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임지에서 같이 발령 받은 동기가 연극반이었다고 하기에,
"연극반 하고싶었는데, 사투리 때문에 가입 못했어."
라고 말했다.
동기가 펄쩍 뛰면서 대꾸한다.
" 무슨 소리야. 사투리 쓰는 사람들도 연극반 했어. 아무 지장이 없는데."
무식한 대학 새내기는 그렇게 하고 싶던 연극반 활동을 서울말 쓰기에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시도도 못 해본 것이 못내 아쉬웠다.
대학을 서울로 진학하고 나서, 나는 일년 간 거의 입을 다물었다. 졸업 후 직업이 정해져 있고, 서울로 발령을 받는 이상, 사투리를 쓰면 안된다는 생각에 1학년 동안 완벽하게 서울말을 배우기로 작정한 것이다. 그리고는 열심히 리스닝(듣기)을 시작했다. 들은 대로 몇 번씩 억양을 연습하고, 가끔 소심하게 한 마디씩 던졌다.
제일 먼저 시도한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대전 사투리. 친한 친구들이 대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기니?(그러니의 뜻)"
몇 번 시도에 성공하고는 버스 차장과의 대화(?)를 시작했다.
"ㅇㅇ대 가요?"
덕분에 첫 임지에서부터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억세고 알아듣기 힘든 경상도 출신인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경상도 말투를 고치기 위해서 제일 어려웠던 것은 '겡'으로 발음되는 '경'과, 바람 소리가 세어 sh 발음이 되어버리기 일쑤인 'ㅅ' 발음이었다. 경상도가 겡상도, 학생이 학섕으로 발음되는 것을 고치는데 시간을 좀 썼다.
고향에서 18년을 보냈는데, 서울 생활이 그 4배가 넘는 세월을 보냈다. 어느 순간부터 고향에 가서도 가게를 방문해서 정겨운 '보이소.'라는 말 대신 '여보세요.'란 말을 자연스럽게 쓰는 것을 깨닫고 이제 나는 진주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상도 집안이지만 서울 출생의 남편을 만나 집에서는 서울 억양 반, 사투리 억양 반의 어정쩡한 말투를 편하게 쓰고 있다.
한 때 명동 거리에서 '에나?(정말?이라는 뜻의 진주 사투리)'라는 소리를 듣고 반가워 아는 척 한 적도 있었는데, 이젠 고향 친구와의 전화 통화도 그 어정쩡한 말투가 먼저다.
진주성을 방문했을 때 '하모(그럼의 뜻)'라는 캐릭터 인형을 보고 반가웠다.
'단디 해라.' 라는 말도 좋은 뜻이라, 단디(단단히의 뜻)를 닉네임으로 쓰는 사람도 본 적 있다.
사투리를 쓰면 한결 정감이 있고 구수한 느낌이 든다. 잘 알지 못하던 사람이었는데도, 고향 사투리를 함께 쓰는 것 만으로도 서로 더욱 가까워짐을 느끼기도 한다.
고2 때 돌아가신 할머니는 늘 "학조 갔다 왔나." 하고 학교 갔다오는 나를 맞이하셨다. 학교를 학조라고 하신 것이다. 학조라는 말만 생각하면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솟는다. 다른 식구들은 학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교장으로 정년퇴직하신 아버지가 어느 해 우리집을 방문하셔서는 손녀에게 "학조 다니재. 지금 1학년이가?"라고 말씀하셨다. 교사로, 교장으로 재직하시는 동안 한번도 학조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셨는데, 직을 다 내려놓은 그 즈음, 아버지에게는 학조란 말이 더 편했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였다.
나는 아직 아버지처럼 표준어(서울말)를 내려놓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내가 고향에서 살아온 세월보다, 서울말을 쓰면서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고향에 가도, 고향 친구를 만나도, 이제는 변질되어 되돌아오지 않는 나의 억양에 살짝 슬픔을 느낀다.
* 대표 사진 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