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온도 21. 이 한순간이 제 생을 갈라버렸어요.
그녀는 눈빛 아래로 이슬같이 맑고 영롱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진성은 은은한 짠맛과 단물이 섞인 그녀의 눈물을 핥으며 묵은 갈증을 달랬다. 그녀의 흑단 같은 머리카락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얼굴은 붉게 열정의 온도로 달아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축져진 능수버들처럼 몸이 흐느적거렸다.
진성은 한 손으로 목과 어깨를 감고 나머지 한 손은 그녀의 가슴을 움켜 잡았다. 마치 물에 뜨 내려가는 사람을 구조하는 사람처럼 그녀를 건져 올리고 있었다.
“너무 기쁘고 너무 슬퍼요. 무서워요. 이 한순간이 제 생을 갈라버렸어요.”
진성은 그 말보다 더 절박하게 큰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노를 젓고 있었다.
폭포수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안간힘을 다해 노를 저어 가는 느낌이었다.
“아!! 이럴 수가 없어. 내가 사라지고 있어.”
진성도 외마디 외침을 내질렀다.
“내가 항상 곁에 있을 거예요. 내가 당신이 되고 당신이 내가 될 거예요.”
그녀는 뜻 모를 말을 쏟아내고 있었다.
또 한 차례의 고고성 같은 긴 울음소리가 퍼졌다.
그녀는 적멸의 경지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블랙홀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호흡이나 현실에서 벗어났다. 진성도 그녀의 몸 안으로 들어간 상태로 녹아든 이 된 것 같았다. 적멸의 그 머나먼 공간 너머로 지구의 율려의 굉음이 들리는 듯했다.
율려는 시속 3천 킬로의 속도로 자전하며 도는 지구의 소리였다. 인간의 청각이 인지할 수 없는 초고음의 굉음인 율려가 귓가를 찢어놓을 듯했다.
진성의 감은 눈빛 속에는 깊은 밤 아스라한 은하계의 별빛들이 아롱거렸다.
그녀는 오르가즘의 그 언덕 너무 아뜩한 곳에 떨어져 다시 솟구쳐 올랐다. 그녀는 진성의 뿌리에서 영혼의 은빛 줄과 뒤엉켜 완전한 합체를 이루었다. 그녀는 상죽의 어깻죽지에 날개가 돋아나며 날갯짓하며 솟구쳐 올랐다. 진성은 그녀의 꽃잎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묻고 함께 날아올랐다.
“아. 구름 위로 둥둥 떠오르고 있어요.”
그녀는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혀 짧은 소리를 했다.
진성은 그녀와 완벽한 일체감을 공유했다.
잔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은하계의 빛무리를 보았고 지구의 율려소리를 들었다.
마침내, 너와 내가 사라진 적멸의 세계, 무중력의 상태에서 그들의 눈빛과 언어, 몸짓들이 모두 정지모드가 되었다. 일시적으로 시공이 사라진 세계에 빠져들어 그들은 죽은 듯이 침묵 속에 멈추어 있었다.
우주의 무중력상태였으며 너와 내가 해체되어 사라진 세계였다.
악기연주가 끝난 후 진성은 벽걸이 시계를 보았다.
그들은 3시간의 타임터널을 통과하여 현실로 나타났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진성의 짧은 머리를 몇 가닥 덮고 있었다. 진성은 그녀를 보았다.
그녀도 아무 말 없이 진성을 모두 집어삼키고도 남을 깊고 푸른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진성은 그녀를 번쩍 들어 바닷가가 보이는 창으로 갔다.
“우리는 다른 세상에 불시착했어. 지금까지 살아온 세계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된 거야. 우리 둘만을 위해 혹성탈출을 한 거야. 우리는 이 광대무변한 우주의 한 혹성에서 살아가게 될 거야.”
그녀는 밤바다에 비친 별빛들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진성을 보았다. 진성은 그녀를 안은 채 화석처럼 멈춘 채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애절하게 말했다.
“이제 나의 세계는 우리예요. 우리만의 존재하는 다른 세상이 된 거예요.”
그들은 다시는 떼어낼 수 없는 샴쌍둥이처럼 서로를 깊숙이 끌어안았다.
그 순간은 그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둘만의 퇴적층이었다.
수없이 많은 광년을 지나 초록별 지구에 이르러 비와 태풍, 흙과 나무들이 모여 축적된 절대공간이었다. 그들의 둘만의 세계에서 영원의 한 조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