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두지세(竿頭之勢) : 매우 위태로운 상황을 뜻한다.
<이 글은 28 체질의학의 발견과 연구, 의통의 전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민족 고유의 의통을 둘러싼 비밀과 음모, 천고의 비법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환단고기에서 동의수세보원에 이르기까지의 한민족 의통이 21세기에 세계 최고의 의학으로 대두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힌다. 각종 역병과 괴질, 난치병과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의통과 해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을 찾는 사람이 천하를 구할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될 것인가? 이 소설은 그 의문과 해답을 동시에 던질 것이다.>
86. 예측할 수 없는 질병이 운명을 만든다.
“아빠가 뇌졸증으로 위험하다고 해요. 한국으로 갈 수 있을까요?”
유림이 조심스럽게 승학에게 의중을 물었다. 승학은 유림을 보며 말했다.
“물어볼 필요가 없는 말이잖아요. 당장이라도 가야죠. 빨리 준비를 하세요.”
유림은 예약환자나 일정이 있어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위약조로한 상태라는 말을 어머니한테서 들었기 때문이었다. 매우 위태로운 중풍의 증상이라고 했다. 승학은 유림에게 자세한 증상을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이라고 하던가요?”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고 해요. 병원에서는 아주 심각한 증상이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어요.”
유림은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참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감추려고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였다.
“눈물을 감추지 말아요. 마음껏 우세요. 유림 씨를 누구보다 사랑해 주던 아버님이라고 했잖아요.”
그 말을 끝나기 무섭게 유림이 큰 소리로 흐느꼈다. 승학은 가까이 다가가서 살며시 안고 가만히 있었다. 유림의 아버님은 마지막까지도 승학과의 결혼을 반대했다. 유림이 결혼식을 올릴 때도 완강히 거부를 했었다.
그러나 가끔 유림의 어머니는 연락을 해왔다. 유림이 첫 딸에 이어 둘째 딸을 낳았을 때도 끝내 오지 못했다. 아버님의 완강한 반대와 고집 때문이었다. 유림이 둘째 딸을 낳았을 때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간청했다.
“손녀가 보고 싶으니 잠시 딸 집에 갔다 오면 안 되겠어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안 돼. 두 번 다시 말도 꺼내지 마.”
그는 완고하게 유림의 결혼과 자녀까지도 벽을 쌓고 단절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질병은 운명을 만들었다. 그 역시 병이 들어 무력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했던 것이다.
유림은 수선제의 손 원장에게 연락을 하고 곧 갈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유림의 아버지와 유일하게 친밀한 관계였고 한국에서의 치료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승학은 한의원의 환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서 진료를 3주 후로 미뤘다. 직원들이 깜짝 놀랐다. 그렇게 오랜 시간 휴진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승학에게 애들 외할아버지의 일보다 우선한 일은 없었다.
유림은 그동안 모든 준비를 끝내고 비행기 티켓팅까지 마친 상태였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한국까지는 꽤 긴 거리였다. 승학은 한국까지 가는 긴 시간 동안 깊은 생각을 했다. 뇌졸중과 의실불명, 반신마비, 반신 감각 장애, 언어 장애(실어증), 발음 장애 (구음 장애), 두통, 운동장애 등을 생각했다. 더군다나 시야나 시력 장애가 있을 수 있고 복시증이나 연하장애, 치매나 어지러움증 등도 있을 수 있었다.
극심한 상태는 식물인간 상태가 될 수도 있었다.
유림은 승학이 깊은 생각을 하는 동안 애들을 다독이며 가만히 있었다. 그가 깊은 생각을 할 때의 습관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림은 출국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타고나서야 승학에게 말했다.
“어떤 상황이나 심각한 증세라도 당신이 고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러나 부담을 가지지는 마세요.”
승학은 유림을 보며 말했다.
“위약조로의 상황을 여러 번 겪다 보면 반드시 기적 같은 치료가 있음을 알게 돼요. 아무리 뇌졸중 상태가 심각하다고 해도 그 병증의 데이터는 서양의학의 관점입니다. 체질의학으로서는 완전히 다른 시각이 있어요.”
“어떤 다른 시각이 있다는 건가요?”
유림이 놀란 듯한 표정으로 승학을 보며 물었다.
승학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양의학은 완전히 뇌의 혈관에만 집중하죠. 장부와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아요. 오직 뇌와 중추신경, 여러 증세들에 대해서만 치료합니다. 그러나 체질의학은 다릅니다. 뇌혈관도 중요하지만 그것과 연관된 내장의 시스템을 우선으로 치료합니다. 서양의학이 모르는 체질의학의 치료법이 따로 있다는 것이죠.”
“아. 그래요. 체질의학의 중풍 치료법이 따로 있다는 거예요.”
“당연히 그렇지요. 사실상 현대의학은 중풍을 관리하는 것이지 치료하는 것은 아니죠. 그들이나 환자가 그것을 알기 때문에 한방병원에 가서 치료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체질의학은 중풍치료를 뇌의 오작동에서 뇌의 정상작동으로 전환하여 치료할 수 있어요.”
