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부터 듣던 말이 있다.
"네가 큰딸이니까 엄마를 잘 도와줘야 해."
"그렇게 게으르게 살아서 사회생활 못해. 정신 바짝 차려."
"네가 여기서 무너지면 다 망하는 거야."
그 말들은 내가 지지 않아도 되는 무거운 짐이 되어 내게 돌아왔다.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나는 내가 너무 부족하다고 언제나 생각했다. 모든 상황에서 그저 평화롭기 바랐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했다.
언제나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 잘 듣는 딸, 말 잘 듣는 학생, 말 잘 듣는 아이. 그게 나를 망치는 줄도 모른 체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눈을 뜨는 순간부터 노력해야만 했다. 머릿속에는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해 봐도 사람들은 더욱 큰 것들을 바랐다.
누군가에게 선을 베풀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나를 바보취급하고 만만하게 보며 이용을 하려고 한다고 해도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나를 죽이면 매우 간단한 일이었다. 치킨을 먹을 때 닭다리를 포기해야 했다. 가족들의 평화를 위해서 친구들과 노는 시간을 포기해야 했다. 누군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 '괜찮아.'라는 말을 하며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을 집어삼켜야만 했다.
서운함과 짜증을 집어삼키면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웠다. 나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참고 또 참다가 마음에 병이 깊어지고 나서야 알게 된 건 내가 노력한 만큼 타인은 나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결론이었다.
내가 쏟은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순간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다. 큰소리로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는 것도, 화내고 짜증 내는 것조차 해서는 안 되는 일로 구분이 되었다.
"운다고 다 해결 안 되니까 그만 울어."
만약에 처음 마음이 망가지는 날 들은 말이 그 말이 아니었다면 나는 조금 이 마음을 일찍 털어 낼 수 있었을까?
"벌써 몇 년째 그러는 거야? 너 정말 왜 그러니?"
만약에 그 말을 듣지 않았더라면 조금 마음이 편해졌을까?
"내가 더 힘들어. 살면서 안 힘든 사람이 어디 있어?"
생각해 보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말들이다. 각자의 방식으로 해준 조언과 관심이었을지도 모르고 그저 지나가는 말로 한 말들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바란 건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냥 괜찮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 넘어졌다 다시 일어나려는 걸음을 맞춰주길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나는 착한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고집도 세고, 주장도 강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사실은 굉장히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니 참지 않아도 된다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면 된다고. 그런 말들이 내게는 필요했다.
착한 콤플렉스에서 졸업하기 위해서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자꾸만 죄를 짓는 듯한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오기까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살아나가야 할 것이다.
살아간다는 게 두렵고, 내일이 온다는 게 무섭고 불안한 순간들이 올 때마다 그냥 나를 죽이고 예전처럼 살아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 스스로에게 끝없이 묻고는 한다. 하지만 나 스스로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삐뚤삐뚤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건 도저히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비틀거리며 살아가야 하는 순간의 연속들이다.
그러나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들은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늘 존중해주려고 한다. 그러니 나는 고통 속에서 버티며 살아갈 수 밖에는 없다.
착하지 않은 내 모습이 적응이 되지 않지만 그러한 나 자신을 사랑할 때 나는 어른에 더 가까워질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감당해 주는 누군가에게 기대며 그렇게 하루를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