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온도 24. 온몸이 다 불타서 재가 되더라도 곁에 있을 거예요.
일요일 오후부터 화요일 새벽까지, 그들은 함께 섬에 머물렀다.
진성은 그녀의 몸에 분포된 음표를 모두 파악했다. 귓불과 목 옆과 뒷목의 제비초리가 있는 부분, 겨드랑이에서 가슴으로 오는 낮은 언덕에서, 젖꼭지와 연결된 허벅지 안쪽과 무릎 사이의 사타구니 깊은 곳까지. 진성은 그녀의 몸에 있는 악보를 읽고 음표를 하나하나 느끼며 건반을 두드리듯 그녀를 터치했다.
그녀는 진성이 연주를 하면 몸을 웅크리거나 휘어지듯 젖혔다.
온몸에 코드가 연결되어 있고 예민하게 음률을 토해내듯 소리를 냈다.
그녀는 생각보다 섬세했으며 여리고 순수한 일면을 지니고 있었다. 뻘 속에 감춰진 진주조개처럼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간혹 그녀의 내면을 꺼내면 반짝반짝 진주처럼 빛났다.
또 그녀는 숨겨진 아름다움이 있었고 때론 아마존의 여전사처럼 집요하고 강인한 면도 있었다.
그녀는 점차 명품 악기로 다듬어지고 있었다. 진성의 연주가 시작되면 그녀는 감각과 음률의 세계로 내려가며 수없는 극치의 계곡을 오르락내리락했다.
그들에게 시간은 3차원의 현실만 가리키고 있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시공은 경계가 없고 흐름도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언제나 현실적 감각이 돌아올 때만 인식이 되었다. 그녀는 진성이 악기를 연주하면 끝까지, 완벽하게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함께 했으며 그 흐름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아뜩한 그곳으로 상승되어 솜털 구름 위에 있어도 진성의 뿌리를 조여 오며 그의 눈을 바라보곤 했다.
"저는 선생님이 계시는 곳이면 그 어디든 함께 할 거예요. 온몸이 다 부서지고 불타올라서 하얗게 재가 되어도 계속 불타오를 거예요."
"그래도 경계선이 있을 거 아냐. 너무 지나치게 무리하지는 마."
그녀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다 타버려도 좋아요. 저를 남김없이 태워주세요. 온몸이 다 불타서 재가 되더라도 곁에 있을 거예요. 제 힘이 다하는 순간까지는 절대로 한치 떨어짐 없이 함께 할 거예요."
그녀는 언어가 아닌 육체적 감각의 신의를 보여주었다. 진성은 그녀를 통해 믿음을 갖게 되었으며 영원의 허물어진 경계를 넘나 들 수 있었다.
어느 순간 그녀는 더 이상 진성에게 현실을 묻지 않았다.
그녀는 현실적 생각이 떠오를 때 진성에게 물었다.
“샴쌍둥이는 서로 몸을 나누기 때문에 생사를 함께 한다고 해요. 만약 어느 한쪽이 죽어 가면 다른 한쪽은 건강하다고 해도 죽음을 준비한다고 하죠. 우리도 샴쌍둥이처럼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우린 서로의 몸을 각기 타고났지만 한 순간 정신이 샴쌍둥이처럼 되었어. 분리할 수가 없을 거야. 완전히 정신적 샴쌍둥이가 된 거야.”
그녀는 도리질을 했다.
“설마 그럴 수가 있겠어요.”
"모든 경험하기 이전의 생각들은 가설이거나 상상일 뿐이야. 미리 자기 방식대로 상상하고 나서 현실의 벽 앞에서 통곡하는 사람들이 많아. 생각과 이상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거야."
"정말 그럴 수 있나요?"
"나는 당신이 모르는 몸의 악기를 다 읽었고 연주했잖아. 완벽하게 당신을 통해 악기연주를 했고 정신적 샴쌍둥이의 연결을 느꼈어. 그것은 운명보다 강력한 숙명이야. 우리는 완벽하게 하나의 숙명체로 연결이 된 거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 절대적 필연의 세계야."
그녀는 진성의 말을 이해는 했지만 공감의 세계에 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어쩌면 정말 그럴 것 같기도 했지만 쉽사리 동의를 할 수는 없었다. 두려움이 일어났다.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한 예측은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녀는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하게 되었다.
진성이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고 느끼는 순간 열병 같은 그리움의 불길이 그녀를 태웠다. 온몸이 타들어가는 고통과 숨이 막히는 그리움이었다. 그녀는 급히 전화를 했다. 좀처럼 전화를 하지 않는 성격으로 비춰보면 긴박하기 그지없는 비상사태였다.
“어디세요. 내가 좀 이상해졌어요. 왜 선생님이 안 계신데, 이렇게 괴롭고 고통스럽죠?”
진성은 그녀에게 되물었다.
“정신적 샴쌍둥이가 될 수 없다고 말했잖아. 왜 괴롭고 고통스럽지?”
“미칠 틋히 그리워요. 지금 바로 돌아와 주세요. 아니면 같이 데리고 가요.”
“지금은 섬을 떠났어. 이미 늦었어. 저녁에 봐. 그러면 되잖아.”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며 하소연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배는 떠났다.
그녀는 잠시 섬의 유배된 느낌인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성이 떠난 자리에 시베리아 같은 찬 기운이 그녀를 감싸고돌았다. 그녀는 체온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몸이 떨리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의 존재감이 태산처럼 다가오면 전신이 떨려오는 전율이 일시에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