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온도 13. 신을 벗은 자리를 알면 마음의 행방을 알 수 있어요.
공원 한가운데로 되돌아오다가 갑자기 그녀가 멈췄다.
그녀는 곰보 배추 같이 생긴 푸성귀를 유심히 살폈다. 그중에서 깨끗한 잎사귀를 따서 입에 물었다. 진성이 그녀를 보자 찡긋 하고 웃으며 말했다.
“오늘 당장 섬으로 가요.”
“갑자기 오늘???”
“선생님은 갑자기인 줄 몰라도 저는 6개월을 내내 기다렸어요.”
“내일 예약환자도 많은데 어떻게 해요.”
그녀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세요. 저는 저녁까지 그곳에 있을 테니까, 저녁에 뱃길이 끊어지기 전에 다시 오시면 돼요.”
진성은 갑작스러운 제안에 어안이 벙벙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기습공격을 받은 느낌이었다.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그녀의 2차 공격이 시작됐다.
“내일부터 저는 월차와 연차를 연속해서 사용할 거예요. 제가 일하는 은행에서 맡은 재무회계는 만만치 않아요. 제가 빠지면 곤란하겠지만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선생님은 출근하셨다가 다시 오시는 거예요. 샐러리맨보다는 오너가 유리한 조건 아닌가요? “
“예, 그렇긴 하죠..”
진성은 툭 던지듯 말했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 같기도 했다. 평소의 자신한테서 발견하지 못한 일탈의 순간이었다.
“오늘은 섬에서 신을 벗을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인가요?”
“신을 벗는다는 것은 내 마음과 의지를 일치시킨다는 뜻이에요. 저는 신발을 아주 신중하게 벗거나 신어요. 예전에 지게 짝대기를 놓은 자리가 정착하는 자리라는 의미가 있었다고 해요. 지금은 지게가 없으니까 신발을 벗는 자리가 마음을 정하는 중요한 자리죠.”
“신발을 벗는다는 것에 그런 의미가 있나요?”
“그래요. 선생님은 하루 중 어디서 신발을 벗나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신발을 정성스럽게 벗은 자리가 몇 군데 있나요? 가장 기억에 남는 신발 벗은 자리는 어딘가요?”
그녀의 질문은 빗발치는 화살처럼 날아오는 것 같았다.
진성은 그녀가 다시 다른 질문을 하기 전에 답변을 했다.
“하루 중 신발 벗는 곳은 사는 집뿐이죠. 정성스럽게 신발 벗은 자리는 부모님 집 정도죠. 가장 기억에 남는 신발 벗는 자리는 모르겠어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신을 벗은 자리를 알면 마음의 행방을 알 수 있어요.”
“무슨 뜻이죠?”
“아무 곳에나 신을 벗지는 않잖아요. 아무 곳에 신발 벗고 잠자는 사람은 없듯, 마음이 결정해야 신발을 벗어요. 마음의 행방을 알 수 있다는 뜻이죠.”
“아, 그런 심오한 뜻이??”
진성은 입술을 다물고 가볍게 웃었다.
엉뚱한 계통철학이지만 어딘지 일리가 있었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오늘 섬에 가서 정성스럽게 신발 벗은 자리가 되도록 해요. 사람은 신발을 벗을 때 편하고 휴식하는 느낌과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지잖아요.”
진성은 그제 서야 이해가 될 듯 말듯해서 싱긋 웃어 보였다.
“지금 시간 11시 11분이에요. 선생님은 준비하시고 오후 1시에 편의점 앞에서 봬요. 자가용을 타고 가면 섬으로 가는 배에 싣고 갈 수 있다고 했어요.”
그녀는 그 말을 하고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식사하지 마시고 오세요. 간단히 먹 거리를 준비해 갈게요. 우리 가을날 기러기처럼 떠나요. 기러기는 암컷과 수컷이 나란히 날아간다고 하죠. 어디론가 떠나는 것은 참 멋진 일이죠.”
그녀는 빠르게 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진성은 그녀가 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결정에 어안이 벙벙했다. 마음의 향방은 바로 정해지지 않았다. '신 벗는 자리에 마음의 향방이 정해진다고?'
진성은 혼잣말 하듯 그녀가 한 말을 되새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