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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새 Dec 19. 2022

양평에 살기

 양평을 택한 것은 어느 해 봄 양평 물소리길 4코스를 걷기 위해 방문한 그날의 감동 때문이었다.


   *   *   *   *

 어느 따스한 봄 양평 물소리길 버드나루께길을 들어선 순간, 나는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남편은 지금도 이 이야기를 하면 웃는다. 무엇일까. 한눈에 반한 걸까. 어쨌든 그날 이후로 나는 고속도로에서건 국도에서건 양평을 지날 때마다 ‘양평이다!’ 하고 소리를 질렀고, 해마다 봄이 되면 양평을 가자고 졸랐다.

“벚꽃 많이 피었나요?”

“네, 예뻐요. 양평서 살고 싶어요!”

벚나무 흐드러지게 핀 물소리 4코스를 흥에 겨워 걷고 나오는 우리에게, 꼭 우리와 비슷한 연배의 부부가 한 질문에 대답한 내 말은 정말 진심이었다.

양평이 벚나무만으로 나를 사로잡은 건 아니다. 연둣빛 찬란한 버드나무의 행렬도 있었다. 그건 봄에나 볼 수 있는 산의 파스텔 연둣빛과는 또 다른 화려한 빛남이었다. 나는 유난히 봄 산의 파스텔 연두를 좋아했다. 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 첫인상의 범인은 두고두고 생각해 볼수록 버드나무 그 녀석들의 연둣빛이 틀림없었다. 부드럽게 늘어진 연둣빛 머리채를 늘어뜨리고, 아무 말 안 해도 많은 말을 쏟아내 놓고 있는 듯한 눈부신 행렬들.

 아니다. 그것만이 아니다. 너른 강물이 있었다. 모든 걱정과 근심, 괴로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지나고 나면 다 흐르는 물처럼 흘러갈 것임으로 애끓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드넓은 남한강은, 그 흔한 인공적인 사방공사 흔적도 없이 푸른 풀밭을 널찍하게 끌어안고, 부드러운 연분홍 벚꽃 무리와 어우러진 연둣빛 버드나무 행렬과 함께 내 가슴에 파고들어 먹먹하게 만든 것이다.

 진심으로 양평의 너른 남한강 옆에 살고 싶다. 그래서 수시로 강변 길을 걸으며 사계절을 보내고 싶고, 그곳을 사랑해서 그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이웃으로 지내고 싶다. 여행하다가 주저앉아 그곳에 사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양평 사람이 되고 싶다. 많은 곳을 여행하고 그곳에 살기를 상상해 보았지만 결론은 늘 양평이었다.

  < 지방지 '미지산'에 실린 '버드나루께길'의 일부>


   *    *    *    *

 이 글로 우리가 양평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나에 비해서 남편은 상당히 이성적이고 실리적인 사람이다. 여행지마다 그곳에 살고 싶다고 하는 나를 보고 웃어넘기던 남편이 양평에 대한 나의 반복되는 반응에 덜컥 수락을 했다.

 "그래, 까짓 거. 살아보지 뭐."

 물론 결정하기까지 많이 생각하고 따져보았으리라 믿는다.

 나의 한눈에 반한 사랑으로 시작된 우리의 '양평에 살기' 이야기가 준비를 거의 끝내가고 있다. 결혼 후 아파트 생활만 약 40년, 이 집에서만 15년 이상을 살아온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을 접고 양평으로, 집을 지어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주택살이를 생각하게 된 것은 집안에 가득한 화초들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키우시던 많은 화초를 보고 자라서일까 아파트 베란다에 하나 둘 화분을 들이다가 어느 날 세어보았더니 50개가 넘었다. 지금은 모종 화분 빼고도 80개가 넘으니 화초 욕심이 큰 편이다.

 문제는 화초들이 제대로 자라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원래 실내 식물인 관엽이야 몇 년씩, 혹은 10년도 넘게 잘도 크건만. 햇빛을 좋아하는 화초들은 처음 사 올 때는 꽃도 잘 피고 튼튼하던 것들이 차츰 생기를 잃고 마침내 죽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그냥 한 달에 몇 개 사서 꽃 보고 다음 달 또 사서 꽃 보는 소확행으로 즐기기로 했지만. 마당 있는 주택 가고 싶다는 노래는 내 입에서 그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화초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살게 해 주고 싶은 이유로 결국 우리는 겁도 없이 땅을 계약해버렸다.

