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신 우리 어머니

시어머니 이야기

by 세온

고우신 우리 시어머니 글을 한번 써 보고 싶었습니다.


아침에 도착했을 때 몇 달 동안 뵈었던 날 중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보여주셨어요. 둘째 아들 며느리 금방 알아보시고 오늘이 설날인 것도 아시고, 내일이 둘째 아들 생일인 것까지 아시네요.
어머니 모시고 살던 시동생네는 아침만 같이 먹고 속초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1박인 것이 아쉬웠겠지만, 어머니 케어에 미숙한 저희 부부를 배려한 것인지 더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착한 마음씨입니다.
회사 다니는 예쁜 조카가 올해 결혼을 할 거래요. 그래서 결혼하기 전에 온 가족 여행을 해보고 싶다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콘도를 예약했다는군요. 끼기 싫어할 만한 남동생까지 누나를 위해 기꺼이 여행에 따라나섰답니다.
명절이면 하루씩 우리에게 어머니 맡기고 친정도 갔다 오고, 간혹 1박 여행도 다녀오곤 했어요. 안 하던 일이라 힘이 들기는 하지만, 늘 함께 지내는 식구가 더 힘들지요. 그저 미안하고 고맙고 그렇습니다.
저나 동서나 직장을 오래 다녔습니다. 아이들 키우는 건 고스란히 시부모님 몫이었구요. 올해 마흔 살 먹은 우리 아이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키워주시고, 바톤 넘겨받듯 시동생 네 두 아이를 맡아 키우셨어요. 그때부터 쭈욱 두 아이 대학 가고 직장 취직할 때까지 함께 살게 된 거죠.
85세쯤까지는 건강하셨어요. 제가 막내며느리 은행 지점장 승진이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때까지도 집안일을 도맡으셨어요. 방문할 때마다 뭘 더 해먹일까 챙겨주시느라 바쁜 어머니였죠. 친정어머니 일찍 돌아가신 대신 시어머니가 그 빈자리를 채워주셨다고 할 정도로 제겐 친정어머니 같은 시어머니셨습니다.
추운 겨울 쓰레기 버리러 나오셨다가 그만 얼음판에 넘어지신 것이 고관절 골절. 수술과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나빠지셨어요.
회복하지 못하고 침대에 누워 생활하신 지 몇 년 되셨네요. 밥 대신 누룽지로 만든 죽을 드시고, 변기에 앉아 볼일 보는 일도 어렵네요.
오늘은 최상의 컨디션이라고 했죠? 두 번이나 변기에 앉으셨어요. 세끼 누룽지 밥도 잘 드시고, 제가 끓여간 탕국, 동태전과 동그랑땡도 으깨어 드렸는데 잘 드셨어요.
요즘 잠을 잘 못 주무셨다고 하더니 저녁 드시고 좀 앉아있다가 침대에 누우시더니 단잠을 주무시네요.
처음 어머니를 뵀을 때 생각이 나요. 집 동네까지 따라가서 먼발치로 어머니를 뵈었죠. 고우신 얼굴이었어요. 머리에는 얇은 천으로 된 녹색 머리수건을 예쁘게 쓰고 계셨던 게 인상 깊었어요.
그 고우시던 50대 젊은 시어머니와 딱 3개월 살고 분가를 했어요. 분가를 했지만 한 동네였죠. 아이가 태어나자 당연한 듯이 맡아 키우셨구요.
"내 새끼 남의 손에 못 키운다."
그때 당시 아이 키워주는 보모가 아이가 운다고 뒤주에 가두었다든지, 엄마 모르게 상처 나지 않게 아이를 괴롭혔다는 온갖 안 좋은 기사가 연일 보도될 때였어요.
왜 그렇게 내 의견을 내세우지 못했는지, 그저 어른이 시키는 대로 아이를 시부모님께 맡기고 키웠더니, 딸이 어려움 속에서도 미국에서 낳은 손녀 우리에게 키워달란 소리 안 하고 꼭 끼고 키우더군요. 포닥으로 유학 가서 생활하는 동안 아이 깨워 데이케어(미국 어린이집) 보내고 직장 다니며 힘들었을 텐데. 아이를 한국의 외가에 보내어 키우는 집도 더러 있었다고 들었는데.
남의 손에 키우지 않고 어머니가 키워주셔서 딸아이 무탈하게 잘 컸으니, 서운함도 있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 어머니 이야기 중이지요. 어머니가 끼고 키우시는 바람에 저는 아이를 키우는 어려움을 잘 모르고 살았던 셈이에요. 아파서 열이 펄펄 끓는 아이 이마에 물수건 올리며 밤 세운 것도 할머니고, 이것저것 입 짧은 아이 먹이느라 밥그릇과 숟가락 들고 따라다닌 것도 할머니였죠. 퇴직하고 할 일이 없으셨던 할아버지도 아이 자전거 태우고 끌고 다니면서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했구요. 여름엔 햇빛 따가울까 봐 우산까지 받치고 다녀서 안양 석수동 온 동네에 소문날 정도였다고 하네요. 두 분이 아이 키우는 낙으로 사셨지요.
아버님이 돌아가신 건 분당으로 이사하고 난 다음이었어요. 홀로 되신 후 아파트 경로당에 자주 놀러 가고 친구분들도 사귀고 잘 지내셨는데...
블로그에 90 넘으신 아버님 근황을 늘 올리시는 분이 계셔요. 살아계시면 울 친정아버지도 비슷한 연세라 사진 올라올 때마다 친정아버지 보는 느낌이에요. 그분이 웃으면 저도 기분이 좋아져요. 자꾸 기억력이 감퇴하시는 것 같다고 따님 되시는 분은 걱정하시지만, 혼자 걸으시고 뭘 뚝딱뚝딱 만드시기도 하고, 봄에 꽃밭 만들 궁리도 하시니 얼마나 보기 흐뭇한지 몰라요.
우리 어머니 몇 년 전처럼 만큼만 혼자 걸으시고, 놀러도 다니시고, 맛있는 음식도 잘 드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일요일과 명절날 빼고는 매일 4시간씩 케어해 주고 가는 요양보호사님이 요양원 가지 않고 가족과 함께 집에서 케어받는 일이 정말 큰 행복이라고 하셨어요. 그분 덕분에 동서도 하루에 몇 시간은 쉴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
오늘 밤 이렇게 같이 보내고, 내일이 되면 돌아올 시동생 부부에게 어머니 맡기고 우리는 또 우리 생활로 복귀하겠지요.
혼자 아무것도 못 한다고 슬퍼하시지만, 가족들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어머니가 아시려나요.
"밥맛이 이래 좋으니 빨리 안 죽는다."
둘째 며느리가 드리는 밥이 맛있었는지 그러시네요. 칭찬이겠죠.

사시는 날 만큼은 힘들어하지 말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생각만 하면 그저 안쓰럽고 고맙고 미안하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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