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온도 27. 함몰된 유두는 숲속에 핀 꽃잎과 연결되어 있어.
그녀는 차분했으며 온화한 분위기를 지녔다.
달과 6펜스처럼 달의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6펜스의 현실엔 철저했다. 한번 시작한 일은 집요했으나 관심이 없는 분야는 젬뱅이였다. 극과 극이 맞닿아 아슬아슬하게 조화를 이루는 상태였다. 때로는 푼수 같기도 했다. 그러나 느긋하면서도 긴장감이 있었다.
약간 어두운 표정을 드리우고 슬픔의 정서를 지녔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사오정처럼 엉뚱했지만 저팔계처럼 밀고 가는 끈기가 있었다.
한번 결정을 하면 곧바로 실행했고 아니면 바로 멈췄다. 자신의 상처는 길고양이처럼 스스로 핥아가며 치유했고 남의 아픔은 쉽게 감정이입을 했다.
그녀의 다양한 스펙트럼은 함께 시간을 나누지 않고는 드러나지 않았다. 조용하게 구석진 곳에서 피어나는 어둠을 틈타 피어나는 달맞이꽃 같았다.
그러나 때론 수선화처럼 화사했고 잘 웃기도 했다.
진성은 그녀의 몸에 있는 악보를 읽으면 그 모든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만큼 신기하며 은밀했다. 세상에 마지막 남은 오색찬란한 보석 같았다.
때론 다이아몬드처럼 빛났고 흑진주처럼 빛을 속으로 갈무렸다.
가끔은 애메랄드처럼 상큼한 빛을 발했다. 또 호박석처럼 오랜 퇴적과 화석화되는 과정을 거친 원형의 질감이 있었다. 그녀를 눈앞에서 만지고 안지 않으면 세상에 처음 출현한 어느 별의 외계인 같기도 했다.
세상에 실재하지 않는 존재감 같은 의심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녀의 눈빛 속으로 들어가면 환영의 한 조각에 빠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그녀가 지닌 내면의 지도와 원형의 질감은 특별했다.
그녀의 나직한 음성과 엉뚱한 언어들이 아우러져 그처럼 감미로운 입술의 감촉과 혀의 질감, 몸의 곡선과 어우러져 있었다.
진성은 그녀를 오랫동안 간헐적으로 본 것과 며칠을 만난 것을 생각했다.
며칠을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진성은 그녀의 심각하면서도 가벼운 의식과 영혼의 무게를 견디며 정신적인 커튼으로 가려진 그늘과 밝고 순수한 소녀의 모습, 그러면서도 현실적으로 억척스럽고 치밀한 생각과 끈질긴 기다림과 집요함이 마치 데칼코마니같이 여겨졌다.
따로따로 분리될 수 없으면서도 데칼코마니처럼 환상적인 무늬의 독특한 칼라로 제각기 빛나고 있었다. 제각기 다른 성질과 칼라가 한 존재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이 믿을 수 을 정도로 신비하였으며 비현실적이었다.
진성은 그녀의 원형을 찾아서 필름을 거꾸로 돌려보기도 했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어머니 손에 이끌려 온 여대생이었다. 생리통이 심한데도 부끄럼 때문에 수줍어하던 앳된 표정의 숙녀가 원형의 모습이었다. 그때 그녀는 순하면서도 약간 고집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침 치료를 대단히 두려워했다. 맞지 않으려고 도리질을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맞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 후 한참이나 뜸했지만 어느 날부턴가 혼자서 찾아왔다.
"허리가 아파서 왔어요."
그녀는 퉁명하게 증세를 말했다. 때로는 뒷목통증, 때로는 소화불량에 우울증까지 다양했다. 잊어버릴만하면 그녀는 다시 나타났다. 하지만 수많은 환자들 중의 한 명이었을 뿐이었다.
진성이 사적으로 그녀에 관심을 가지거나 여성으로 본 적도 없었다. 편의점 앞에서 섬에 대한 얘기를 할 때와 하기 전 그녀의 모습이 그랬다. 편의점 이전과 하얀 펜션 이후의 달라진 모습이 흑백사진처럼 선명하게 구분이 되었다.
그녀는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작은 소녀 같은 면이 있었다.
그 앳된 숙녀가 30대 후반의 숙녀가 될 때까지 수많은 바람과 먹구름, 천둥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무수한 불면의 밤도 있었을 것이며 작은 고통의 점들이 생의 곳곳에 놓인 것을 통과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에겐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었다. 함몰된 유두가 있는 것이었다. 진성이 맨 처음 그녀를 안았을 때 그녀는 가슴을 두 손으로 가렸다. 함몰 유두를 부끄러워했다. 진성이 너무나 그 함몰된 유두를 사랑하자 그녀가 변명하듯 말했다.
"목욕탕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요. 저는 내 몸의 유일한 콤플렉스에요. 왜 함몰된 유두를 좋아하시죠?"
진성은 진지하게 말했다.
“만 명에 한 명 있을까 말까 한 행운의 함몰유두이기 때문이야. 함몰된 유두는 숲속에 핀 꽃잎과 연결되어 있어. 그래서 꽃잎은 여의주를 머금고 있는 거야. 작고 동그란 그 여의주는 원하는 대로의 사랑을 완성시켜 주는 조화를 부리는 거야. 정말 대단한 조화를 부리는 여의주 꽃잎인 거야.”
그녀는 긍정도 부정도 않는 멍한 눈빛으로 진성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의 의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놀람이나 기쁨이 아닌 진공의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마치 4차원의 어느 시공을 초월한 공간에 그녀의 의식이 있는 것 같았다. 진성 역시 그녀를 멍하니 넋이 나간 듯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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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3일동안 쓴 것을 30회로 나눠 연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쓰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31회분으로 되어 있어 27회부터는 조금 길어집니다. 30회 이상은 연재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금 길어지더라도 널리 양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