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적멸 13. 자네는 시간의 벽을 부수고 그 안으로 들어간 거야.
다음날 새벽에 승문은 청산거사의 동굴로 갔다.
매일 그곳에 가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뚜렷한 일은 없지만 그곳이 좋았다. 벼랑 사이의 위험한 동굴이긴 했지만 동굴 안은 아늑했다.
금닭이 알을 품은 것처럼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금닭이 알을 품는다는 것은 알을 깨고 나온다는 의미가 있다. 새로운 생명이나 관념 등이 알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온다는 뜻이다.
승문에게 있어 그것은 새로운 출발이거나 운명이었다.
그토록 찾고 싶었던 그 무엇에 대한 해답이기도 했다.
“자네도 여기에 앉아 좌정하시게”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그가 좌정한 채로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승문은 그가 놓은 방석에 앉아 좌정했다.
고요함 가운데 기울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청룡동굴과는 확연히 다른 기에너지가 감지되었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의 동굴인데도 불구하고 느낌이 사뭇 달랐다. 승문은 좌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몰입의 상태에 도달했다.
세상사가 일시에 사라지고 오직 자의식만 남겨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치들이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이런저런 관념들도 하나씩 옷을 벗고 있었다.
아무런 거추장스러운 의식 없이 오직 자아를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한 의식들도 점차 가물거리고 어느 듯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이제 잠시 눈을 뜨시게”
청산거사가 승문의 머리 백회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의 손은 마치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서 순식간에 깨어났다. 아마도 그가 손을 얹지 않았다면 승문은 그의 말을 못 들었을 것이었다. 그만큼 깊은 몰입의 상태로 들어갔다.
그가 다시 말했다.
“자네가 좌정한 지 6시간이 지났네. 놀라운 일이야. 오랫동안 참선을 했겠지만 이렇게 시간이 흘러간 적은 처음이지 않나? 자네는 시간의 벽을 부수고 그 안으로 들어간 거야.”
“정말 그렇게 시간이 흘렀나요? 저는 길어도 2시간이나 3시간은 했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좌정을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바깥을 보게나. 이미 해가 중천으로 떠가고 있지 않나.”
실제로 대낮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새벽녘에 와서 낮이 될 때까지 있었던 것이다.
시간의 흐름을 왜 못 느꼈을까?
승문은 골똘히 생각을 했다.
“왜 사람들이 입산수도를 하겠는가? 그 정도의 기운이 있기 때문일세.”
“속세와 산의 기운이 그렇게 차이가 나는가요?”
“당연하지. 여기 산의 기운으로 공부를 하면 속세에서 하는 것보다 10배 이상 효과가 있다네. 명상을 해도 엄청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거야.”
승문은 그제서야 전혀 다른 느낌의 실체를 확인한 것 같았다.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