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헌 Nov 27. 2024

25. 완전한 일탈과 텅 빈 상실감

열정의 온도 25. 세상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진성은 오전 진료를 마치고 급히 문을 닫았다.

직원들에게 갑작스러운 초상이 있다고 둘러댔다. 급히 조문객이 된 것이었다. 완전한 일탈이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일상을 스톱시키고 가야만 하는 자신의 마음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진성은 저녁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 섬으로 가야만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영문도 모르는 간호사들은 예약을 미루고 대기하는 사람들을 보냈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멀리서 온 환자들은 역정을 냈다. 

“갑작스럽게 진료를 중단하면 어떻게 해요.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가야 한단 말이오.”

진성은 그들에게 일일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들을 모두 보내고 예약을 모두 다른 날로 돌렸다. 그 과정이 끝나자 거의 2시가 되었다.


진성은 간호사들에게 말했다.

“이번 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문을 닫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봬요.”

“원장님, 갑작스러운 휴진이라서 걱정이 됩니다."

오래된 간호사가 말했다.

“나는 오픈 이래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어요. 이번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요. 이번 주 스케줄 정리하시고 다음 주 월요일에 봅시다.”

“예, 알겠습니다.”

좋아하는 간호사도 있었지만 오래된 간호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진성의 서두르는 표정과 불안정한 눈빛이 그렇게 비쳤던 것이다.     


진성은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듯 꽃다발과 케이크를 사서 섬으로 향했다.

오후 4시쯤 배를 타고 돌아오는 간판에서 진성은 눈이 부시게 푸른 하늘을 보았다.

수많은 갈매기 떼가 뱃가를 맴돌았다. 모든 것이 평화스러웠다. 세상은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진성은 콧노래를 불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전한 일탈의 기분을 만끽했다. 그녀 이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느낄 수가 없었다.  하얀 펜션에 도착해서 문을 노크했다.


진성은 당장이라도 굶주린 사자처럼 뛰어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다시 노크를 했지만 여전히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침묵이 감돌았다. 순간 진성은 불안해지며 두려움이 엄습했다. 

지난번처럼 증발했을 수도 있는 그녀의 존재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큰 숨을 들이키고 나서 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갑자기 개기일식이 찾아온 것처럼 세상이 깜깜해졌다. 

진성은 전화기를 꺼내 급히 그녀를 호출했다. 그러나 그녀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진성은 다리의 힘이 순식간에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없다는 사실에 공황발작이 난 것처럼 머리가 텅 비어갔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관리실에 찾아갔다.

“201호 렌트한 사람입니다. 오늘 렌트 연장이 된 것 맞아요?

그는 예약을 확인하고 말했다.

“예약이 연장되어 있네요. 그곳에 사람이 없나요?”

“예, 사람이 없습니다.”

어디 잠시 바닷가 산책이라도 나간 것 같습니다. 기다려 보세요. “

진성은 갑자기 우주의 미아가 된 것 같은 텅 빈 상실감을 느꼈다. 

만리장성이 무너지는 굉음이 귓가를 때리는 것 같았다. 진성은 관리실을 나와서 가까운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머리가 쭈삣서는 전율이 온몸을 휘감았다. 편의점 앞에서 갑자기 증발했던 그녀의 존재가 다시 떠올랐다. 그녀가 없는 세상은 지옥이었다. 진성은 그녀의 존재가 자신의 모든 것을 함몰시킬 수 있음을 느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