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그렇더군요. 기억 속에는 생생한데,
입증할 증거가 없어요. 사진도, 남아있는 흔적도.
그 일이 정말 있었던 일일까요.
누구한테 물어보면 될까요.
나만 본 건 어쩌죠? 나만 기억하는 건 어쩌죠?
새해가 또 오는데 작년 일은 추억 속의 한 페이지가 되겠죠.
다행히 글이나 사진으로 남긴 건, 증거가 확실히 있으니 작년에 있었던 일은 누가 봐도 사실이 틀림없어요!
그런데, 어린 시절 추억은 내 마음속 추억 창고에만 들어있는 그 일은요.
해가 가면 더러는 잊혀지기도 하겠지요.
그래도,
아직 눈만 감으면 생생한 그 장면.
찾아가도 존재하지 않은 그 장소.
여기쯤인데, 이곳에 있었는데. 다 사라지고 없지만 분명히 있었던 일인데.
추억은 파스텔 색이고, 무지개 빛이고, 혹은 실루엣이고, 안개 속이고, 그저 아름답던 기억만 남아있네요.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이네요. 어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해요.
어린 시절 연날리기 하던 남강 가에서 본 하늘 색깔이 지금도 느껴져요. 따져보니 그때가 세 살 때의 일인데, 어린아이 눈에 하늘 높이 올라간 연이 신기했겠죠. 연을 쫓다가 하늘을 봤어요. 투명하다 싶은 느낌의 파란 하늘이었죠.
젊고 잘 생긴 30대 아버지와 어머니 모습은 돌아가신 지 한참 지났는데도 내 마음속에는 그대로네요. 아버지 37세, 어머니 33세. 처음 아버지 어머니 나이를 알게 된 기억. 셈을 하니 만 9살 때의 일입니다.
국민학교 시절 학교 운동장 가운데 커다란 포구나무 열매를 주워 먹던 일도 기억나요. 작은 포구나무 열매의 단맛이 입 안에 느껴져요.
아, 그 학교를 찾아가 봤어요. 추억 여행을 한 거죠.
그런데, 포구 나무는 흔적도 없어요. 운동장 가가 아니고, 안 쪽에 있었는데. 분명 그 나무 밑에서 공기놀이를 친구들과 재미나게 했었는데. 공기놀이를 꽤 잘해서 편 가를 때 서로 데려가려고 했어요. 그 나무 분명히 기억나는데.
고교 시절 너우니 소풍 가서 만난 벌판 가득하던 가을 들꽃 무리는 늘 그렇게 아름답게 생각이 날까요. 노랑, 연보라 들국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서 제 소녀 감성을 뒤흔들었던 그 장면. 지금 찾아가면 있을까요? 어디쯤 인지도 모르는데. 진양호 댐 만들고 그 벌판 아직도 남아있을까요? 아파트 잔뜩 들어선 혁신 도시 아스팔트 어디 아래로 숨어 버렸을까요.
시골 아버지 학교에 간 적이 있어요. 학교에서 활동하던 YMCA 클럽에서 캠핑 간다고 했더니, 아버지 학교 사택에서 일주일을 지내래요. 착한 딸은 캠핑을 포기하고아버지 시킨 대로 했죠.
아, 어스름 운동장에 은은하게 빛나던 달빛이 얼마나 예쁜지 아세요? 넓은 운동장 가득 달빛이 내려앉은 보얗고 부드러운 느낌과 주변의 나무들이 만들어 내는 거무스레한 실루엣까지. 분명 보았거든요.
하나도 기록해 놓은 사진 증거는 없는데
내 깊숙한 마음속 어딘가의 추억 창고에는
해가 가도 사라지지 않는 추억이 있어요.
보고 싶어도 찾아갈 수도 없네요.
하지만! 분명히 있었던 일이에요. 다른 건 다 잊어버려도 내 추억 창고에 저장되어 있는 그것들은 안 없어져요. 수십 년이 지나도.
대표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