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적멸 15.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라먼 희망이 없다는 말인교?”
의사는 묵묵부답이었다.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던 의사가 말했다.
“앞으로 2주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아이고 이를 어짜노”
간신히 억누르고 있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버지는 당시 60세였다. 황달이 흑달이 되며 병원에서는 간경화말기로 진단했다. 부산대학병원과 메리놀병원, 부산시립병원 3 군데서 받은 진단명은 동일했다. 마지막 부산시립병원에서 시한부 선고를 내렸던 것이었다.
승문은 울음을 감추었지만 어머니는 계속 대기실에서 울었다.
한참을 그녀의 곁에서 기다렸다.
이윽고 울음을 그친 어머니가 말했다.
“니는 표시내면 안된데이. 니거 아부지 알면 안 되는 기라. 나도 눈물 닦고 태연하게 니거 아부지 대할 끼다. 할 수 있제. 환자가 알면 안된다 카더라.”
“응, 그럴게.”
승문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얘기했다.
그다음 날 어머니는 대학생인 나를 포함해서 자형과 함께 택시를 대절해서 고향으로 갔다.
부산에서 포항까지의 거리는 3시간이 조금 넘었다. 아버지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거동을 못하셨다. 호흡도 가늘고 짧았으며 식사조차 못하시는 절망적인 상태였다.
고향으로 간 첫날은 쉬고 이튿날은 바로 영면식을 했다.
영면식은 죽음 진전의 사람이 동네사람들과 이승의 하직인사를 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나는 대청마루에 앉아 영면식을 지켜봤다. 아버지는 거동을 못해서 이불로 겨우 반쯤 앉아있는 자세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아이고 이 사람아 먼저 가면 어짜노”
아버지의 친구가 가장 먼저 달려와서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러나 영면식은 한 사람이 오래 대화를 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환자를 배려해서 한 번씩 돌아가며 보는 식이었다.
“아이고 어짜노, 어찌 니가 먼저 가노.”
아버지의 사촌누나가 그렇게 말하고 울며 나갔다.
수많은 동네사람들과 한, 두 마디 하고 돌아갔다.
조금 뒤늦게 온 백부가 대문에서부터 소리를 치며 들어왔다.
“야야. 니가 먼저 가다니, 우찌 이런 일이 있노. 안 된다. 가도 내가 먼저 가야지.”
그는 가까이 와서 손을 어루만지고는 갔다. 아버지는 그들 모두의 인사를 받았다. 승문은 하는 일없이 하루 종일 아버지의 임종을 기다렸다.
승문은 약 2주 동안을 대기 상태에 있었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민간요법의 한약을 준비했다.
그것은 조약이라고 하는 약초요법이었다. 전통적으로 알려진 약초를 끓여 만든 약을 조약이라고 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시도해 보려는 것이었다. 승문은 어머니가 조약에 좋다는 약초를 캘 때 같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