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치료할 수 있는 약재가 베트남에 있다고?
말레이시아는 특별한 약재가 많다.
모닝마켓에 가면 길거리 약재상이 있고 갖가지 진기한 약재들이 있다.
나는 그곳에서 호라고 하는 화교 약재상과 자주 만났다. 그는 영어는 조금 했고 광둥어를 사용했다.
서로 대화가 조금 힘들었다. 내가 북경어를 쓰면 겨우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바디 랭귀지와 북경어로 소통은 되었다. 그는 친절하게도 말레이시아만의 약재를 많이 알려주었다. 그 덕택으로 나는 말레이시아 열재 약재로 ‘건선’과 아토피, 황반변성, 자폐증, 암 등 많은 난치병을 고쳤다.
그는 말레이시아에서 수 천년 간 전승된 약재 중에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들을 추천해 주었다. 나는 그것들을 실험했고 놀라운 효과를 여러 번 확인했다. 그가 알려준 특효 약재 중에 감기는 놀라운 효과를 나타냈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바이러스 천국은 말레이시아다. 열대의 날씨에 건조하며 강이 없는 쿠알라룸푸르의 경우에 감기의 환절기는 없었다. 수시로 감기 바이러스가 떠돌았고 파괴력도 상당했다. 한국에는 없는 열감기 같은 경우 한번 걸리면 며칠 몇 밤을 새워야 했다. 낮에는 멀쩡했다가 밤에는 열이 엄청나게 올라가기 때문이었다. 병원약이나 주사도 효과가 없었다. 오롯이 스스로 물러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것을 치료하는 약재를 그가 알려주었다. 실제 효과는 드라마틱했다. 어지간한 감기는 하루 이틀 만에 다 완쾌가 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선 감기 특효제가 인기였다. 감기가 하루 이틀 만에 낫는다는 소문이 낫기 때문이었다. 그는 숨은 고수가 틀림없었다. 그가 추천하는 특효제는 고가였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하루는 그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베트남에 가면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약재가 많이 있어요.”
내가 그를 보며 물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어요? 무슨 약재가 좋다는 거죠?”
“침향이나 물 도마뱀 등 암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재가 많아요. 아는 분 몇 명이 그쪽에서 약재를 구해서 암을 완치했어요. 내가 암이 낫는 것을 직접 봤어요.”
그가 진지하게 그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머리에 불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찾던 것이 베트남에 있다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었다.
빨리빨리 본능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미지의 거리감이 한순간에 좁혀졌다.
베트남 약재에 단단히 필에 꽂혔다. 특효의 약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내게는 그 한마디가 엄청난 자극제였던 것이다. 앞뒤를 잴 것 없이 비행기티켓을 끊고 생전 처음으로 베트남 여행을 떠났다.
오토바이 행렬과 느림보 택시
호찌민 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바깥 풍경을 보며 느낀 소감은 시골스러움이었다. 말레이시아의 첫 느낌과 딴 판이었다. 맨 처음 말레이시아에서 첫발을 내 디딜 때는 기대가 없었다. 당시 그곳은 후진국스러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도시 이미지가 뚜렷하게 느껴져서 놀랬었다. 하지만 베트남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한국에서 여행을 한 것이 아니라, 말레이시아에서 살다가 간 여행이라서 그런지도 몰랐다. 도시가 지저분하고 사람들은 70년 대 후반 시골 사람 같은 느낌을 주었다.
거리에는 끝없이 오토바이 행렬이 길을 막고 있었다. 택시는 나무늘보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말레이시아에도 오토바이는 있었지만 베트남과는 달랐다.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아예 길을 장악한 것 같았다.
호텔에 도착해서 벤탄 시장 근처를 돌아도 마찬가지였다. 뭔지 모를 지저분함과 무질서가 느껴졌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목적은 특별한 약재였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첫날은 휴식을 취하고 그다음 날 약재를 찾아 나서려니 막막했다. 아무 연고도 없고 영어와 북경어도 통하지 않는 혹성에 온 느낌이었다. 당시엔 정말 그랬다. 시내 중심가 식당이나 금융가, 외국인 거리를 제외하곤 영어나 북경어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끔씩 보이는 한국인한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인터넷 리서치로 겨우 5군의 약재시장으로 가보았다. 좁고 구불구불한 거리에 약재상들이 끝도 없이 많았다. 그곳도 마찬가지로 언어불통지역이었다. 영어도 북경어도 통하지 않았다. 4명의 한국인 가족이 좁은 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곳에서 약재를 찾는 곳은 포기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한국인들의 거주지역인 공항 근처로 갔다. 그곳은 의외로 한국인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물어볼 곳이 없었다. 길을 물어보러 가듯 슈퍼마켓 몇 군데를 들렀다.
특별한 효능이 있는 베트남 약재를 찾아서
“여기 베트남 약재 침향을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몇 군데 물어도 정확히 아는 분이 없었다. 그런데 한 군데 슈퍼마켓 사장님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침향은 가격차도 많이 나지만 가짜가 많아서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어 다시 물었다.
“그러시면 물 도마뱀은 어디서 구할 수 있나요?”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한테 찾는 질문을 받았지만 그런 것을 찾는 것은 처음이네요.”
“베트남 약재 중에서 효과가 좋은 것을 찾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내가 진지하게 말했다. 그제 서야 그가 이해가 된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 그건 예전에는 구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금지가 되어 시골로 가야 구할 수 있습니다. 호찌민에서 구하기는 힘듭니다. 불법이라서 몰래 유통한다고 하더군요. 효과 좋은 약재는 아마 베트남 사람에게 물어야 알 겁니다. 한국인이 잘 알기는 힘들지요.”
그는 고개를 살짝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럴 것 같기도 했다. 효과 좋은 베트남 약재를 보통 사람들이 알기는 힘들다. 외국에 산다고 해도 그 나라 약재를 찾으려면 발품을 팔아 이곳저곳 열심히 뒤져야 한다.
보통 사람들이 특효의 약재에 대해선 알 턱이 없었다. 베트남 약재를 찾아 나선 여정은 그곳에서 끝이 났다. 한국인 타운을 벗어나면 언어불통 지역이어서 더 이상 찾아볼 수도 없었다. 첫 번째 베트남 여행의 목적은 그렇게 싱겁게 되었다. 뭔가 있을 것 같지만 찾을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와 다른 푸근한 베트남에 대한 첫인상은 좋았다. 일단 말레이시아와 달리 무슬림 여성이 뒤집어쓴 보자기 히잡이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무슬림 남자들의 검은 모자와 수염들도 안 보여서 편안했다.
그것들이 나와는 무관하지만 무슬림식의 속박과 형식들이 싫었다. 베트남은 그런 색채가 없는 시골스러움이 있어 좋았다. 음식은 보기보단 맛이 있었다. 베트남의 유명한 반미와 쌀국수를 먹기도 하고 분짜 하노이도 맛을 보았다.
첫 번 째 약재 여행은 성과가 없었다. 마치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것처럼 힘든 것이 특별한 약재였다. 그러나 이 첫 번째 베트남 여행은 아주 조짐이 좋은 시작이었다. 이 첫 번째 여행이 장편 소설 같은 베트남 여행과 살이의 출발점이 될 줄 그때까지는 까마득히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