 이곳 토지를 계약하고 등기하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다. 큰 평수의 임야를 개발하여 여러 필지의 택지로 만들어 분양 형식으로 땅을 파는 사업자를 만나 별로 알아보지도 않고 계약을 했다. 그런데 처음 계약할 때와 이야기가 달라지기도 해서 한 번은 그만두려고까지 생각했었다.

먼저 집을 짓기 시작한 앞집 건축주가 내게 말한다.

"저희 땅 계약하고 집 짓기까지 3년 걸렸어요. 그냥 이 시간을 즐기세요. 기다리면 돼요."

 1년을 꼬박 마음고생하면서 기다리느라 우울증까지 생길 뻔했는데, 1년은 아무것도 아니란다. 아무런 지식 없이 그저 한눈에 반해 땅을 계약해놓고, 나중에야 이것저것 알아보고 고민하느라 나름 힘들었는데, 앞집 건축주는 그 기다리는 일을 3년이나 했단다. 기다리는 일. 필요한 일인데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성질이 급한 탓이다.  

 어쨌든 기다려서 내 이름으로 된 땅을 마련했고, 절차에 따라 설계, 건축 허가, 집짓기, 준공까지 또다시 기다리면서 시간을 즐기다 보면 원하는 대로 주택살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    *    *

 드디어 10월 11일 건축 허가가 났다. 허가날 때까지는 오래 기다렸는데, 건축 진행이 매우 빨랐다. 시공사 소장님과는 이미 1년 전부터 이야기가 되어 있는 상태라 건축 허가 나기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듯 일사천리로 진행을 해 나가는 중이다.

 사람을 잘 만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는데, 우리가 그 복을 받은 셈이다. 첫 번째로 짓는(처음이자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 집이라, 건축 관련 지식이 매우 부족한 우리들에게 집 짓는 경험이 많고 성실한 소장님을 만나 즐겁고 행복한 집 짓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원래 8월에 공하려고 계획을 잡았었는데, 두 달이나 미루어진 셈이다. 그런데, 8월과 10월에 큰 비로 미리 건축 허가가 났어도 제 속도로 건축하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양평의 추위가 소문나 있어서 심한 추위가 닥치기 전에 외부 공사를 끝내려고 사람도 두 배로 붙여서 공사를 진행했다. 날씨도 우리 편이다. 시공사 소장님은 건축주가 복이 많아 날씨도 도와주어서 일반적인 공정보다 10일 정도 빨리 끝날 것 같다고 덕담을 했다.  

 풀만 가득하던 땅에 기초 콘크리트 타설을 하고, 목구조가 올라가고, 벽체를 세우고, 지붕이 얹혀지고, 창호가 설치되고,  일련의 과정이 눈앞에서 마치 기적처럼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의 설레임을 잊지 못한다.

  아파트 분양을 받아, 전 점검을 위해 이미 다 만들어진 집 안으로 들어가서 구경을 하던 느낌과는 다른 특별한 감동이다. 그야말로 땅바닥 밖에 없던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일이 아닌가.

 내일은 그동안 주문해 두었던 가구가 들어오는 날이다. 다음날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확인차 목요일 가 보기로 했다. 이제 조명과 에어컨을 설치하고, 가스 공사하고, 주문했던 가전제품이 들어오고 나면 사람 사는 집 꼴이 거의 갖춰질 것 같다.

 아직 살고 있는 아파트를 내놓지 않았다. 아파트 값이 하락 중이고, 매매도 거의 바닥이라 월세를 주고 떠나는 방향으로 선회를 했다. 매매는 2년 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그간의 진행 상황을 순서대로 올려본다. (블로그 글을 날짜 별로 정리해서 옮김)


  *    *    *    *

 (1) 22년 9월 25일

 풀만 가득한 땅. 언제 집을 지을 수 있으려나 매주 토요일 산행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한 번씩 들러본다. 볼 때마다 속이 답답하다.


