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에서 서쪽으로 혹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수시로 바뀌는 강물의 흐름
“왜 강물이 동쪽으로 흘렀다가 때론 서쪽으로 흐르기도 하나요?”
사이공 강의 흐름이 이상해서 주변의 한국인에게 한 질문이다.
“그럴 리가요? 왜 강물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며 흐르겠어요.”
근처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그렇게 말했다. 사이공 강물의 흐름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호찌민에 정착하고 강가에 자주 나가서 길게 펼쳐진 강물의 흐름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있었다. 강물의 흐름이 동과 서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처음엔 내 눈과 기억을 의심했다.
‘내가 잘못 보았거나 기억하고 있나?’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날 가서 보면 영락없이 강물의 흐름이 바뀌어 있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국의 청계천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역류하지만 그건 엄청난 전기세를 들여 펌프로 끌어올린 물이다. 하지만 사이공 강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인공적으로 강물의 흐름을 조절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강물의 흐름이 동과 서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것일까?
몇 명의 한국인에게 물어봤지만 대부분은 그럴 수가 없다거나 관심이 없거나 잘 몰랐다.
그러나 명확한 것은 사이공 강이 때론 동쪽으로 때론 서쪽으로 흐른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양방향 강물의 흐름이었다. 이런 현상은 ‘블랙스완’ 이론과 유사했다.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일들이 실제로 나타나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백조라고 하면 흰 새라는 뜻이다. 그런데 1697년 네덜란드 탐험가 윌리엄 드 블라밍(Willem de Vlamingh)이 서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검은 백조를 발견한 것이다. 검은 백조는 사실 흑조라고 해야 맞다. 상식을 깨는 이런 현상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용어가 ‘블랙스완’ 이론이다.
사이공 강의 역류도 전혀 상상하지 않았던 현상이다. 그것을 실제 눈앞에서 확인했을 때는 신기하고도 놀라웠다. 엄청나게 기나긴 사이공 강이 그럴 것이라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사이공 강이 동쪽으로 흘렀다가 서쪽으로 흘렀다가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해발이 낮은 지형으로 인해 바닷가의 해수간만의 차이 때문이었다.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아 강 전체의 흐름이 수시로 바뀌어지는 것이었다.
하루에 몇 번씩이나 시간차이를 두고 강 흐름이 바뀌었다.
나는 그것이 신기해서 강가에 나가 멍을 때리는 것을 즐겼다. 일단 강물의 흐름이 동쪽인지 서쪽인지를 확인하고 그 방향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사이공 강의 길이는 무려 225킬로미터이다. 캄보디디아의 남동쪽에서 발원하여 베트남 남부를 거쳐 남중국해로 흐른다. 또 사이공 강의 수심은 깊어서 수로로 배가 드나드는 항구가 발달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양방향 강 흐름이 특이하고 크고 작은 배들이 다니는 풍경은 아름답다.
물의 도시 사이공 강의 밤과 낮
베트남은 물이 풍부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 호수도 많고 끝도 없이 강이 연결되어 있다.
사이공은 작은 하천으로 연결된 지역이 많다. 특이하게 집에서 낚시 대를 드리우고 있는 사람도 있다. 베트남은 특이하게 물의 도시가 많고 바닷물이 넘치는 해안선의 길이가 3,444킬로미터이다.
특히 호찌민의 해발이 낮은 타우디엔의 경우, 비가 많이 오면 거리가 침수된다. 차들이 못 다닐 정도로 강물이 범람하여 거리는 하천이 되고 사람이 걸어다닐 수 없게 되는 정도가 된다.
베트남의 중부지방 후에의 경우는 더욱 극심하다. 내륙인데도 홍수 때문에 집집마다 작은 보트를 매달아 놓고 있다. 심한 홍수가 나면 집이 물에 잠기기 때문에 이웃 간의 교류를 위해 보트를 타고 다녀야 한다. 후에의 경우엔 장마철엔 2달 가까이 모든 업무가 스톱이 된다고 한다.
베트남이 물의 나라인 것은 언어에서도 표현된다. 베트남어로 나라를 너억 <Nước)으로 물의 뜻과 같다. 민물과 바닷물로 물의 나라가 베트남인 것이다.
