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적멸 10.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의 운명적 좌표를 찾을 겁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의 운명적 좌표를 찾을 겁니다.
승문이 동굴에 온 지도 어언 반나절이 지났다.
시간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새벽녘에 잠시 산책을 나온 길이 이렇게 흘러온 것이었다. 동굴 안은 향기로웠고 어머니 뱃속처럼 편안했다. 멀리 보이는 첩첩 히 겹쳐진 산들이 산수화처럼 보였다. 승문은 아무 생각 없이 저 먼 산을 바라보았다.
잠시 밖에 나갔던 청산거사가 돌아와서 말했다.
“자네의 명상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한 나절이 지나갔네. 그런데 여기서는 허기가 느껴지거나 힘이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일세. 어떤가?”
“시간의 흐름을 전혀 못 느꼈습니다. 한나절이 지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습니다. 허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신기합니다.”
“그래도 식사는 해야지. 한번 내가 먹는 생식 먹어 볼 터인가?”
그는 주섬주섬 그릇을 챙겨 뭔가를 넣어 왔다.
“이것은 현미 쌀 불린 것일세. 오래 씹으면 구수하며 맛이 좋을 것일세. 여기 산으로 왔으면 화식은 끊고 생식하는 것이 좋을 것일세.”
“예, 산에서는 생식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인가요?”
“그렇다네. 산의 하루는 속세의 3일에 해당할 만큼 긴 시간이라네. 그만큼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네. 몸을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만들어야 산생활이 편해진다네.”
그는 작은 그릇에 불은 현미쌀을 담아서 승문에게 주었다. 그리고선 그가 먼저 한 숟갈 입에 넣고 천천히 씹어 먹었다. 아주 맛있듯 먹었다. 승문도 그를 따라 현미 쌀을 씹어 먹었다. 의외로 아주 고소하고 맛있었다. 그들은 진수성찬인양 정성스럽게 생식을 했다.
식사를 한 후에 그가 승문을 보며 말했다.
“자네는 산에 들어온 목적이 무엇인가?”
“저는 제가 찾고 있는 그 무엇을 알고자 해서 왔습니다. 분명히 간절히 찾고 있는데도 구체적인 실체나 대상, 주제가 안 떠오릅니다.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의 운명적 좌표를 찾을 겁니다. 그 무엇을 찾아야만 제 인생 좌표가 설정되지 않겠습니까?”
“그것 참 좋은 생각일세. 자네 운명의 좌표는 스스로가 찾아야 하는 것일세.”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을 한 권 찾아서 내놓으며 말했다.
“이 주역책을 한번 읽어보게나. 찾고 있는 해답이 있을 것이야.”
“여기에 어떤 내용이 있는가요? 제가 찾는 해답이 있을까요?”
“그건 자네가 찾기 나름이야. 자네의 과거의 기억이나 악몽, 행복한 기억들의 점들을 연결해 보게. 무엇을 해야 자네의 삶이 행복한지를 찾으면 될 것이 아닌가.”
승문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 물었다.
“그러한 점들을 모으면 운명의 좌표를 알 수 있나요?”
“당연하지. 운명은 우리 삶의 작고 큰 점들이 찍혀서 만들어지는 좌표일세. 자네가 살아오며 큰 충격이나 영향을 받은 사건들은 하나의 암시고 신호인 거지.”
그의 말은 논리적이고 실제적이었다. 옛날 도사들이 말하는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
승문은 그러한 말이 오히려 위안이 되었다. 이상에 치우치거나 현실에 매몰되지 않는 그런 명쾌한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