유림은 승학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나를 애지중지 키워준 아버지니까 당신이 잘 좀 고쳐주세요.”
“당연하죠. 나는 어떤 상황이든 개인적 감정을 앞세우지 않아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상황윤리가 있어요. 그것이 고집이나 원칙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탓할 수는 없어요. 그건 개인적 선택이기 때문이죠.”
“그래요. 고마워요.”
승학과 유림은 오래전에 마음으로 모든 관계에 대해서 미움을 없앴다.
치료를 한다는 것은 미움이나 부정의식이 전혀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오직 생명에 대한 존귀함을 느끼며 심혼을 다해 치료에 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한국에 도착하자 말자 승학의 가족은 병원으로 먼저 달려갔다.
그곳에는 유림의 어머니와 오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승학은 그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들은 반갑게 맞이하며 아이들에게 깊은 애정을 쏟았다. 그간에 단절되었던 핏줄이 이어지며 뜨겁게 흘렀다.
유림이 어머니와 오빠를 보며 물었다.
“지금 어떤 상태인가요?”
손녀들을 안고 있는 엄마를 대신해서 오빠가 말했다.
“아직도 의식불명 상태이셔.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어. 어떤 이유인지 깨어나지를 못하니 희망이 없다는 것이지.”
유림이 다시 눈물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승학이 그 모습을 보고 물었다.
“별 다른 이상이 없는데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던가요?”
“그렇다고 하네. 아무래도 의학적으로 알 수 없는 원인이 있다고 해. 일단 이 상태로 가면 위험하다고 했어.”
그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힘없이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승학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오후 면회할 때 같이 들어가서 침 치료를 좀 해야겠어요.”
승학의 어머니가 그 얘기를 듣고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사위가 한의사라고 말하고 침 치료를 하자고 부탁했어. 그런데 의사는 펄떡 뛰며 안 된다고 말했어. 만약 침 치료를 하려면 퇴원시킨 후에 하라고 했어. 아마 그건 힘들 것이야.”
승학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병원에서는 원래 그렇게 합니다. 그것을 미리 알고 준비를 해왔습니다. 면회할 때 잠깐만 모르게 빨리 침을 놓으면 됩니다. 그때 여러 명 들어가서 유림 씨가 간호사를 잠시 밖으로 유인한 뒤에 하면 됩니다.”
“알았네. 그렇게 하도록 하세.”
그들은 그렇게 모의를 한 후에 저녁 면회시간에 함께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유림의 어머니는 간호사와 친밀하게 인사를 나눴다. 유림은 조금 있다 간호사에게 긴히 물어볼 것이 있다고 데리고 나갔다.
승학은 그 순간 준비한 침으로 빠르게 침을 놓았다. 의식을 회복하며 뇌의 정상작동을 촉진하는 특수한 침이었다. 진맥을 짚고 침을 놓는 시간은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이미 승학은 오는 동안 시뮬레이션을 다 한 상태로 신속하게 침 치료를 끝낸 것이었다.
유림의 어머니와 오빠는 그 빠른 속도에 놀래며 기대감에 숨을 죽이고 있는 듯했다.
승학은 침을 놓고 나서 약 17분을 기다렸다.
그 시간은 침 치료 이후 뇌의 오작동에서 정상작동으로 전환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고 바로 깨어나야 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흘렀다. 승학은 시계를 보며 지켜보았다.
정확히 17분이 지나고 나서 승학은 침을 뽑았다.
유림이 그때 들어와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빠, 제가 왔어요. 애들도 데리고 우리 가족 모두 같이 왔어요. 눈을 뜨고 한번 보세요.”
신기하게도 그 말이 끝나고 나서 환자가 손을 조금씩 움직였다. 모두가 침묵하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감고 있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다가 환자가 눈을 떴다. 그 순간은 마치 부활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놀라움과 감동의 도가니였다. 그러나 모두 얼어붙은 듯한 표정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침묵을 깨고 유림이 말했다.
“아빠, 다 보이세요? 말하기 어려우시면 눈빛을 깜빡여 주세요.”
환자는 눈을 깜빡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굵은 한줄기의 눈물이 미세하게 흐르고 있었다. 승학이 먼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복진과 손과 발의 촉진을 했다. 환자는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혀가 굳어 있어 말이 되지 않았다.
“으으으.... 으으...”
괴이한 소리를 내다가 말이 안 되는 것을 알자 포기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유림이 말했다.
“아빠 이제 의식을 회복했으니, 괜찮아질 거예요. 승학 씨가 다 고쳐드릴 거예요. 제가 아빠 속상하게 해서 죄송해요. 용서하세요.”
그렇게 말하고 눈물을 보였다. 그러자 환자가 보고 손사래를 치며 유림을 보았다.
괜찮다는 뜻이었다. 그 역시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고 아빠였던 것이다.
승학은 그를 수선제로 빨리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는 별 다른 치료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유림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눈빛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