뒷문 창을 기웃거리는 거다. 무라카미는 생각한다. '이러면 비록 모든 교실을 기웃거리는 이상한 놈 취급을 받을지언정, 하루카를 훔쳐본다는 혐의는 벗을 수 있다.'


"그런데요?" 하는 초딩이들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그러니까 그 여자애도 무라카미의 심리일 거라고."


만화 <캠퍼스 러브 스토리>



"자, 그럼 연습해 보세요." 한 학생에게 기타 연주의 스킬을 한 가지 알려준 다음 돌아서서 책상이 있는 사무실로 향하는 도중에 놀라움에 빠진다. 10초나 걸렸을까, 그 짧은 시간에 방금 전에 알려준 스킬을 능숙하게 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15년 넘게 레슨을 해왔지만, 기타를 배운 지 3주도 안 된 이가 3-finger 아르페지오를 그토록 빠른 시간에 제 속도로 연주하는 건 처음 봤다. 이렇게 습득이 빠른 학생에게는 아무래도 레슨의 분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 같은 돈 내고 배우는데 레슨의 분량이 왜 다르냐고 다른 학생들이 속으로 따질 수도 있다. 게다가 하필 그 능숙한 학생이 젊고 예쁜 처자라면 더욱 곤란하다.


하여 '너, 지금 그 처자 가까이에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거지?' 하는 속된 오해, 혹은 곡해로부터 자유스러워질 방안을 강구한다. 그리하여 남녀노소 불문하고, 학원에 있는 모든 학생들을 과도하게 많이 지도한다. '이러면 비록 모든 학생들에게 과도하게 많이 가르치는 열성적인, 혹은 이상한 선생 취급을 받을지언정, 처자를 가까이에 두고 싶어 그러는 거라는 혐의는 벗을 수 있다.'

형식상으로만 유사할 뿐, 무라카미의 속내와는 다른지라 혐의 인정은 하지 못하겠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


기타 연습에 매진 중인 태정(가명) 군. 며칠 동안 <카바티나>만 연습하더니 오늘은 웬일로 아이유의 <밤편지>를 연습하고 싶단다. 그의 요청대로 악보를 건네주었더니 운지와 리듬을 파악하는 데 애를 먹는다.

"여기 어떻게 치는 거야?"

라고 묻길래 대충, 대강, 설렁설렁, 그럭저럭 가르쳐 주었다.

그랬더니 그가,

"우와~진짜 너무한다. 혜승(가명) 양 가르쳐 줄 때랑 완전히 달라!"

하며 투덜거린다.

혜승 양은 초보이고, 너는 기타를 배운 지 오래되었잖아,라고 대답해 봤자 돌아올 대답은 뻔한 줄 알기에 씨익 웃고 말았다.

설마 내게 이런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니겠지.

여자랑 남자랑 같냐,





도덕 철학자 제임스 레이첼스는 '평등'의 실천적 지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 "처우의 차이를 정당화하는 적절한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우리는 개체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처우해야 한다" 요컨대 반려견을 초등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은 차별이 아니다. 하지만 밥을 안 주는 것은 차별이다. 고로 역량의 차이를 반영하여 처우하는 것은 불평등이 아니다.

'매의 눈'을 지니고 있다고 자평(자뻑)하는 친구 권 모 씨라면, 아마 이렇게 지적하리라. "네가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무라카미의 심리학을 적용하는 행위의 근저에는, '처우의 차이를 정당화하는 적절한 차이'의 몰이해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처우의 차이를 정당화할 수 없는 부적절한 사심이 있다."

쉽게 말해 이런 얘기다. "그 처자 학생이 다른 이들보다 월등히 잘하기 때문에 더 많은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너의 생각이 다른 학생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것을 우려한다고 하겠지만, 기실 그것은 구실일 뿐이고 단지 사심 그 자체일 뿐임."

물론 나는 항변할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니까.


진실은 언제나 아득히 멀다.

아득히.


https://youtu.be/QLJxdkl5wJI?si=sXfjS-nvUrKcFjWl

Spitz의 노래 <하루카(아득히)>



遙か

-spitz


夏(なつ)の色(いろ)に憧(あこが)れてた フツウの毎日(まいにち)

여름의 빛깔을 동경하고 있었던 평범한 매일

流(なが)されたり 逆(さか)らったり 続(つづ)く細(ほそ)ぃ道((みち)

흘려지기도 하고 거슬러 나가기도 하고 계속되는 좁은 길


君(きみ)と巡(めぐ)り会(あ)って もう一度(いちど)サナギになった

너와 우연히 만나 한 번 더 번데기가 되었던

嘘(うそ)と本当(ほんとう)の狭間(はざま)で 消(き)えかけた僕(ぼく)が

거짓말과 진실의 틈새에서 사라지기 시작한 내가


思(おも)い出(で)からツギハギした 悲(かな)しいダイアリー

추억으로부터 이어붙인 슬픈 다이어리(Diary)

カギもかけず 旅立(たびだ)つのは 少(すこ)し怖(こわ)いけど

열쇠도 채우지 않고 여행을 나서는 것은 조금 무섭지만


丘(おか)の上(うえ)に立(た)って 大(おお)きく風(かぜ)を吸(す)い込(こ)んで

언덕 위에 서서 크게 바람을 들이쉬고

今(いま) 心(こころ)から言(い)えるよ ニオイそうな I love you

지금 마음으로부터 말할 수 있지 향기가 날듯한 I love you


すぐに飛(と)べそうな気(き)がした背中(せなか)

곧바로 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 등짝

夢(ゆめ)から醒(さ)めない翼(つばさ)

꿈으로부터 깨지 않는 날개


時(とき)の余白(よはく) 塗(ぬ)り潰(つぶ)した あくびの後(あと)で

시간의 여백 전부 칠했던 하품한 후에

「幸(しあわ)せ」とか 野暮(やぼ)な言葉(ことば) 胸(むね)に抱(だ)いたままで

「행복」이라든가 세상물정에 어두운 말 가슴에 안은 채로


崩(くず)れそうな未来(みらい)を 裸足(はだし)で駆(か)け抜(ぬ)けるような

무너질 듯한 미래를 맨발로 달려 빠져나갈 듯한

そんな裏(うら)ワザもないけど 明日(あした)にはきっと・・・

그런 비법도 없지만 내일에는 꼭 · · ·


僕(ぼく)らそれぞれ 仰(あお)ぎ見(み)る空(そら)

우리 각자 올려다보는 하늘

夢(ゆめ)から醒(さ)めない翼(つばさ)

꿈으로부터 깨지 않는 날개


飛(と)べそうな気(き)がした背中(せなか)

날 수 있을 듯한 기분이 든 등짝

夢(ゆめ)から醒(さ)めない翼(つばさ)

꿈으로부터 깨지 않는 날개


それぞれ 仰(あお)ぎ見(み)る空(そら)

각자 올려다보는 하늘

夢(ゆめ)から醒(さ)めない翼(つばさ)

으로부터 깨지 않는 날개

遠(とお)い 遠(とお)い 遥(はる)かな場所(ばしょ)へ

멀고 먼 아득한 곳으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