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적멸 11.누군가가 감시카메라처럼 지켜보는 것은 유쾌하지 않아요.
승문은 오후가 되어야 청룡동굴을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는 첩첩이 둘러싼 산맥들을 바라보았다. 산등성이와 산꼭대기로 이어진 산맥의 숨결이 느껴졌다. 수많은 나무들이 우뚝 서 있었다. 작은 수풀과 칡의 넝쿨이 감겨 있는 풍경이 조화로웠다. 살아있는 작은 생명체 하나까지 모두 소중하게 여겨졌다.
도시생활과는 너무나 다른 삶이 실감되었다.
어제부터 오늘 오후까지 단 하루가 흘렀다. 하지만 기억들이 까마득했다.
문득 우혜경이 떠올랐다.
산속으로 오며 봉인이라도 해 둔 듯한 이름이었다. 왜 이런 일이 있을까?
산속의 삶이 도시와는 전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과 이틀 전만 해도 그녀와 몸을 섞었다. 그녀는 못내 이별을 아쉬워했다.
승문 역시 내심으로는 아팠다. 그런데 단 하루 만에 낡은 사진첩의 인물처럼 된 것이었다.
승문은 곰곰이 그녀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가만히 있으면 어딘지 어둡고 쓸쓸해 보였다. 횡단보도 앞에서는 불안한 눈빛을 굴렸다. 심각한 사고를 당한 기억이 있는 듯한 표정을 했다.
한 번은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머리칼을 풀고 검은 핸드백을 손에 든 채 불안하게 좌우를 살폈다.
녹색신호등으로 바뀔 때 나는 그녀를 향해 걸었다.
그녀는 무심코 걷다가 나를 보고 소리치듯 말했다.
“나를 향해 오는 거예요.”
“그래요. 건너편에서부터 유심히 보았어요.”
“왜죠? 누군가가 감시카메라처럼 지켜보는 것은 유쾌하지 않아요.”
“왜인지 알고 싶으면 설명해 드리죠.”
나는 횡단보도 근처에 있는 전통카페 알프스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그녀는 들어가서 큰 알프스산 벽화가 있는 쪽에 앉으면서 말했다.
“전통카페가 알프스라니, 참 안 어울려요.”
“이렇게 멋진 알프스산 벽화가 있어 그렇게 지은 것 같은데요.”
그녀는 유심히 그림을 보며 말했다.
“맞는 것 같아요. 재밌는 카페네요. 그런데 왜 저를 그리 살폈는지 말해주세요.”
“그 이유는 그냥 눈이 갔어요. 맨 처음 은행에서 처음 뵈었을 때부터 쭉 그랬어요.”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왜 강승문 씨는 오직 제 창구만 이용하는지 그 점도 궁금했어요.”
승문은 은행창구를 이용할 때는 우혜경의 창구만 이용했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죠?”
“처음은 우연의 일치인가 했어요. 그다음부터 유심히 살펴보고 알았죠. 왜 그랬어요.”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어요. 오늘 횡단보도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런 점이 이상한가요?”
그녀는 궁금한 눈빛으로 승문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승문은 그녀의 눈빛에서 불꽃을 보았다. 미세하지만 확실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