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밥 소쿠리

현미밥

by 세온

어린 시절 누구나 그 시절에는 그랬겠지만 흰쌀밥을 먹어본 일이 별로 없다.

할머니와 어머니, 아버지, 네 남매 일곱 식구는 60년대 당시 많은 식구 수는 아니지만, 온 식구가 흰쌀밥 그릇을 함께 나누기는 버거운 살림살이었을게다.

보리 한 톨 안 섞인 흰쌀밥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돈을 벌어오는 가장인 아버지뿐이었다.

어머니는 한 솥에 두 가지 밥을 기술적으로 지으셨다. 가운데 한 그릇 쌀밥을 퍼 담을 수 있는 만큼의 쌀을 안치고 나머지는 보리를 넣어 밥을 지으셨다.

보리는 쌀보다 익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집에는 늘 보리밥 소쿠리가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려있었다.

당시는 집집마다 냉장고가 있던 시절이 아니다. 댓살로 만들어 바람이 잘 통하는 소쿠리에 삼베 수건을 깔고 미리 한번 익힌 보리밥을 넣은 다음 뚜껑을 덮어서 걸어둔다. 그다음 매 끼니마다 필요한 양을 덜어서 밥솥에 안치고 쌀을 씻어 넣어 같이 밥을 하곤 했다.

저녁 상에서 아버지가 밥을 다 드시지 않고 가끔 남길 때가 있었다. 그때 얻어먹던 한 숟갈의 쌀밥이 어찌 그리 맛있었던지.

나중에 살림이 차츰 나아졌을까. 언제부턴가 쌀의 양이 보리밥의 양보다 많아졌던 것 같다.

이밥에 소고기 반찬이면 최고의 밥상이었던 시절에 비하면, 쌀밥은 대접이 그때보다 못한 것이 사실이다. 쌀 소비량이 해가 갈수록 줄어든다는데,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다.

점심 한 끼는 간단식으로 넘기다 보니 아침저녁 두 끼다. 게다가 나는 아침을 빵으로 먹고 저녁은 저탄수화물 식단이라, 두 식구 쌀 소비량이 매우 적은 편이다.

나이 들면서 동네 병원 의사 선생님이 마치 주치의 같다. 두 달에 한 번 건강 체크를 받는 남편이 이번 검사에 중성지방 과다로 나왔다고 걱정을 했다. 그래서 현미밥을 먹자고 제안했다.

현미와 잡곡을 반, 쌀을 반 섞어 먹는 나와는 달리 남편은 서리태 넣은 쌀밥만 좋아한다. 두 식구 밥도 두 가지로 한다.

내가 먹는 대로 밥을 한 끼 주었더니 현미 양이 너무 많아 싫단다. 압력밥솥 밥도 너무 차지다고 싫어하는 예민한 미각의 소유자다.

현미를 미리 압력밥솥에 한 다음, 밥 할 때 조금 넣어 서리태 현미밥을 했더니 합격이다. 입맛에 익숙해지면 현미양을 조금 더 늘여야겠다.

현미를 미리 익혀서 끼니마다 한 숟갈씩 넣어 밥을 하면 되겠다 싶어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대청마루 바람 잘 통하던 곳에 늘 자리하고 있던 보리밥 소쿠리가 생각나는 날이다.

나의 어린 시절, 돌아가신 할머니, 어머니 생각에 오늘 밤 금방 잠이 들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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