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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헌 Dec 10. 2024

14. 타고난 천의성과 의도의 길

존재와 적멸 14. 현실의 시간대 그 너머의  데자뷔가 느껴집니다.

승문은 벌떡 일어나서 청산거사에게 큰 절을 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경외심이 일어나며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까마득한 기억 저편에서부터 그를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스승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네의 현재의식이 무의식의 신호를 받은가 보네. 자네의 무의식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일세. 내가 자네를 여기로 부르는 소리도 다 들었을 것이야.

그가 웃으며 말했다. 승문의 현재의식은 그가 생소했다. 그런데도 왜 자꾸 의식 깊숙이에서 느낌이 꿈틀거렸다. 그를 향한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이었다. 

“스승님!! 언제부터 저의 스승님이셨는지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분명히 처음 뵈었는데, 왜 이리 익숙하고 제 무의식에서 스승님이라는 외침이 나오는지요?”     


그는 웃으면서 천천히 말했다.

“이제 조금 각성하였느냐? 내가 자네를 기다렸다고 하지 않았느냐. 스승이 제자를 기다리는 것은 희귀한 일인 것이야.”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현실의 시간대 그 너머의  데자뷔가 느껴집니다. 모든 것이 너무 익숙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느꼈다면 그러한 기억들이 존재하는 거야. 인간은 자신이 아는 것을 전부라고 생각해. 그렇지 않아.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훨씬 더 강하게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거야. 자네와 나의 인연은 몇 세기에 걸쳐 있는 것이야.”     

승문은 도저히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범접하지 못할 위엄과 경외감이 들었다. 어렴풋이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가 다시 승문을 보고 말했다.

“자네는 하늘의 천의성이 들어 있어. 이번 생에는 활인업을 해야 할 것이야.”

“스승님, 그것이 무슨 뜻인가요?”

활인업이라고 함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뜻이야. 자네는 그 사명을 타고났어. 아마도 자네가 살아오면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이나 질병의 경험이나 고통이 있을 거야. 인간은 운명의 궤도에서 반드시 암시를 받거나 영향을 받는다네.”

“아. 그런 암시가 있군요. 생각해 보면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1세 때 갑작스러운 누나의 죽음과 21세 아버지의 말기암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승문은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파노라마처럼 당시의 순간들이 빠르게 스쳐갔다. 21세 당시 아버지는 간경변 말기로 생명이 위태로웠다. 의사는 무표정하게 말했다.

“집으로 모시고 가서 맛있는 음식을 드시게 하세요.”

“선상님요. 그럼 희망이 없다는 긴가요?”

“여기서 더 해줄 수 있는 치료가 없습니다.”

승문은 의사의 그 냉랭한 눈빛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나이 21살의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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