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마 유키오는 1970년에 평화헌법에 반대, 자위대의 궐기를 촉구하며 40대 중반의 나이에 할복 자살했다. 군국주의의 부활을 염원한 극우주의자로 죽은 거다.
짙은 눈썹, 근육질 몸, 일본도... 등, 그에게 느껴지는 건 이런 마초적 이미지다. 그런데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섬세한 미문의 정체는 대체... 이토록 시심(詩心) 그윽한 인간이 대체 왜? 이 작품을 쓸 때는 안 그랬는데 죽을 무렵에는 시심이 메말라 버렸던 것일까? 혹시 마초란 시심 상실의 극단적 형태는 아닐까? 아니면 인간은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이중적일 수도 있는 걸까?
인간 내면의 그림자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는 시심 상실의 결과라고 믿고 싶다.
클래식 기타의 거장 안드레스 세고비아는 언젠가의 인터뷰에서, 나이 듦에 따른 시심의 감소에 대해 아쉬움을 표한 바 있다.
창밖으로 내다보니 봄비가 내린다. '하늘이 물청소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나 역시 시심이 바닥을 치고 있음을 느낀다. 하여 잠시 생각에 잠겨 시상을 떠올린 후 후배 S 군에게 들려주기로 한다.
"멋진 시구가 떠올랐어. 한번 들어볼 테야?"
"뭔데?"
"듣고 평해봐."
목구멍을 가다듬고 시구를 읊었다. 575조의 하이쿠다.
황사의 추억
빗물로 부딪힌다
오염의 기억
감상 후 S 군이 한마디를 툭 던진다.
"황사의 추억? 중국에서 연애했어?"
"뭐시라? 짜샤, 일종의 은유야. 어쨌든 멋지지?"
라고 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아니. 졸라 구려."
그러고는 확인 사살.
"어디 가서 이거 써먹지마."
21세기는 낭만의 시대가 아니거나
시심과는 도무지 섞일래야 섞일 수 없는 나이이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심은 들지 않고 늘상 일기예보 같은 정보로만 받아들일 뿐.
영화 <러브 스토리>
남자들이 눈 오는 걸 싫어하게 되는 계기는 대체로 군대에서의 사역일 것이다. 영화 <러브 스토리>의 그 유명한 눈-놀이(Snow frolic) 장면의 낭만을 연병장에 가득한 눈더미와 함께 눈삽 넉가래로 치워 버린다.
2017년 여름.
새벽부터 내린 비가 단잠을 깨운다. '빗소리 참 좋다.' 이런 생각보다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과도한 습도에 대한 우려다.
독문학자 전혜린은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의 한 구절, '나타니엘이여, 우리는 비를 받아들이자'에 감동하여 보다 젊었던 시절에 폭우 속을 우산 없이 걸어 다녔다지만, 나는 그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나 제습기의 버튼을 누를 뿐이다.
물론 제습은 기타들을 위해서다. '나중에 되팔 때 제 값을 받으려면 온전히 보존해야만 해'하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마음의 습기마저 제습되어 버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골목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어 찌그러진 오각형의 형태(사각형의 한쪽 모서리가 깎인 형태)인 레슨실은 3면이 유리로 둘러싸여 있다. 반향이 심해서 음향적으로 그다지 좋은 조건은 아니다. 게다가 원생이 한두 명을 넘으면 소란스러울 정도다. 예민한 원생 분이라면 불만을 가질 법도 하다. 이렇게 영업적 차원에서 유리창을 바라본다. 통장 잔고가 늘어나면 개선하기로 마음먹는다.
초로의 동호회 회원 분이 연습 도중에 물끄러미 창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말씀하신다. "이곳에 앉아 있으니 3면으로 비 내리는 풍경을 볼 수 있으니 참 좋네요. 1층이라 더 그래요. 아파트에서는 이런 건 못 보는데..."
낱말의 뜻 그대로 숫자상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내가 초로인 이 분의 '선생'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先生. 먼저 태어난 사람. 먼저 태어나서 시심이 먼저 죽어버리고 정서의 사막에서 여생을 보내는 사람.
심적 습기의 제습은 나이 순이 아니다. 폭우 속을 우산 없이 걸어 다녔다던 전혜린이 '수레에 끼워진 바퀴처럼 자기 자신이나 주위에 대해 신선한 흥미를 잃고 타성처럼 회전하고 있다'라고 고백했을 때의 나이는 불과 스물아홉이었다.
죽음에 이를 정도로 그녀는 습기 빠진 일상적 삶을 견디지 못했던 것일까.
정서의 사막화가 진행될수록 생계의 무게가 가중되는 건지, 생계의 무게가 정서적 사막화의 원인인지는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