 (2) 10월 24일

 분양하는 토지 구입하고 돈만 내면 아파트처럼 내 집 열쇠 받는 줄 알던 무식한 예비 건축주, 6개월이면 화단 만들 수 있을 줄 알고 작년 가입한 카페에서 씨앗을 잔뜩 나눔 받기도 했지만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아직 꽃밭이 없다.

 키만큼 컸던 풀 싹 밀어낸 땅에 그려진 빨간색 스프레이를 보는 순간부터 슬슬 실감이 나기 시작하였다.

 지난 토요일 이런 모습이었는데,

 오늘 이런 모습이다.

이제 건축주가 되었다. 실화다.


 (3) 11월 2일

  1층이 생겼다. 유리창 위치도 확인하고, 그곳을 통해서 보이는 전망도 감상했다.

 경량목구조로 짓는데, 토요일 목재 들여온다더니 금방 뚝딱뚝딱 집 모양이 나온다.

 아파트보다는 좁겠지만~ 지금 40평대에서 사는데, 1층이 30 평대니까 훨씬 좁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파트는 활동 공간이 실내에 국한되지만, 주택은 마당이 있으니까. 금방 적응되리라 생각한다.

 평수 넓으면 난방비 등 관리비만 올라간다고 크게 짓지 말라고 하는데, 아파트에서 살다가 처음 주택으로 옮기는 거라 너무 작으면 답답할까 봐 절충한 것이다.

 구체적인 형태가 보이니까 정말 실감이 났다. 전에는 이미 전원주택 짓고 살고 계신 사람들이 제일 부러웠는데, 이제 우리도 그 꿈이 멀지 않았다.

 (4) 11월 8일

 건축 허가 나자마자 우리 소장님 추워지기 전에 속도 낸다더니,

 "이거 너무 빠른 거 아니야?"

 하고 걱정할 정도로 빨리 짓는다.

 양평이 좀 추운 곳이란다. 그래서 사람을 더 붙여서 추워지면 하기 힘든 공사는 한겨울 되기 전에 끝내겠다고 밀어붙이는 모양이다.

 목수팀이 다른 집 짓는 것 보니까 3~4명 붙어서 일주일 이상 걸리는 것 같았는데, 지난 금요일 갔더니 7~8명이 달라붙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마 토요일도 작업을 한 모양이다.

 어제는 가서 창문 여는 방향, 콘센트 설치할 곳 표시를 의논했다.

 우리는 아파트 살다가 처음 집을 짓는 거라 지금 사는 아파트 참고하여 대강 표시했는데, 창문의 방향이 최적인 것을 골라주고 그 이유도 설명해 주고, 이것저것 콘센트 위치 빠뜨린 것까지 챙겨준다.

 그래서,  

 "물어는 보시고 소장님 마음대로 하세요."

라면서 웃었다.

 집 지은 경험이 많으니까, 가장 많이 선호하는 것, 가장 보편적인 것 위주로 해달라고 했다.

 벽돌 색은 이미 정해 두었는데, 지붕 색깔 골라야 한다. 문도 골라야 하고. 주차장과 집 뒤쪽에 칼라콘크리트 시공할 생각인데 그것도 의논해야겠다.

 또 시스템 에어컨을 어제 견적 받았는데, 내일 전기공사 동시에 배선한다고 한다.

 집에 돈 많이 쓰지 말라는데, 가성비 좋은 시설이나 재료를 잘 찾아 알뜰하게 지어야겠다. 건축비도 많이 올랐다고 하는데.

 설계 도면대로 집 모양이 갖춰진 걸 보니까 덩치가 꽤 커 보인다. 우리가 주로 아래층에서 생활할 거라 1층을 좀 크게 지었다.

 2층에는 내 작업실과 서재가 들어설 예정인데, 아직 계단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사다리 타고 올라가 보았다. 평소에 산행 다니던 실력으로 올라가니 겁은 나지 않았다.

 이층에서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전경도 찍어 보았다.

 꿈이 현실이 되어가는 요즘~어쩌면 들어가 살 때보다 지금이 더 설레고 행복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5) 11월 13일

  토요일 비가 온다고 하더니 양평도 저녁부터 엄청나게 쏟아붓는다. 다행히 집 짓는 과정 엿보기하는 동안에는 비가 안 왔다.

