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상주역의 심신일여의 철학과 괘상 속 조화 원리
몸위에 침을 놓는 것은 무슨 괘상일까? 어떤 형상이나 이미지이든 모두 괘상이 있다. 몸과 마음 역시 괘상주역으로 보면 형상이 있는 것이다.
서양철학은 몸과 마음을 분리하여 인식한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은 이성의 주체와 물질적 신체로 나뉘었다. 그러나 동양의 사유는 이 둘을 처음부터 나누지 않았다. 마음은 몸을 통하여 드러나고, 몸은 마음을 통하여 움직인다. 이를 일러 심신일여(心身一如)라 한다. 이 사유는 한의학의 임상과 주역의 괘상 속에 깊이 스며 있다. 이는 동양의학이 질병을 단순히 ‘몸의 고장’으로 보지 않고 ‘삶 전체의 불균형’으로 이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몸에 침을 놓는 행위도 마찬가지로 마음에 놓는 것과 같다.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몸과 마음은 하나인 것이다.
『주역(周易)』의 제31괘 함괘(咸卦)는 ‘감응함’을 뜻한다.
괘상으로는 택상산하(澤上山下), 즉 연못이 산 위에 있는 형상이다. 산은 고요함을, 연못은 유동성을 상징한다. 고요한 가운데 감응이 일어날 때, 비로소 마음과 몸이 서로 통한다는 뜻이다. 함괘의 효사(爻辭)에 “감이란 서로 맞닿음이라. 군자는 이에 빈 마음으로 백성을 감화한다(咸, 感也. 君子以虛受人)” 하였다. 그러나 감응은 텅 빈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이 고요해야 몸이 반응할 수 있으며, 반대로 몸의 막힘은 마음의 정체로 이어진다.
임상에서 보면, 오래된 불면과 위장 장애를 동시에 호소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의 진맥을 보면 담(痰)이 심포(心包)에 얹혀 있고, 기(氣)가 흉격 위로 몰려 있다. 이는 ‘걱정이 위를 막고, 생각이 기를 눌러서’ 생긴 것이다. 이런 경우 단순히 위를 다스리기보다, 먼저 마음의 울결을 풀어야 한다. 이때 체질의학에서는 기울(氣鬱)을 해소하고, 담화(痰火)를 내리는 처방을 쓴다. 동시에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명상이나 호흡법을 병행하면, 몸과 마음이 함께 열리며 수면이 안정되고 위장이 편해진다. 이는 함괘가 말하는 ‘감응’의 원리와 같다. 고요함(山) 속에 연못(澤)이 머물 때, 즉 마음이 잔잔히 가라앉을 때 비로소 생리적 흐름이 조화를 되찾는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좀 더 깊이 읽어내는 괘는 태괘(泰卦)이다.
태괘는 천지교통(天地交通)의 상징이다. 하늘의 기운이 아래로 내리고 땅의 기운이 위로 올라와 서로 교감하는 형상이다. 괘상으로는 건하곤상(乾下坤上), 즉 양이 아래에 있고 음이 위에 있어 서로 섞여 흐른다. 태괘의 도는 곧 조화(調和)의 도다. 몸에서 이를 본다면, 음양의 교통이란 곧 신(腎)의 음이 심(心)의 화를 제어하고, 심의 화가 신의 수기를 덥혀주는 작용과 같다. 한의학에서는 이를 **수화기제(水火旣濟)**라 하며, 인체 내의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본다.
심신의 일체성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는 운화(運化)의 원리를 아는 것이다.
주역의 제63괘 기제괘(既濟卦)는 “이미 이루어진 때”를 뜻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루어졌으므로 다시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는 경계를 담고 있다. 괘상으로는 수화기제(水火旣濟), 즉 물과 불이 조화롭게 만난 형상이다. 그러나 『계사전(繫辭傳)』은 이에 덧붙여 말한다. “기제는 조화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마침내는 불안함이 있다. 음양의 교류가 멈추면 곧 미제(未濟)로 돌아간다.” 이 말은 완전한 균형이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뜻한다. 몸과 마음의 건강 또한 그러하다. 한 번 안정되었다고 해서 영원히 평형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후와 감정, 생활 습관 속에서 미세하게 흔들리고 조정된다. 이를 한의학에서는 비운화(脾運化)라 하여, 비(脾)가 음식물의 정미를 분별하고 이를 전신으로 순환시킴으로써 생명활동을 지속하게 한다고 본다.
40대 후반의 베트남 남성이 만성적인 피로와 분노, 불면으로 내원했다.
진단을 해보니 간기(肝氣)가 울체되어 있고, 심화(心火)가 항진되어 있었다. 이 경우 간의 억울함이 풀리지 않으면 심이 안정되지 않는다. 증세는 심한 편이지만 대부분 베트남인들은 약보다는 침을 선호했다. 그러나 증세가 단순하지 않아서 1주일간의 침치료에도 큰 호전효과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괘상주역을 해본 결과, 화뢰서합괘였다. 심화가 항진되어 있고 뇌가 울체되어 있는 형상이었다.
괘상을 설명하며 그의 몸뫄 마음을 알아보았다.
그는 직장에서 상사와 갈등이 심했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실제 그의 병인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는 점에 있었다. 마음은 몹시 싫어하지만 몸이 억지로 과중한 부담을 감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방으로는 맥산침법으로 무의식 신경을 다스리는 신경침을 놓았다. 우선적으로 그의 숨겨진 분노와 불면을 풀어주었다. 그 다음으로 처방으로는 소요산(逍遙散)을 변형하여 간기울결을 풀고, 심신을 조화시키는 가미귀비탕(加味歸脾湯)을 병용한 특효제였다.
4주 후 그는 “잠이 조금씩 편해지고, 사소한 일에 화가 덜 난다”고 했다.
화뢰서합이 서로 수용하고 어울림을 통해 안정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몸과 마음의 관계는 세상사와 유사하다. 세상은 억압이나 과잉이 생기면 곧 폐색과 불화가 일어난다. 인간의 심신도 마찬가지다. 분노나 불안 같은 감정은 단순히 ‘심리’의 문제가 아니라, 기(氣)의 불균형이며 음양의 교류가 막힌 결과다. 따라서 치료의 핵심은 억지로 감정을 누르거나 해소하는 것이 아니다. 막힌 흐름을 다시 소통시키는 데 는 것이다.
함괘는 ‘감응’을, 태괘는 ‘조화’를, 기제괘는 ‘순환’을 가르친다.
이 세 가지 원리가 합쳐질 때 우리는 비로소 심신일여의 도를 이해하게 된다. 한의학의 진단과 처방이 단순히 병의 치료를 넘어 삶의 조율로 확장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몸은 마음의 그릇이고, 마음은 몸의 그림자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이 흔들리고, 마음이 어지러우면 몸이 굳는다. 그러므로 진정한 치유란 병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을 하나의 흐름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이것이 곧 주역이 말하는 조화의 도이며, 한의학이 추구하는 생명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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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상주역은 디지털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적 체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