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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헌 Nov 18. 2024

14. 가깝고도 아주 머나먼 섬

열정의 온도 14. 수컷 늑대는 평생 한 마리 늑대만 사랑한다고 해요.

진성이 차를 몰고 편의점 근처까지 갔을 때 그녀가 보였다.

그녀는 플라스틱 봉투를 들고 작은 여행용 가방을 옆에 두고 서 있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모습이 작고 앙증맞은 소녀 같았다. 

진성은 차를 근처에 주차하고 짐을 트렁크에 실었다. 그녀의 표정은 밝았지만 별 말이 없었다. 긴장한 듯이 보였다. 약간 초조한 듯하기도 했고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호랑이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어요.”

진성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아. 그러네요. 제가 떡 준비해서 드릴 테니, 잡아먹지 말아 주세요.”     

그녀는 맞장구를 치고 종이봉지를 내어 햄버거를 내밀었다. 

“운전 중이라서 못 먹어요.”

“제가 조금씩 먹여 드리고 커피도 스트로에 꽂아서 조금씩 마시게 할게요.”

그녀가 약간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요?”

“저는 운전 대신에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녀는 수줍은 듯 햄버거를 먹이고 커피를 마시게 했다. 진성은 왠지 편안한 느낌이었다. 


누군가가 내입에 먹거리를 넣어준 것이 언제였던가?

진성은 그녀가 주는 햄버거를 둥지속 새끼새처럼 냉큼 잘 받아먹었다. 커피도 조금씩 빨아 먹었다. 너무 맛있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진성을 그녀는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소설가 김훈은 그의 수필에서 ‘자식 입에 음식이 들어가는 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내입에 음식을 밀어 넣으며 무엇을 느꼈을까?     

"이제 섬으로 가는 거예요."

그녀가 탄성을 지르듯 들떤 목소리로 말했다. 


진성은 선착장에서 배에 자동차를 싣고 간판으로 올라왔다.

배를 따라 갈매기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선객들이 먹거리를 던져주는 것이 보였다.

바다와 갈매기가 한 폭의 그림처럼 보였다. 그녀는 새우깡을 꺼내어 갈매기 먹이로 던져 주고 있었다. 갈매기 한 마리가 꽤 가까이까지 날아들었다. 

그녀는 손바닥에 새우깡을 놓고 갈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점차 그녀의 손바닥 가까이 날개 짓을 퍼덕였다. 진성이 채 위험하다는 말을 꺼내기 전에 갈매기 한 마리가 새우깡을 낚아채갔다.  그녀는 두손을 가지런히 모아 기도하듯 가슴에 붙이고 말했다.

“제 작은 소망 하나가 이뤄졌어요. 손바닥의 새우깡을 갈매기가 가져가면 소망이 이뤄질 거라고 기도했거든요. 그 소망이 이뤄지면 오늘처럼 햄버거와 커피를 먹여드릴게요.”

진성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녀의 정신에는 어린애와 성숙한 여인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유쾌하게 흘렀다. 진성이 배에서 차를 꺼내 섬으로 나오자 가깝고도 아주 머나먼 육지가 보였다. 배로 20분 남짓 걸리지만 이제 뱃길이 끊기면 육지로 갈 수 없게 된 것이었다. 

뭍에서 아주 먼 섬으로 흘러들어온 것같았다.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이젠 돌아갈 수 없어요. 우린 섬에 유배된 거예요.”

“누가 무서울까요? 밤에 늑대의 울음소리를 듣고 소스라치게 놀라지는 말아요.”

진성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 순간, 도시탈출을 느꼈다. 도시생활의 팽팽한 긴장의 끈이 느슷해지고 나사가 풀어지고 있었다. 전투하듯 살던 시간들을 잊고 심신이 휴식모드로 전환되고 있었다.


그녀는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늑대는 인간처럼 동족식인풍습이 없어요. 오히려 수컷 늑대는 엄청나게 패밀리 의식이 강하다고 해요. 수컷 늑대는 사냥을 하면 암컷과 새끼 늑대가 먼저 먹도록 주위를 지킨다고 해요. 그리고 마지막에 먹는대요. 수컷 늑대는 평생 한 마리 늑대만 사랑한다고 해요. 새끼를 놓고 나서 암컷 늑대가 죽으면 수컷은 혼자서 다 키운다고 하죠. 새끼늑대가 다 성장하면 암컷 늑대가 죽은 곳에서 굶어서 죽는다고 해요. 그쯤 되면 로맨틱하지 않나요? 인간보다 훨씬 더 믿음직스럽죠.”

진성은 다시 너털웃음을 떠 터뜨렸다. 

그녀는 얕은 듯 깊은 의식을 지닌 알쏭달쏭한 캐릭터였다. 소녀와 숙녀, 때로는 경륜이 지긋한 여인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진성은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어딘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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