 외관이 거의 완성되었다. 타이벡이라는 비닐옷도 얻어 입었다.

 임시 전기는 10월 말에, 상수도 인입, 정화조 공사는 11월 초에 이미 완료했었다.

 시스템 에어컨 배관은 11월 7일 월요일 신청했는데, 수요일 배관이 끝났다.

 나무 목구조는 목요일 완성이 되어, 계약한 내용대로 3차 대금(중도금)을 지불했다.

 토요일에는 전기 배선이 마무리되고 일요일에는 난방 배관이 계획되어 있다고 했다.

 지붕까지 방수포를 씌워 비가 와도 이제 괜찮다고 한다.

  집 뒤쪽은 생태공원과 야산이다.

  건물 북쪽이 보강토 옹벽이라, 2.5m 이상 떨어져야 한단다. 반쯤 보도블록 깔고, 반은 삽목장이나 나물 밭(그늘에 키워야 하는 종류)을 만들 생각이다.

  북쪽 유리창 자리다. 전망이 마음에 든다.

1층 거실과 부엌이다.

(6) 11월 13일

 난방 배관을 했다.

 꿈만 꾸던 일이 실현되는 것을 눈앞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큰 즐거움이다.

 무슨 배짱으로 집 짓기에 대한 지식 없이 덤볐는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되지만, 너무 몰랐기 때문에 벌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을까 지나고 나서 짐작해본다.

 오늘 본 물소리길은 찬란했던 벚꽃 잔치도, 연둣빛 수양버들의 행렬도 사라진 말끔함만 남은 길이었지만.

 이곳의 사계를 함께 하고픈 마음은 순수하였다.

 이른 아침이라 산책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7) 11월 20일

 오늘은 갈산체육공원에서 출발하여 집 짓는 곳으로 갔다.

 집이 완성되고 입주하게 되면, 집에서 출발하여 갈산체육공원 쪽으로 걷게 될 것이다.

 소장님이 창호까지 설치된 집의 모습을 찍어서 보내주었다. 너무 속도가 빨라서 살짝 당황스러울 정도다.

 양평이 추운 곳이라 해서 사람 더 붙여서 추워지기 전에 빨리 한다고 하니 믿고 맡기는 중이다.

 돌아오는 길에 남한강 모습을 휴대폰에 담아 보았다.

  내년 3월이면, 이 길을 매일 걸을 수 있으리라는 상상을 하며 행복한 아침을 보냈다.

 꿈이, 실현되는 중이다.

 (8) 12월 11일

 10월 21일에 시작했으니까 두 달이 채 안 된 시점이다.

 비계 제거하고 나니 내 눈에는 예쁘다.

 마당 쓰레기도 치우니까 생각보다 넓어 보인다.

 풀밭일 때는 꽃밭 공간이 거의 없어 보여 실망했다가, 기초 치고 나니 좀 괜찮아 보였다가, 비계 설치하고 집 올라가니까 어찌 그리 좁아 보이던 지.

 비계 치우고 마당 비우고 나니까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

 170평 계약(도로 지분 제외한 넓이)했는데, 보강토 옹벽에 10여 평 뺏겼다. 뭐, 높으면 조망이 괜찮다나~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보강토 2단은 이격거리가 2.5m란다. 땅 모양도 네모 반듯하지 않아서 삼 방향 손해(?) 본 땅이 제법 된다. 그래도 소장님 말로는 이 정도면 준수하다고 한다.

 오늘 일요일인데도 도배 작업을 한단다.

 하얀 집, 하얀 벽. 깨끗한 느낌이 우리 집 컨셉이다.

 지금 아파트가 15년 전 유행색인 브라운이라 좀 어두운 편이었기 때문이다.

 도배를 사람들이 초벌작업을 하고 있었다.

 도배가 끝나고 가구가 들어오고 나면 80% 이상 완료된 것으로 보아도 될까.

 이제 우리 것이 될 조망을 카메라에 다시 담아 보았다.

 아파트에서 꽃을 키우다, 사랑하는 꽃에게 더 좋은 환경을~땅과 햇빛을 선사하기 위해서 주택으로 이사를 가려고 하는 꿈이 실현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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