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와 운명의 한계 9. 개별적 의지가 사주와 상호작용한다는 점이었다.
일반적인 운명은 예측이 가능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절대적 운명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승원은 휴학과 복학을 병행하며 학업과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한데 사주를 공부하면 할수록 절망적인 상황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대운이 너무 늦는 것이었다.
‘무려 48년이나 악운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자신의 대운이 그랬다.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과 청년기를 보냈지만 늘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사주학을 공부하며 느낀 자신의 대운이 그랬다.
스승은 승원의 대운이 나쁜 것에 대해서 언급을 피했다.
“대운이 나쁜 것은 자네가 공부하는 운이 길다는 뜻이야. 그런 고통 없이 어떻게 사람을 구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는가. 악운은 공부하는 운이고 길운은 공부의 성과를 거두는 운일뿐이야.”
이 말을 하고는 침묵했다.
승원은 자신의 대운이 절망적인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하지만 젊은 혈기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보험영업으로 돈이 들어오자 먼저 대성에게 투자금을 돌려주었다.
그다음에는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당시 주식시장은 엄청난 활황이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큰 이윤이 돌아왔다. 하루에 천만 원을 벌어들인 적도 있었다.
큰돈이 모이자 아파트도 구입했다. 대운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승원은 자만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자신이 마치 주식투자의 귀재인 것처럼 생각이 되었다.
보험영업은 그만두었고 사주나 운세는 뒷전이 되었다. 신용으로 엄청나게 큰 베팅을 시작했다. 그 역시 처음은 순조로웠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1000포 인터가 오르던 날부터 재앙이 시작됐다.
순식간에 대하락이 시작된 것이었다.
손을 쓸 틈 없이 엄청난 하락이 계속되었다. 승원은 순식간에 종이조각 만 손에 잡았다.
지옥의 문턱으로 들어선 것이었다.
아파트를 팔고 남은 자산을 정리해도 모자랐다. 무려 4천만 원의 빚만 남아 있었다.
그 당시 대성은 건설사업을 위해 이란으로 나간 상태였다.
승원은 의논할 사람 하나 없이 그 상황을 온몸으로 맞이했다. 그 빚의 무게는 엄청났다. 숨을 쉬는 모든 순간이 심장을 옥조였다. 머리가 돌아버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운명의 소용돌이는 거세게 감돌았다.
승학은 또다시 학교를 휴학하고 온갖 일을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헤매는 시간이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있을까?
승원은 그 상황에 빠진 이후로 다각도로 분석했다. 주역과 사주, 관상, 한의학을 총동원했다.
그런데 뾰족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자신이 그토록 열심히 공부했던 역학은 예측을 전혀 하지 못했다. 대운이 나쁘다는 말은 여러 번 들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인간으로서 역학을 판독할 수 있는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승원은 온갖 생각을 다 하며 이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왜 처음에는 엄청난 돈이 몰려왔고 한 순간에 나는 나락으로 떨어졌을까?
사주의 운세를 내가 무시한 탓일까?
생각과 생각의 꼬리가 물려서 돌아갔다.
온갖 방법으로 분석을 해도 명쾌한 답은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주의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사주만으로 운세를 예측하거나 운명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만약 사주의 예측이 정확했다면 이 정도의 악순환은 피했을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 해답은 개별적 의지가 사주와 상호작용한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사주의 한계였다.
여러 가지 복합적 상황에 따른 판단이 운세를 결정하기 때문이었다.
승원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더욱더 깊은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