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의 스승과 수행 10. 스승을 찾고 수행하며 그릇을 완성하시오.
현실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암담했다.
승원은 하루 5개 이상의 일을 했다. 잠을 잘 시간조차 없었다. 밤을 새워 일했다. 돈을 갚기 위해 일수를 쓰기도 했다. 500만 원을 빌리면 매일 5만 원을 3개월간 찍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끔찍했다. 단 하루도 돈을 입금하지 않으면 온갖 욕설이 난무했다.
승원은 일수를 3년간 무려 3000만 원을 빌렸고 갚았다.
지옥을 최소 3번은 다녀온 정도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승원에게 최고로 소중한 기간이었다. 불철주야를 지새우며 공부하거나 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역과 사주, 관상, 한의학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차가운 현실과 뜨거운 공부의 동양철학이 결합이 되었다. 특히 밤낮으로 일하며 몸이 망가져서 한의학적 치료를 받아야 했다.
고질병인 상기증과 축농증, 만성체증, 피부병 등이 문제였다. 몸에서는 항상 이름 모를 병증들이 뱀처럼 똬리를 쳐들고 있었다.
승원은 그가 좋아하는 의학이 곧 현실이었던 것이다.
미친 듯이 일해서 4천만 원의 족쇄를 3년 만에 풀었다.
그것은 승원이 두 번째로 사회적 군대생활을 한 것과 같았다. 미칠 듯한 훈련강도와 횟수를 자랑했던 기갑부대 생활이 큰 도움이 된 것이었다.
사회에 나와서 빚을 갚는 시기는 또 다른 군대생활 같았다. 하루하루 밀려오는 부채의 독촉과 족쇄들을 차며 치열하게 살아가야 했던 인고의 세월이었다. 마침내 마지막 빚을 갚은 후에 승원은 비로소 해방의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경제적 압박을 받지 않은 사람은 그 암담함과 비참함을 느낄 수 없다.
승원은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며 수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가치와 절대적 지위를 절감했다. 또 돈의 세계가 주는 현실적 경험과 성장을 이해할 수 있었다.
승원은 자유가 된 날 유명한 사주대가 선생님을 찾았다. 그는 부산에서 이름을 떨치던 김용길 선생이었다. 그는 도인풍의 이미지와 시와 문학을 하는 지성인이었다.
승원은 그를 찾아가 상담을 청했다.
그는 진지하게 사주 명조를 보며 말했다.
“죽을 운을 지나온 것 같소. 지난 4년간 어떻게 견디셨소?”
승원은 깜짝 놀랐다. 그것을 어떻게 안 것일까 머리가 복잡해졌다.
“사주에 그렇게 나오는지요?”
“그야 당신이 잘 알잖소? 그 고통을 겪고도 얼굴색이 이 정도인 것은 당신의 사주격국이 엄청났기 때문이오. 내가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않소?”
그는 승원의 과거와 현재를 꿰뚫고 있었다. 자신을 그리 아는 사람 앞에서 승원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한참의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그가 말했다.
“당신은 이제 이곳 지방을 떠나 중앙으로 가시오. 큰 인물이 되려면 큰 물로 가야 하지 않겠소. 이제 그 준비가 다 된 것 같소.”
그의 말은 마치 예언자의 통찰과 같았다.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핵심을 꿰뚫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했다.
“큰 물로 가기 전에 입산수도하여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시오. 우주변화의 원리도 공부하고 명상도 해보세요. 한 1년 공부를 더 깊이 하고 서울로 가면 좋을 것이오.”
"그것이 왜 필요한가요?"
승원이 그에게 질문을 할 때 그가 지그시 눈을 감으며 말했다.
"동양철학을 하는 사람이 서양철학을 하는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아시오?"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점이 다른지요?"
"동양철학은 반드시 위대한 스승을 찾아야 하고 스스로 수행하며 절차탁마하여야 하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의 그릇을 완성하시오. 또 서양철학처럼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바로 적용하고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하오. 주역을 공부하셨으니, 아시겠지만 의리주역은 사실상 의미가 없소. 주역을 공부하였다면 마땅히 미래예측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오."
그는 종이에 쾌상을 그리며 말했다.
"산수몽쾌의 한자 설명이 의리주역이오. 하지만 괘상주역은 다르지 않소. 산수몽의 상쾌 산과 하괘 수의 상이 어떤 조화를 하는지 점술로 풀이하는 것이오. 주역은 문자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오. 공자가 자죽끈을 50번이나 바꿀 정도로 공부한 이유는 미래예측과 지혜 때문이오. 그러니, 앞으로 괘상주역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시오. 그것이 이 불투명한 시대에 어떤 상황을 객관화하는 판단기준이 될 것이오."
"아!! 선생님, 주역을 실용적 학문으로 보야야 한다는 뜻인가요?"
"의리주역은 한자의 뜻을 풀이하는 탁상공론이오. 아산 김병호선생이나 대산 김석진 선생 같은 분들이 의리주역의 대가들이었소. 대산선생은 평소 주역은 '점치는 책 아니다.'라고 강조했소. 하지만 왜 율곡이이나 이퇴계, 이순신 장군 같은 분들이 주역으로 점술을 해 보았겠소. 특히 이순신 장군은 모든 해전에서 전략이나 출전을 위한 것을 모두 주역으로 보고 결정을 했소. 그건 난중일기에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오."
그의 말은 전율을 일으켰다.
승원이 늘 꿈꾸던 입산수도와 쾌상주역을 그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쾌상주역 강의를 하며 현대인들에게 삶의 지혜를 전해주고 싶었던 바람도 그가 정확히 꿰뚫었다.
모든 학문은 탁상공론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이 승원의 신념이었다. 승원에게 동양철학은 의학동원으로 통해있었고 삶의 등불이 되는 실사구시의 학문인 것이었다.
승원은 꿈이 현실화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4월 25일부터 5월 10일까지 주역대가와 침술대가를 찾아 다녔습니다.
여기 이 소설은 이미 4월 초에 다 쓰 놓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장기간 대가찾아 삼만리 여행을 하는 관계로 올리지를 못했습니다. 앞으로 꾸준히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다음주부터 맥산침술 강좌와 쾌상주역 강좌를 할 예정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신청을 바랍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맥산쾌상 주역은 실용적이며 밝은 지혜를 깨닫게 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