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세상 28. 문명과 자연의 세상이 뚜렷하게 구분이 되었다.
승문은 천천히 하산을 했다.
산속은 입산을 할 때와는 달리 모든 것이 익숙해져 있었다. 바람을 타고 들리는 풀숲의 벌레소리와 새소리, 가끔씩 들리는 산짐승들의 소리까지. 완벽하게 또 다른 세상의 풍경이었다.
스승의 말씀처럼 산속의 하루는 세속의 10일과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오롯하게 자신과의 대면을 한 시간이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시간 외에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 오직 주변의 수많은 자연의 생명체와 자신뿐이었다.
등산객이나 약초꾼도 없는 깊은 산골이어서 더더욱 그랬다.
도시의 생활과 비교하면 비교가 되지 않았다. 문명이 없는 완벽한 자연과 밤이 되면 펼쳐지는 어둠과 별들의 세계였다.
산을 넘고 또 넘어 도시가 보이는 지점까지 왔을 때 두 개의 세상이 느껴졌다.
문명과 자연의 세상이 뚜렷하게 구분이 되었다.
또한 불현듯이 그녀가 떠올랐다. 마치 기억상실증에서 벗어나는 순간처럼 선명하게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미안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어쩌면 자신을 기다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을 읽다가 덮어놓은 책처럼 잊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승문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한동안 단절된 두 사람 사이에 약속의 끈이 이어져 있었다.
산 아래까지 내려오자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근처의 식당촌에서 나는 다양한 음식들의 냄새가 느껴졌다. 탁한 공기와 어딘지 막이 끼어 있는 듯한 시야도 불편하게 감각이 되었다. 산속에서 살면서 생식을 하며 오감이 발달된 탓이었다.
예전 같으면 못 느꼈을 또 다른 세상의 풍경이었다.
승문은 오랫동안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아서인지 행색자체가 달랐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갔다.
승문은 한참을 걸어가다가 공중전화를 발견하고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아주 빠르게 전화의 신호음이 끊기고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이제 하산하신 건가요?”
그녀가 전화를 받자 말자 누군지를 확인하지 않고 말했다. 순간 승문은 놀라서 말문이 막혔다.
잠시 침묵을 하다 말했다.
“누가 전화를 했는지 확인도 않고 어떻게 나인 줄 알아?”
“얼마나 오랫동안 오늘을 기다렸는지 알아요. 이른 새벽부터 전화만 보고 있었어요. 전화벨이 울릴 때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며 자기인 것을 직관적으로 느꼈어요.”
그 순간 불 꺼진 전등이 다시 불이 켜진 듯 심장이 뛰었다. 그녀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에 감사가 느껴졌다. 승문이 빠르게 말했다.
“우리 빨리 만나. 자기한테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그럼 빨리 만나요. 지난번에 입산하기 전에 만났던 그 커피숍에서 기다려요.”
승문이 책을 꺼내 읽고 있을 때 그녀가 나타났다.
약속한 240일 만에 처음 만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너무나 화사하게 노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마치 수선화처럼 밝고 선명한 색채였다. 자연의 세계에서 온 그와 문명 세계의 그녀가 만난 것이었다.
그녀는 더욱더 아름다워졌고 어딘지모를 성숙함이 느껴졌다.
그녀는 수줍은 표정을 하며 앉으며 말했다.
“도사가 되어 하산하셨네요. 까치집 머리에 덥수룩한 수염이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