비행기에서 사이공을 내려다보면 사이공 강이 엄청난 길이의 아나콘도처럼 도시를 감싸고 있다. 강과 천들이 많고 지류가 실처럼 얽혀있다. 수많은 지류가 있고 사이공 강물을 사이에 두고 아름다운 식당과 카페, 호텔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이공 강가에 서 있으면 각종 크루즈선들, 요트들, 작은 어선들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이공에는 산이 없다. 산을 몹씨 사랑하는 나에게 그 점은 못내 아쉽다. 사방을 둘러봐도 끝없는 평지 뿐이며 한국에는 흔한 바위가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산을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강에서 달랜다.
처음 찾은 사이공 강의 낮은 한산했다.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인지 강변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강가에 강태공들이 낚시를 하는 모습은 심심치 않게 보였다. 나는 처음에는 그들이 취미로 낚시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생계형 낚시꾼들이었다. 사이공 강에서 고기를 잡아서 돈벌이를 하는 낚시 족이었던 것이다.
가끔씩은 투망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작은 쪽배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도 보이곤 했다.
한국의 한강변과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낮에 운동을 하거나 강가를 거니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사이공 강변은 밤이 되면 풍경이 완전히 바뀐다.
거의 모든 강변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활기를 띤다. 사이공을 감싸고도는 강변 전체가 공원이 되고 데이터 코스가 된다. 청춘남녀들이 강의 여기저기에서 속삭이며 강을 바라보고 있다.
그뿐이 아니라, 낮과 달리 밤에는 강변 전체에 엄청난 수의 길거리카페가 생겨난다. 작은 의자를 강가에 놓고 누군가가 그쪽에 앉으면 음료수를 파는 것이다.
강변 카페는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낮의 피로를 강변의 바람에 날려버리듯 수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음료수를 마신다.
가끔씩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면 별다른 화젯거리는 없었다. 맛있는 음식에 대해 말하거나 유명한 장소에 대해 말하는 내용이 많다. 특이한 것은 그들은 타인과의 비교가 없다. 아시아 행복지수 1위, 세계 행복지수 3위는 그들의 단순한 생각이 만든 느낌들이다.
어지간한 일은 콩차오(아무런 일도 아니야) 의식으로 커버한다. 그들은 남의 집 숟가락 칼라에 관심이 없다.
금수저나 은수저, 흙수저 같은 용어도 없다. 우리 한의원의 간호사들을 보면 늘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가끔 왜 웃는지 궁금해서 물어봐도 대답이 한결같다.
“왜 웃는 거야, 무슨 좋을 일 있어?”
“그냥 좋아요. 콩사오(아무런 일도 없어요.)”
순박한 미소를 짓고 아무런 비교의식 없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다.
사이공 강변의 그 수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며 한바탕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특이한 풍경은 그들은 강변에 동그랗게 원을 지어 앉아서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땅바닥에 앉아 그들 방식의 회식을 하는 것 같았다. 신문지도 깔지 않고 그냥 맨바닥에 오랫동안 그렇게 앉아 있다.
사이공 강변을 따라 걸어가면 낮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카페들이 성업 중이다. 여기저기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아름다운 카페들도 꽤 많다. 특이한 것은 강변에는 모기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강변의 나무에 해먹을 걸치고 잠을 자는 사람들도 있다. 왜 강변에는 모기가 없을까?
강바람이 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물의 흐름이 양쪽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밤이 되면 수많은 사람이 몰리는 이유 중의 하나도 모기가 없다는 것도 있을 것이다.
나는 사이공에 정착하고 나서 자주 강변을 찾는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등을 보이지 않는 베트남 문화에 유일한 예외인 강물 바라보기
베트남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등을 절대 보이지 않는다.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매연 가득한 길거리 커피숖에서도 그들은 거리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일제히 거리를 보고 있다. 커피 숍이나 식당에 앉아 있는 베트남인들은 모두가 거리 쪽을 바라보고 있다. 연인 혹은 부부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다. 사로 마주 보지 않고 같은 방향의 거리를 보고 있다.
사이공에 정착하고 얼마 안 있어 길거리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실 때였다.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일제히 거리 방향으로 앉아 있었다. 아예 거리에서 등을 지는 방향엔 의자가 없었다.
나는 의자를 옮겨 거리와 등지고 앉았다. 그러자 웨이터가 와서 말했다.
“죄송하지만 거리 쪽으로 방향을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일 방향으로만 앉아야 하는지를 물었다.
“왜 자리의 방향을 바꾸어야 하죠?”
웨이터가 웃으며 말했다.
“맞은편 사람이 불편하다고 해요.”
나는 하는 수 없이 자리 방향을 길거리로 향하게 해서 앉았다. 한국의 연인과 부부, 가족이 마주 보고 앉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인 문화였다. 그들은 왜 일제히 거리를 향해 앉을까?
