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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헌 Nov 25. 2024

22. 지상에서 외계로의 여행

열정의 온도 22. 그래요. 우리 메톤 행성 같은 고향별로 돌아가요.

두 사람은 어둠에 가라앉은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디에서 밀려오는지도 모를 파도 소리가 지척에서 들리는 듯했다. 진성은 그녀를 안은 팔을 풀지 않고 있다가 다시 번쩍 들어 침대 위로 올려놓았다.

그녀는 새끼 고양이가 발톱을 세워 떨어지지 않으려는 것처럼 진성을 잡았다. 

“이렇게 활화산 같은 열정의 온도는 처음이야. 나는 어떤 형식으로든 떨어지지 않을 거야. 우린 지상에서 외계로 함께 돌아가는 거야.”

“그래요. 우리 메톤 행성 같은 고향별로 돌아가요.”

진성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메톤 행성이라고 했어? 그 행성을 알아?”

“그래요. 메톤 행성에 대한 책을 읽었어요. 저는 외계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이 있어요.”

“맞아, 우리는 머나먼 은하계를 건너왔어. 그동안 초록 지구별에 살다가 악기연주를 통해 우주빅뱅을 경험했어. 그 초절정의 빅뱅을 통해 우리만의 외계로 순식간에 온 거야.”

그녀는 대답대신 눈을 깜짝거렸다. 


그녀의 눈은 막 태어난 새끼 고양이 눈처럼 맑고 신비로웠다. 

그들은 우연한 대화 속에서 동일한 심장의 주파수를 느꼈다. 그녀의 통찰력으로부터 외계에 이르기까지 비어있는 퍼즐이 맞춰지고 있었다. 진성은 말없이 그녀의 숲 속에 있는 꽃잎에 입맞춤을 했다.     

그는 눈을 감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저는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다는 표현 등은 믿지 않았어요. 소설가의 환상이거나 누군가의 거짓말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늘 저는 다른 세상으로 온 거죠.”

그녀는 자신의 사타구니에서 경험했던 과거의 나쁜 기억을 씻으려는 듯 말했다.

“저는 사랑의 행위가 안 되는 줄 알았어요. 두 번의 관계를 시도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들이 시도를 해도 삽입이 되지 않았어요. 이유는 몰랐지만 저는 타고난 석녀라고 생각했어요. 몸의 문이 닫혀서 아무도 진입할 수 없다고 여겼던 거죠. ”


진성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뇌가 잠기면 몸은 열리지 않아. 여체는 그런 뇌잠김의 신비가 있어. 남자는 씨앗이고 여자는 밭이라는 말이 있어. 밭은 생산을 의미하며 가꾸지 않으면 씨를 받지 않아. 그 원리로 보면 여체는 아무 씨앗이나 받아들이지 않는 무의식 차단장치가 있어. 설사 받아들인다고 해도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미세한 통증만 나타나는 거야.”

“그런 것 같아요. 산부인과 가서 진단도 했어요. 왜 몸이 열리지 않는지 정밀검사까지 했어요. 기능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 저는 마침내 결혼을 포기했고 평생 독신으로 살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왜 내게 그런 제의를 했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울림처럼 그렇게 말이 튀어나왔어요. 선생님은 제게 언제나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은 선상에서 친근하게 있었어요. 몸이 조금만 이상해도 선생님한테 달려갔죠. 늘 아플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었고 어렴풋한 친근감이 느껴졌어요. 그때 그 말을 한 것도 그런 느낌 때문이었죠. 계산 없이 말을 뱉어버린 것처럼 말하고 나서 좀 스스로 의아했어요. 하지지 수습할 수는 없었어요.”

“통찰력은 아니고??”

“통찰력이 없었다고는 말 못 해요.”


그녀는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겨우 말을 꺼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

“새로운 세계에서 정착할 준비를 해야지. 사람들은 저마다의 세계가 있어.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층층이 달라. 어떤 사람은 평생 정치나 종교에 빠져 살고 특정 사람은 어둠의 세계에 살기도 하잖아. 우리는 자기만의 세계를 선택하고 살잖아. 나는 우리가 외계의 어느 혹성에 떨어져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해.  외계로의 여행을 어떻게 생각해?”

그녀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아요. 저도 외계에 관심이 아주 많아요. 외계로의 여행을 함께 하면 무척 행복할 거예요."


그녀는 말하다 말고 잠시 생각하다 다시 말했다.

“외계도 좋지만 저는 당장 눈앞의 현실도 중요해요. 현실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싶은 거예요. 섬으로의 일탈은 순간이지만 현실은 끈질기게 삶이라는 족쇄로 우리를 끌어당길 거예요. 어떡해야 하죠?”

"우리의 삶은 지구촌에서 계속되겠지. 내가 말하는 건 정신적 세계야. 그 말은 나는 우리가 항상 현실 속에서 함께 살아가고 미래를 만들어갈 것이라는 거야. 정신적 세계의 토대 위에서 현실과 물질의 세계가 있는 거야.  우리는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해."

그녀는 한없이 진성의 눈빛을 바라보며 고개를 아주 천천히 끄덕였다.

진성은 그녀의 눈빛을 바라보며 천천히 그러나 힘차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까닭 모를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격정이나 감동이 아니었다. 단지 그 누군가와 함께 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현실화되면서 심장의 울림이 눈물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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