나중에 베트남 지인한테 왜 그렇게 앉는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르며 경계를 위해 시야확보를 위해 그렇게 앉아요. 길거리를 향해 앉아야 위험을 빨리 감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존본능이죠.”
그들은 베트남 전쟁 당시 누가 적군이고 아군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항상 사람들을 경계해야 했다. 언제 폭탄이 터지고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시야확보는 필수였던 것이다.
실제 그들은 연인과 달콤한 밀어를 속삭일 때나 친한 친구와 진지한 대화를 할 때도 마주 보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나란히 밖을 쳐다보고 앉는다. 단지 이 생존본능에도 예외는 있다. 직접 전쟁을 겪었거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나이가 있는 세대는 철저히 시야 확보를 한다는 점이다. 본능적으로 그리 앉아야 심리적인 안정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 대해 전혀 모르는 20대 젊은이들은 마주 앉기도 한다.
그들은 시야확보를 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길거리 카페는 예외 없이 20대 젊은이들도 거리를 향해 앉는다.
나는 간호사한테 거리를 향해서 앉는 이유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녀는 깜짝 놀라며 당황해한다.
“글쎄요.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도 길거리를 향해서만 앉아요. 참 신기하네요.”
그것은 사회적 무의식의 작용으로 전승된 심리적 작용일 것이다. 이유를 모르면서도 길거리 방향으로만 앉는 것이다. 길거리를 등지고 앉는 또 다른 예외는 강변이다. 사이공 강은 시내 전체를 두루 감싸고돌기 때문에 길가 가까이에 위치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 길가 근처의 강변에 있는 사람들은 등을 보이고 앉는다. 강을 보기 위해서 길거리를 등지고 앉는 것이다. 유사시엔 강물로 뛰어들 수 있기 때문에 그럴까?
그것보다는 강물을 바라보기 위해서 일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도 특이한 점은 연인이나 친구 가족이 서로 마주 보지 않고 강물 쪽으로 나란히 앉아 있다는 점이다. 나중에 베트남인 호찌민대학 교수한테 나란히 앉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이 재미있었다.
“마주 보는 것보다 나란히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 좋은 것 아닌가요? 마주 보고 앉는 것보다 나란히 앉으면 얼굴에 침이나 음식물이 튀지 않아서 좋지요. 또 화가 나거나 진지한 대화를 할 때 얼굴을 보지 않아서 마음이 더 편할 수도 있지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다시 말했다.
“그러면 즐겁고 기쁜 대화를 하거나 뜨거운 감정이 있을 때는 그 얼굴을 보지 못하지 않나요?”
그가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럴 때는 고개를 돌려서 한참 동안 서로를 마주 보고 웃지요. 단지 그렇게 즐겁고 기쁘거나 뜨거운 감정이 그리 오래가지 않으니까, 잠깐잠깐씩 고개를 돌려 확인하면 되는 거지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나는 지금도 길거리를 걸어갈 때는 카페나 식당에 앉아 있는 베트남 사람들을 살펴본다. 그들은 예외 없이 길거리를 향해 앉아 있다. 며칠 전 사이공 여행을 온 친구와 길거리를 걸어가며 물었다.
“저기 카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특이한 점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봐.”
그는 열심히 관찰하고 나서 말했다.
“별 다른 점이 없는데, 다만 왜 사람들이 저렇게 매연 가득한 길거리에 앉아 있는 거야.”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들 중에 단 한 명도 길거리에 등을 지고 앉은 사람이 없는 것 같지 않아. 다들 길거리를 향해 앉아 있잖아.”
그가 다시 보고 나서 말했다.
“정말 그러네, 신기하네, 모두가 길거리를 보고 있어. 자동차와 오토바이만 다니는 길거리에 뭐가 있다고 보고 있는 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
나는 왜 그런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재밌는 일이네. 참 특이한 문화야.”
그들은 지금도 무의식적인 시야 확보를 하며 생존본능에 충실하게 순응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오래 사이공에 살아도 그들처럼 매연 가득한 길거리를 향해 앉지는 않을 것이다. 또 밤에 사이공 강에 가더라도 강만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사이공 강의 밤은 강물도 좋지만 강을 등지고 보는 하늘의 별이 참으로 아름답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강을 등지고 밤하늘을 보면 시야가 참 밝아진다. 아름다운 사이공 강의 물결과 밤하늘의 별을 다 즐기는 방법이 강물 바라보기와 강을 등지고 별 바라보기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